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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책읽지현 Aug 02. 2023

양반집 노비도 어쨋든 노비

5화. 서른, 은퇴를 결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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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요일이다. 타닥타닥. 초점 없는 눈으로 키보드를 두들기며 생각한다. '오늘은 퇴근하고 클래스 101 드로잉 강의 들어야지!' 그러자 옅은 미소가 피어오른다. 하루 24시간 중 내 시간은 과연 얼마나 될까? 1평도 안 되는 책상과 침대 위에서 보내는 시간을 제외하면 3시간 남짓이다. 최대 3시간! 1분 1초를 아까워하며 오늘은 기필코 밤 12시까지 버텨보겠노라 다짐한다. 그러나 몸속 배터리는 이미 회사에서 80% 소진. 곧 빨간색으로 바뀌어 점멸할 듯하다. 안돼. 이제 겨우 1시간 지났는데 눈 깜빡이는 속도가 차츰 느릿해진다. 껌뻑, 꺼엄뻑. 스마트폰이 손에서 미끄러져 내린다. 애꿎은 영상만 밤새 저 혼자 재생되고 있다. 잠깐 눈만 감았다 떴을 뿐인데 날은 벌써 밝아있다.


겨우 화요일이다. 어제와 같은 말을 되뇌며 퇴근 시간만 기다린다. 죽음이 빨리 오길 바라는 것과 다를 바 없다는 사실도 모른 채. 몰입하면 상대적으로 시간이 빨리 흘러가는 느낌이다. 포스트잇에 적어둔 계획에 빨간 줄을 좍좍 그어나간다. 오늘은 다행스럽게도 긴급 이슈가 터지지 않아 제시간에 끝마쳤다. 보기 드문 날이었다. 퇴근 30분 전. 불현듯 사무실 분위기가 어수선해진다. 건너편 파티션에서 소곤거리는 소리가 들린다. "박 사원은 갈 수 있어?", "나 오늘 약속 있었는데...", "아니 매번 퇴근시간에 갑자기 이러면 어쩌자고, 참." 촉이 왔다. 빗나가기를 간절히 기도하며 팀 단체 카톡방을 열어본다. 회식하자는 팀장님의 메시지 뒤로 조용하다. 아무나 나서서 파투 내주길 바라는 눈치 게임 시작이다. 일할 때보다 더 진지하게 핑곗거리를 찾아본다. 침묵을 깨는 진동이 울린다. "오늘은 빠짐없이 필참." 일순간 우리의 소중한 저녁시간은 회사 것이 돼버리고 만다. 시간을 스스로 통제할 수 없다.


일주일의 중간. '아직도 수요일'인 오늘은 다들 축 처져 보인다. 전날의 과음과 새벽 귀가가 한몫했으리라. 회사 정문에 검은색 차가 섰다. 뒤쪽 차문이 딸깍 열리더니 상무님이 내리시는 모습이 보였다. 운전석에서 돌아보던 김 대리와 눈이 마주쳤다. 어젯밤 상무님 앞자리를 망부석처럼 지키며 술 상대를 자처하더니, 아침에 모시러 갔던 모양이다. 김 대리는 진급 시기에 딱딱 맞춰 승급자 명단에 올라가 있었다. 옆자리 모니터에는 쇼핑몰과 골프 영상이 자주 띄워져 있었는데 언제 일을 다하고 인정까지 받은 걸까. 회식 자리와 골프장이 그의 무대였다. 사무실에선 상무님이 지나가시는 타이밍에 적절히 퍼포먼스를 보이면 그만. '고래고래 소리치며 심각하게 통화하기'는 관심 끌기에 딱 좋았다. 그랬다. 회사에서 상사는 조물주 같은 존재다. 연봉과 승진, 미래의 운명 전부 그의 손에 좌지우지되기 때문이다. 자신의 시간과 에너지를 어디에, 누구에게 쏟을지는 본인 선택이다. 김 대리는 정치 수완이 좋고 임원이 꿈이다. 나는 내 인생의 주도권을 쟁취하는 것이 꿈이다.


목요일은 기필코 내 시간을 가질 수 있으리라 기대해 본다. 아니 필사적으로 사수해야만 일상생활이 가능할 지경이다. 내향인은 혼자 충전하는 시간이 더욱 절실하다. 오늘만큼은 절대 양보할 수 없다. 그랬다간 주체할 수 없을 만큼 화가 나버릴 것만 같았다. 시계가 여섯 시를 가리키고 있었지만 아무도 집에 갈 생각이 없어 보인다. 주위를 둘러보다 정 사원과 눈이 마주친다. 입모양으로 "오늘 박 대리님 대학원 수업 없는 날이잖아."라고 말하는 듯하다. 언제부터인지 모르겠다. 상사의 퇴근시간이 곧 우리의 퇴근시간이 되어버린 게. 박 대리는 자신보다 먼저 퇴근한 동료에게 유독 예민하게 굴었다. 서운한 기색을 숨기지 않았다. 똥이 무서워서 피하나? 더러워서 피하지. 다들 지레 조심하는 듯했다. 집에 오니 밤 10시다. 벌러덩 드러누워 '돈 vs 행복. 꿈을 좇아야 할지 돈을 좇아야 할지 모르겠습니다'라는 제목의 영상을 보다 어느 순간 기절한다.


금요일은 다들 친절하고 상냥하다. 오전에 할 일을 후딱 해치워놓고 오후는 느긋하게 시간 때우다 가겠다는 심산이다. 누군가에겐 벌써 주말이 시작된 것 같기도 하다. 탕비실에서 계속 삐그덕 소리가 나서 보니, 송 사원이 사무용품 서랍을 정리하고 있었다. 머쓱하게 웃어 보이는 송 사원. 수정테이프와 클립, 수성펜 묶음이 가지런히 쌓여있다. 누가 시키지도 않았는데 업무와 무관한 일에 왜 저리 열심인지 의아하다. 조금 전까지 깜빡이는 커서를 멍하니 바라보고 있던 그는 시간이 빨리 가도록 온몸으로 몸부림치고 있었다. 시간이라는 단어를 같은 말로 바꾸면 인생이 된다. 퇴근 시간이 빨리 오길 바라는 것은 내 인생이 빨리 저물기를 바라는 뜻이 된다. 이렇게 사는 게 맞는 걸까?


한창 코로나19로 시끄러웠던 시절 전 직원이 교대로 정문에서 체온측정을 실시했다. 2시간씩 가만히 "정상입니다.", "다시 측정해 주세요." 하는 기계 음성을 듣고 있는다. 무료함에 기지개를 켜다 창밖으로 하늘이 보였다. 새파란 하늘과 몽글몽글 하얀 구름이 선명히 대조되었다. 낮 시간을 제대로 즐겨 본 지 까마득했다. '나 지금 여기서 뭐 하고 있는 거지?' 문득 의문이 생겼다. 무엇이든 할 수 있는 젊은 날을 남의 사업이 잘 되는데 바치고 있었던 것이다. '내 것'에 쏟아붓는다면 당장 큰돈은 못 벌지라도 부자 될 가능성은 더 높아졌다. 엠제이 드마코의 <부의 추월차선>에 따르면 '시간'이라는 변수를 통제하지 못하면 결코 부자가 될 수 없었다. 시급과 정년이 고정된 직장인은 불가능하다. 그리고 시간을 돈과 맞바꿀 것이 아니라 부를 창출하는 자원으로 소중히 써야 한다. 그래서 잠자는 순간에도 돈이 벌리는 시스템을 구축해야 한다. 적게 일하고 많이 벌어 아낀 시간에 가족과 푸르른 하늘을 여유로이 즐길 수 있도록.


금요일 저녁이 되어서야 비로소 삶의 주도권을 탈환한다. 저자는 주중에 일할 체력을 보충하는 주말은 진정한 내 시간이 아니라고 한다. '당신은 5일간의 노예 생활을 2일간의 자유와 맞바꾸고 있다. 월요일부터 금요일까지의 시간을 토요일과 일요일 이틀을 위해 팔아넘기고 있는 것이다.'라는 놀라운 문장과 함께. 이를 수익률로 환산하면 -60%이다. 우리는 돈에 대해서는 손해를 금방 알아채고 멈추지만 시간에 대해서는 그렇지 못하다고 한다. 주식으로 치면 제대로 물려있는 상황인데 말이다. 나는 운 좋게 대기업으로 이직해 연봉이 2배 뛰었지만 사실상 손실이 더 큰 게임이었고, 끊어내지도 못하고 있었다. 이러한 깨달음은 사이드프로젝트로 이어졌다. 회사 밖에서 내 힘으로 월급 이상이 벌리는 순간을 해방의 날로 지정하기로 했다. '월급 독립 만세'를 쩌렁쩌렁 한 목소리로 외치겠노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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