여백

수필

by 티후

여백이란, 종이 따위에 글씨를 쓰거나 그림을 그리고 남은 빈자리를 말한다.



줄글 사이에 자리한 여백은 필자가 독자에게 전하는 잠깐의 휴식시간이다. 시인은 글자와 글자, 문장과 문장 사이에 의도적으로 여백을 배치하여 독자의 호흡을 조절한다. 그렇게 조절된 호흡으로 읽는 시는 본래의 것보다 살아 움직인다. 또 그렇게 의도적으로 배치된 여백은 독자에게 상상의 여지를 선사한다. 오늘의 우리가 같은 시를 보고도 각자 다른 해석과 감상을 내놓는 이유이다. 여백이 많을수록 그 감상은 더욱 다양해진다.


여백의 미, 동양화를 배우다 보면 등장하는 단어.


붓이 지나간 자리와 그렇지 않은 자리가 주는 조화는 '미'라고 표현하기에 부족함이 없다.

중학교 미술시간 유채화 수업 시간 내내 딴청을 피우다가, 남은 10분 밍밍하게 그려낸 도화지에 대한 뻔뻔한 해명이기도 하다.

정선의 진경산수화 속 금강산에 노루가 뛰놀지, 캥거루가 뛰어다닐지는 감상하는 사람 나름인 것이다.


브레이크, 카덴차, 재즈 솔로, 음악 속 여백.

주로 빠른 비트 음악에서 노랫소리를 멈추고 일정 비트를 반복하여 브레이크 댄서들에게 자리를 양보하는 브레이크 비트.

클래식에서 악곡이나 악장이 끝나기 전 독주자나 독창자가 연주하는 기교적이고 화려한 부분인 카덴차.

재즈에서 다른 악기는 잠시 숨을 고르고 한 악기의 연주자가 자신의 연주 기술을 모두 뽐내는 재즈 솔로.

한 가지 음률의 아름다움을 온전히 즐기기 위해선, 다른 음률의 양보로 비롯된 여백이 그 바탕이 되어야 한다.


우리가 그 아름다움을 감상하는 모든 예술엔 우리의 상상력을 자극하고, 그 즐거움을 더하는 여백이 존재한다.



그런데

그토록 아름답길 바라는 우리의 삶엔 충분한 양의 여백이 부족한 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요즈음 더욱 그렇다.


책으로 세상을 접하던 우리는 짧게 가공된 영상의 바닷속에서 헤엄치고 있다. 우리의 생각이 흘러갈 공간은 없다.

눈앞에 놓인 자연보다, 책 보다, 사람보다 작은 화면 속에 담긴 세상을 더욱 즐긴다. 진짜 세상과 교류하는 시간은 점점 짧아진다.

글자, 문장, 음악의 여백 속에서 각자의 상상을 펼치던 사람들이 자기 입맛에 맞게 가공된 짧은 영상으로 삶의 여백을 가득 채운다.

내게 주어진 하루의 여백은 6인치 남짓 작은 화면에 다 줘버리더니, 삶에 여유가 없다며, 여백이 부족하다며 아쉬워한다.


이렇게 여백이 다 사라져 버린 세상에서, 여백을 가진 사람들은 늦가을 산속을 알알이 굴러다니는 알밤처럼 속이 가득 차 보인다.

이리 치이고, 저리 굴러도 그 속은 알맹이가 가득 차 있다.

그래서 사람들은 어딘가 속이 가득 차 있고, 말을 잘하고, 똑똑해 보이는 사람들에게 '책 많이 읽은 티가 난다.'라며 칭찬한다.

자신의 여백을 지켜온 사람들에 대한 찬사이다.


짧은 명상으로 하루를 시작하는 것이 스트레스 관리와 정신건강에 좋다고 이야기한다.

내 하루에 짧은 여백을 가지고 시작하는 행위. 그 자체로 건강하고 내가 나로 가득 차는 시간이 아닐까.


나의 도화지는 충분한 여백과 함께하고 있는지 궁금해진다. 다시 한번 생각해 봐야겠다.

선과 색으로 가득 찬 도화지가 아름다운지, 온갖 악기의 음으로 가득 찬 노래가 아름다울지, 띄어쓰기 없이 적힌 산문이 아름다운 건지.


나의 하루는 어떠한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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