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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책읽지현 Aug 03. 2023

전공과 자격증은 무용지물

자본주의 생존 기술은 따로 있다는 <세이노의 가르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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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사에서 한참 일하고 있던 시간에 아버지로부터 문자 메시지가 왔다. 타고 다니시던 자가용을 몇 군데 손봐야 한다는 내용이었다. 나에게 연락하신 이유는 내 죽마고우가 카센터집 딸이었기 때문이다. 이왕이면 아는 사람에게 맡기는 편이 안심된다는 것이 아버지의 지론이다. 나 또한 친구 좋은 일 시켜주는 게 더 좋았다. 퇴근 무렵 즈음 친구에게서 연락이 왔다. 아버지가 왔다 가셨는데 하나라도 더 꼼꼼히 봐주고 싶은 마음에 하다 보니, 오랜 시간 기다리게 한 것이 마음에 걸렸다는 것이다. 그래서 원래 매장에 있던 부품 한 두 개를 서비스로 해드렸다고 했다. 그런데 말이 한 두 개지 청구서에 적혀있는 금액은 아무리 생각해 봐도 말이 안 되는 숫자였다. 평소에도 항상 밥값을 먼저 계산하겠다고 나서며, 베풂에 한치의 망설임도 없는 친구였지만 장사는 장사였다. 받을 건 받고 줄 건 줘야 한다는 생각에 어떻게든 보답해야겠다는 마음이었다. 분명 한사코 거절할 테니, 잊힐 때 즈음 약속을 잡았다. 친구의 차를 함께 타고 시원한 아메리카노를 한 잔 마시러 가는 길이었다. 좌회전을 하기 위해 친구가 고개를 돌렸을 때 얼른 조수석 수납공간에 상품권을 후다닥 밀어 넣었다. 완벽하다 확신했던 나만의 비밀 작전은 결국 처참히 실패로 끝났다. 며칠 뒤 내 생일에 그대로 돌려받았기 때문이다.


갑자기 친구가 부러워졌다. 자신의 일이 남에게 이로운 일이 될 수 있다는 점에서 스스로 돌아보게 되었다. 내 직업은 누구에게 도움이 되고 있나? 나는 엔지니어다. 대기업 환경팀에서 근무한다는 사실은 높은 연봉을 받는 나에게만 좋은 일 아닌가? 물론 환경직을 선택하게 된 이유는 매우 이타적이다. 환경을 보호해 후손들에게 온전한 지구를 물려줄 수 있기를 바라는 사명감에서였다. 또한, 개개인들이 환경오염에 미치는 영향 보다 공장이 배출하는 오염물질량이 훨씬 많고 유해하므로 열악한 현장이 있는 공장만 일부러 지원했다. 하지만 가시적인 성과가 잘 보이지 않는 일이라 그런지 내가 기여하고 있는 것이 맞는지 잘 실감 나지 않았다. 그저 회사 대표 일가가 배를 불리는 데 리스크를 낮춰주는 역할이 아닌지 의구심이 들었다. 엄청난 과업보다는 내 가족, 친구, 지인들부터 만족시킬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싶었다. 가까운 이들에게 먼저 도움이 될 수 있는 일 말이다. 거창할 것 없다. 예를 들면 공인중개사인 친구는 내가 보금자리를 마련하는데 수고를 덜어준다. 마케터인 친구는 새로 개업한 가게를 아주 시끌시끌하게 홍보해 줄 수 있다. 나도 내가 좋아하고 잘하는 일로 주변 사람들이 웃음 짓는 모습을 보고 싶었다. 성취감과 애사심은 거기서부터 시작되니까 말이다.


재야의 명저 <세이노의 가르침>을 보고도 비슷한 생각이 들었다. 아니, 기존의 생각이 더 진화되었다고 하는 편이 맞을 것이다. 무일푼에서 순자산 천억 원대 자산가가 된 세이노는 자본주의에서 살아남기 위해 배워야 할 것이 딱 2가지 밖에 없다고 말했다. 물론 나의 전공과 어렵사리 취득한 기사 자격증 3개는 해당되지 않았다. 그가 말하는 생존 스킬이란 영업과 마케팅이었다. 자본주의에선 돈이 권력이자 자유다. 돈을 벌기 위해서는 내 물건을 사줄 사람들을 모으고, 잘 팔 줄 알아야 한다. 나만 부를 쟁취하겠다는 이기적인 발상이 아니다. 세상에 꼭 필요한 물건을 판다는 전제조건이 있기 때문이다. 모두가 골치 아파하는 일, 불편해하는 것들을 해소시켜 줄 수 있는 아이템으로 세상에 얼마든지 기여할 수 있다.


그동안 엉뚱한 지식과 경력을 쌓아온 것만 같아 허탈했지만 그렇다고 갑자기 마케팅 학위를 딸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그 대신 현재 몸담고 있는 회사에서 일을 바라보는 관점을 바꿔 보기로 했다. 사업장 점검 차 주기적으로 들어오는 공무원들부터 달리 보기로 한 것이다. 성가시고 왠지 두려운 존재였던 그들을 '고객'으로 섬기는 자세를 취하기 시작하면서 배운 점들이 많았다. 고객이 말하지 않아도 원하는 바를 빠르게 알아차릴 수 있도록 먼저 묻고 살피는 습관이 생겼다. 사소하다 못해 당연했던 다과 세팅도 좌석마다 각각 비치하면서 그들의 몸과 마음이 편안한 시간이 될 수 있도록 애썼다. 생각이 바뀌자 목소리 톤과 말, 행동도 다르게 나왔다. 주어진 상황에서 최대한의 경험을 해보자는 취지였지만 모종의 한계는 있었다. 무엇이든 부딪히며 배울 때 가장 많이 얻을 수 있다는 걸 알기에 실전에 뛰어들 필요가 있었다. 영업 사원으로 새롭게 시작했던 세이노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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