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社會)

언어의 재이해

by 티후


아래 일련의 과정은, 익히 알고 있는 단어들을

쪼개어 보고 그 온전한 의미를 받아들이는 데에 의의가 있다

어떠한 전문성도, 정확성도 띠지 못함을 앞서 밝히는 바이다.




서론

끼리끼리 논다.라는 말은 무슨 의미일까? 비슷하게 생기고, 생각하는 사람들끼리 친구가 돼서 논다는 얘기일까?

어떠한 되돌아봄에 앞서, 지적 허영의 충족이 필요하다.

사회(社會): 같은 무리끼리 모여 이루는 집단 [네이버 백과사전]

독일의 사회학자 페르디난트 퇴니에스는 사회의 범주를 이렇게 제시한다.

게마인샤프트(Gemeinschaft): 공동사회, 본질의지인 감성 또는 본능적 의지의 작용으로 자연적으로 결합된 집단. 인간 상호 간의 애정을 바탕으로 함. 감정적이고, 긴밀하다.

게젤샤프트(Gesellschaft): 이익사회, 선택의지로 사고 작용이 지배적으로 작용하여 결합된 집단. 관심이 일치하는 데가 있고 등가의 교환이 전제가 되는 경우에만 성립한다. 합리적이고, 계약적이다.

키가 지금의 절반만 하던 시절 동네를 뛰놀던 친구들은 게마인샤프트, 목적을 갖고 만나는 지인들은 게젤샤프트. 정확한 비유가 아닌가? 독자들은 어떤 사회 속에서 살아가고 있는가?




본론

여기선 사람이 셋 모이면 사회를 구성한다고 하자. 사람이 둘 모이면 대인관계, 셋 이상 모이면 사회생활이 아닌가?



그럼 우리가 태어날 때부터 속해 있는 사회가 하나 있다. 그 결합을 거부할 수 없으며, 평생 이탈할 수 없는 사회 말이다. 바로 가족이다. 가족은 다른 사회엔 없는 강제성을 갖는다. 가족이라는 따뜻한 단어에 어울리지 않는 차가운 특성이라고 생각할 수 있겠다. 하지만 어머니의 뱃속에서부터 죽음에 이르기까지 가족의 연은 쉬이 끊어낼 수 없다.



많은 사회 중 가족이 가장 특별하게 다가오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자신의 가족의 성향과 행동에 상관없이, 또 자신의 성향과 행동에 관계없이 그 결합이 유지되는 사회이기 때문에 우리는 가족으로부터 가장 큰 힘을 얻기도, 가장 큰 고통을 얻기도 한다. 사랑과 애정과 정으로 평생을 함께 하기 때문에 가장 기초적인 형태의 게마인샤프트가 아닐까?



우리가 속해 있는 게마인샤프트는 가족뿐만이 아니다. 가족 이외에 모든 사람들과 어떠한 목적을 가지고 만나야 하는 것만큼 불행한 삶이 있을까? 필자에겐 현재 만나고 있는 대부분의 친구 또한 게마인샤프트이다. 인생의 절반을 함께 보낸 어린 시절의 친구들이나, 또 우연히 마음이 맞아 많은 시간을 함께 보내는 친구들이 그렇다.



돈이나, 명예나, 대인관계 같은 목적 없이도 만나서 편하게 시간을 보내고 애정을 나누는 친구들이다. 이것저것 재거나 이해관계를 따지지 않아도 되는, 가족만큼이나 마음 편한 사회이다. 복잡한 사고 작용을 통해 '이 사람들과 친구를 하는 게 이득이 될까?'하는 생각을 하지 않기 때문이다.


이쯤 되면 인생에 게마인샤프트만 가득하면 참 행복하겠다는 생각이 든다. 이것저것 따지지 않고 애정만을 기반으로 한 사회생활만 할 수 있다면 얼마나 즐거울까?



하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다. 게마인샤프트 속에서만 살 수도 없고, 또 그런 삶은 생각보다 즐겁지 않기 때문이다. 필자가 속한 게젤샤프트를 알아본 후에 더 깊은 논의를 하기로 하자.


필자가 속한 가장 좁은 형태의 게젤샤프트는 사회에 나와 만난 대부분의 지인들이다. 여기서 말하는 사회는 흔히 말하는 사회, 학창 시절을 벗어난 시기를 말한다. 수업 팀플이나, 동아리나, 일에서 만난 대부분의 사람들은 게젤샤프트에 속한다.


이런 사회의 구성원들은 프로젝트의 완성을 위한 소통과 협업을 주된 목적으로 상호작용한다. 이 과정에선 보통 이해관계를 따지는 복잡한 사고 작용을 하게 되고,(그렇지 않은 사람도 있을 수 있다.) 이는 확실히 체력을 소모하는 일이다. 물론 행복도 훨씬 덜한 일이기도 하다.


필자가 속한 넓은 형태의 게젤샤프트는 바로 국가이다. 자유시장경제와 민주주의라는 공동의 가치를 토대로 결합된 이 국가에서 사람들은 화폐로 등가의 교환을 하며 살아간다. 다만 한 가지 아쉬운 점은, 이 게젤샤프트는 점점 즐겁지 못한 형태로 발전하고 있다는 것이다. 사람 간의 애정과 동정을 기반으로 상호작용했던 과거와 달리 현대의 사람들은 자신의 이익에 기반해 움직이고 소통한다. 사회를 이상적으로 이끌어야 할 사람들은 반으로 나눌 수 있는 구실만 있다면 흔쾌히 쪼개어 그 절반이 자신을 지지하도록 포퓰리즘을 펼치고, 또 그 절반 중 대부분은 어떠한 사고 작용 없이 관성에 의해 이를 따른다. 사회를 반으로 가르고 그 절반만 취사선택하는 식의 정치는 대체 언제부터 이어져 온 것일까? 관심이 일치하는데 가 있어야 게젤샤프트가 형성된다면, 좌와 우, 남과 여, 노와 소를 떠나 우리 모두가 하나의 게젤샤프트가 아닌가?


네가 틀렸으니 나는 맞고, 네가 잘못했으니 내가 적합하다는 식의 의견을 개진하는 사람들도, 이를 비판적으로 수용하지 않는 사람들도 모두 이 사회를 즐겁지 못한 형태로 만들고 있다고 느낀다. 상호의 이해관계를 이해하고, 건강한 대화를 통해 조금은 이상적인 국가로 나아갈 수 있는 노력이 지속되길 바란다. 우린 모두 하나의 사회 속에서 살고 있음을 잊어선 안된다.


필자는 필자가 속한 게마인샤프트 속에서 행복과 안정감을, 게젤샤프트 속에서 개인의 발전을 얻고 있다고 느낀다. 가족과 가까운 친구들 사이에서의 '나'는 마냥 즐거울 수 있고 행복할 수 있다. 하지만 그 속에서 안주하면 평생 제자리에 머물 수밖에 없음을 안다. 최근엔 억지로(즐겁지 않다는 얘기는 아니다.) 게젤샤프트 속으로 스스로를 밀어 넣고 있다. 다양한 형태의 게젤샤프트 속에서 개인이 발전하는 것을 느끼기 때문이다. 성격적으로, 체력적으로 과거보다 나은 사람이 되었을 때 게마인샤프트 속에서도 마냥 즐거울 수 있는 게 아닐까? 안주하기보다 발전하는 사람이 되는 것, 하지만 그 속에서 중심을 잃지 않는 것이 필자가 속한 게마인샤프트, 게젤샤프트들의 역할이다.


게젤이니, 게 아인이니 하는 어려운 단어들을 막 쓰다 보면 엄청난 사회학자가 된 것 같은 기분에 즐거워진다. 지식으로 가득 채운 글이 좋은 글이 아니라는 것을 깨달아야 할 텐데..




결론


이처럼 우리가 속한 사회는 그 범위와 목적으로 구분할 수 있다. 독자가 속한 사회는 독자에게 어떤 즐거움이나 발전을 선사하고 있는가? 관성에 떠밀린 삶을 살지 않기 위해선, 나 자신뿐만 아니라 내가 속한 사회도 돌아봐야 할 필요가 있다고 느끼는 요즘이다. '내 주변의 친구 3명의 평균을 내면 그게 바로 나 자신이다.'라는 얘기가 있다. 조금은 섬뜩해지기도 하는데.. 여기서도 우리의 이기적인 면모를 볼 수 있다. 저런 이야기를 들으면 내 친구 중 가장 잘나가는 사람을 꼽지 않겠는가?


그러지 말고 내가 속한 사회들을 자세히 돌아보자. 어떤 게마인샤프트 속에서 행복과 즐거움을 느끼고 있는지, 어떤 게젤샤프트 속에서 발전하고 있는지. 어떠한 행복도, 즐거움도, 발전도 없는 사회 속에서 시간을 낭비하고 있진 않은지 돌아보자. 이탈해야 할 사회에 붙들려 있진 않은지 말이다.


당신은 어떤 사회 속에서 살아가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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