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틴어 수업
Hodie mihi, cras tibi
호디에 미기, 크라스 티비
오늘은 나에게, 내일은 너에게
로마나 천주교 공동묘지 입구에 새겨진 문장입니다.
오늘은 내가 관이 되어 들어왔고,
내일은 네가 관이 되어 들어올 것이니 타인의 죽음을 통해 자신의 죽음을 생각하라는 뜻의 문구입니다.
올해 첫 책으로 읽고 있는 <라틴어 수업>의 일부입니다.
이번 주 내로 다 읽고 서평을 쓸 예정인데,
여태껏 읽었던 책 중에 가장 좋은 책입니다.
책을 읽기를 시작하고자 하는 친구에게나,
곧 성인이 될 동생에게나,
보따리 짐을 싸다가 한 권씩 나눠주고 싶은 책입니다.
책 칭찬은 이만하고, 저자는 또 이렇게 이야기합니다.
식물은 봄에는 신록으로, 여름에는 녹음으로, 가을에는 단풍으로, 그리고 겨울에는 낙엽과 그 낙엽이 썩어가는 향으로 우리를 기쁘게 합니다.
그렇다면 인간인 우리는 어떨까요? 우리는 태어나서 아이, 청소년, 장년, 노년이 되어가면서 각기 어떤 향을 풍길까요?
자신의 죽음을 생각하며 사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을 겁니다.
자신이 언제, 어떻게, 어디서 죽을지도 모르는 유한한 존재가
자신의 죽음을 상상한다는 것은 어쩌면 오만일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이런 우리가 문득 죽음 앞에 설 때가 있습니다.
알고 지내던 사람의 죽음을 전해 듣고, 장례식장에 갈 때입니다.
이따금 주고받던 안녕을 이젠 전할 수 없는
까만 사람들이 모여 눈물 흘리고, 위로하는 앞에 서면
자신의 죽음을 생각하게 됩니다.
바쁜 일상에 미처 생각하지 못했던 자신의 죽음을,
타인의 죽음 앞에서 생각하게 되는 것입니다.
나의 죽음엔 어떤 사람들이 슬퍼해 줄 것인지
내가 가고 남은 자리엔 어떤 향기가 남아 있을 것인지
나의 죽음마저 잊혔을 땐 누가 날 기억해 줄 것인지,
따위의 것들을 생각하게 되는 것입니다.
내게 주어진 하루가 영원하지 않을 것이며
우리 유한함의 끝을 잘 준비하기 위해 매일을 살아간다고 생각하면
평소보다 더 희망차고, 밝아지는 기분입니다.
좋은 생활기록부, 성적표를 만들기 위해선 이미 부단히 노력해 보지 않았습니까?
좋은 인생을 위해, 좋은 향기가 나는 나를 위해 하루를 살아간다고 생각하면,
조금 더 열심히 살아야먄 할 것 같습니다.
매일의 행복은 놓지 않으면서요.
허준이 교수의 서울대 졸업식 축사 중에 이런 구절이 있습니다.
취업 준비, 결혼 준비, 육아, 교육, 승진, 은퇴, 노후준비를 거쳐 어디 병원 그럴듯한 1인실에서 사망하기 위한 준비에 산만해지지 않기를 바랍니다.
무례와 혐오와 경쟁과 분열과 비교와 나태와 허무의 달콤함에 길들지 않길
의미와 무의미의 온갖 폭력을 이겨내고 하루하루를 온전히 경험하길
그 끝에서 오래 기다리고 있는 낯선 나를
아무 아쉬움 없이 맞이하게 되길 바랍니다.
전 아직 수많은 단계 중 첫 번째 단계를 지나고 있습니다
잘 죽기 위한 준비를 하는 여정 중에 겨우 걸음마를 떼는 중이라고 생각하면
좀 까마득하지만, 한편으론 다행입니다.
그럴듯한 죽음을 위해 준비할 수 있는 시간이 많이 남았다는 이야기이기도 하니깐요.
이 글을 읽는 당신은 어떤 단계를 지나고 있을지 모르겠지만,
무례와 혐오와 경쟁과 분열과 비교와 나태와 허무의 달콤함에 길들지 않길
그 가운데에서 온전한 나 자신을 지켜내길
그래서 늘 행복한 하루를 쟁취하시길 바랍니다.
당신의 죽음은 어떤 모습입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