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마미야역의 교훈

지하철과 삶

by 티후

2024년 초 4박 5일간의 여행에서 있었던 일입니다.

어린 시절부터 함께한 친구 3명과 갔다 왔던 2번째 일본 여행입니다.


일본의 지하철은 사용자 수도 많고, 노선도 많고, 그래서 길을 잃기가 쉽습니다.

해외여행의 가장 든든한 동반자인 구글 지도도 일본의 지하철 앞에선 잠시 정신을 놓을 정도이니 말입니다.



사건은 귀국 전날 밤에 일어났습니다.

숙소로 돌아가기 위해 우리는 신이마미야역에서 지하철에 탑승했습니다.


우리의 영원한 친구 구글 지도는 한 개의 역만 가면 된다고 설명해 줬고, 그런 줄만 알고 있었던 우리는 열차가 이마미야역에 도착하자 패닉에 빠졌습니다. 신이마미야역에서 한 개의 역만 이동하면 다이쇼 역이라고 설명하던 우리 친구의 설명과는 달리, 웬 이마미야역이 눈앞에 나타나니 열린 지하철 문을 앞에 두고 네 친구는 그 짧은 순간 얼마나 많은 회의를 했는지 모릅니다.


그다음 역은 심지어 아시하라바시 라니, 열차가 문을 닫는 몇 초를 남겨두고 네 친구는 열차 밖으로 나와버렸습니다.


상황을 파악하는 덴 10초도 채 안 걸렸습니다.


사실 우리가 내렸던 열차에 타있었으면 2개의 역을 더 가 숙소에 내려줬을 것이고,

구글 지도의 한 개의 역 설명은 우리가 급행을 탔을 때의 얘기였습니다.

1호선 용산 급행처럼 오사카 순환선에도 급행이 있을지 한국에서 온 친구들이 알 수 있을 리가 없습니다.


10초가 지나고,

볼멘소리가 나올 것 같았던 친구들 사이에선

'사진이나 찍자'라는 소리가 나옵니다.

돈키호테에서 산 물건들을 양손 가득 들고, 하루 종일 걷기만 해서 힘들 법도 한데, 5분 정도 기다리는 건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나 봅니다.


그렇게 이번 일본 여행에 예정에 없던 이마미야역 에서의 추억이 생겼습니다.

춤도 추고, 노래도 부르고, 사진을 100장은 더 찍었습니다.


이마미야 역에서 그날의 웃음 할당량을 훨씬 뛰어넘게 웃고는 시간 가는 줄 몰랐습니다.

7분이 걸려 도착한 다음 열차가 도착했을 땐 허겁지겁 짐을 챙겨 열차에 올라야만 했습니다.





한번 출발한 지하철은 이마에 써 붙인 종점까지 반드시 도착해 내고 맙니다.

갈림길이 있으면 있다, 없으면 없다, 급행이다 아니다 꼭 써 붙이고 다니는 덕분에 사람들은 제 갈 길에 맞는 지하철을 탈 수 있습니다.


또 지하철은 어디로 간다, 몇 시에 온다, 어디서 멈춘다 같은 자기 속 사정을 다 알려주고 다닙니다.

그런데도 그 지하철에 탄 우리는 헷갈려 합니다. 진짜 가는 건지, 진짜 오는 건지,

문이 열리고 이마미야 역이 눈앞에 펼쳐졌을 때의 당혹감은 평생 잊지 못할 겁니다.



뭐든 써 붙이고 다니는 지하철도 이렇게 헷갈리는데,

어디로 가는지, 언제 끝나는지, 어디서 잠깐 멈추는지 그 속내를 전혀 알 수 없는 인생은 얼마나 우릴 헷갈리게 할지 궁금해집니다.


우리 인생 경로는 구글 지도가 알려주지 않고, 내가 위치한 곳은 어디인지 GPS가 알려주지 않습니다.

내가 가고자 하는 길의 어디쯤 와있는지, 앞으로 나아가고는 있는지, 멈춰 있는지 알 수 없기 때문에 우리는 고민하고 고뇌합니다.


'대화의 정석', '글쓰기의 정석', '공부의 정석' 같은 책은 있어도,

'인생살이의 정석', '인생살이 제대로 하는 법' 같은 책은 없는 이유는,

우리 모두 각자 다른 노선을 타고 가고 있기 때문이 아닐까요?


잘 가고 있던 지하철에서도 뛰어내려 의심하는 게 우리인데,

잘 가고 있는지도 잘 모르겠는 인생은 끊임없이 의심해야 하기 때문 아닐까요,


같은 노선을 탄 사람들도 결국은 자기 목적지를 찾아 갈아타는데,

목적지까지 가는 정석이 있는가는 잘 모르겠습니다.


너무 복잡하고 어려워서 누가 책으로 써서 내줬으면 좋겠는데,

막상 책으로 써 내주면 안 읽을 것 같습니다.



내 인생이지 않습니까?

keyword
작가의 이전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