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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책읽지현 Aug 04. 2023

월 60만 원 벌면 나도 파이어족?

책 <대한민국 파이어족 시나리오> 가라사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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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사원이라면 크고 작은 병 하나는 기본적으로 달고 살 것이다. 허리디스크와 손목 터널 증후군은 흔하디 흔하다. '저 과장님은 왜 스탠드형 책상을 쓰시지? 하루종일 서있으면 더 힘들지 않을까?'라는 생각이 '나도 저걸로 바꿔달라고 구매 요청서 결재 올릴까?'로 바뀌어갔다. 4년 차에 허리 염좌로 응급실에 다녀온 뒤로 허리디스크가 급속히 악화되었다. 염좌와 디스크 모두 고통스럽지만 강도와 기간에 차이가 있었다. 전기 충격을 받고 졸도할 것 같은 강도로 3초냐, 묵직하고 결리는 고통이 눈 떠있는 시간 동안 계속되느냐로 구분되었다.


엔지니어와 허리 건강이 서로 상관관계가 있을 줄은 몰랐다. 현장에 나갈 때마다 필수로 착용해야 하는 안전화가 내 발목과 허리 건강은 지켜주지 못했다. 회사에서 지급하는 신발은 단가 경쟁에서 이긴 업체 것이다. 쉽게 말하면 켤레당 가격이 싼 곳과 계약을 한다는 의미다. 당연히 깔창의 쿠션감은 견고한 벽돌 위를 맨발로 걷는 것처럼 딱딱했다. 신발끈을 꽉 조여봐도 덜컹덜컹 움직이는 사이즈의 기성품이었다. 2~3일 뒤 발목뼈에 찌르는 듯한 통증이 느껴져 등산용 양말을 한 켤레 따로 들고 다녔다. 두꺼운 양말을 하나 덧대어 신으면 걸을 때마다 신발이 제멋대로 움직이지 않아 통증이 덜했기 때문이다. 세상만물을 모조리 녹여버릴 기세의 뙤약볕이 쬐는 한여름에도 어쩔 수 없었다. 현장에서 돌아온 후 축축이 젖은 양말을 사무실에 두면 민폐가 될 것 같아 그대로 끼워두기 일쑤였다. 장난기 많으신 수석님으로부터 아직까지 놀림거리로 회자되고 있다.



디스크는 생각보다 삶의 질을 저하시키는 고질병이었다. 허리 숙여 양말을 신거나 머리를 감는 일상이 마음먹고 해야 하는 일이 돼버렸다. 그리고 원하는 만큼 일을 하지 못하도록 방해했다. 적어도 한 시간마다 자리에서 일어나주어야 했기 때문이다. 갑자기 자리 근처를 서성이는 행동이 팀원들에게 방해가 될까 눈치를 살피게 되었다. 퇴사한 뒤 매일 1시간씩 걷기 운동과 주 2회 이상 필라테스를 겸하며 거의 호전되었지만 통증과 눈칫밥 사이에서 홀로 싸우던 시간이었다.


사실 일을 하다 보면 정해둔 시간마다 끊어 쉬기가 어렵다. 문의 전화가 잇따라 오거나 통화가 길어지기도 하고, 끊임없이 쌓이는 업무들을 조금이라도 더 쳐내는데 필사적이기 때문이다. 거기다 내가 여직원 2호로 입사했을 정도로 남초 회사다 보니, 여자 화장실은 최근에 만들어져 2층에 있었다. 오르락내리락하는 것도 일이어서 하루에 한두 번 갈까 말까였다. 계속되는 야근과 주말 출근, 미결된 업무와 쌓여가는 긴급 업무로 인한 압박감과 스트레스도 겹쳐서인지 방광염에 걸렸다. 생전처음 겪어보는 잔뇨감과 혈뇨였다. 일에 몰두할 수 없는 수준이 되어서야 병원에 다녀올 수 있었다. 누가 가지 말라고 한 적은 없지만 그럴 수밖에 없는 근무 환경이었다. 예전에 어느 매체에 나왔던 대기업 여성 연구원의 사연이 떠올랐다. 화장실에 갈 시간이 없을 정도로 업무량이 많았는데 어느 날 변기가 새빨갛게 물들어있는 걸 보고 퇴사할 수밖에 없었다는 이야기였다. 이젠 남일 같지 않아 참담했다.


내가 무너질 것 같은 정신을 단단히 붙들기 위해 의식처럼 하는 행동이 하나 있다. 흐트러진 머리를 야무지게 다시 묶는 것이다. 달리기 선수가 다시 한번 뛰어보자고 마음을 다잡는 감정과 같을지도 모른다. 손가락으로 빗처럼 슥슥 빗는데 관자놀이 쪽 흰머리들이 눈에 띄었다. 새치이겠거니 대수롭지 않게 넘겼던 흰머리가 어느새 잡초처럼 퍼지고 있었다.


제대로 숙면을 취하지 못하는 것과도 관련이 있었을까? 방광염으로 인한 야간 빈뇨 때문에 한밤중 두세 번 깨는 것은 기본이었다. 뿐만 아니라 물속에서 숨을 참지 못하고 뛰쳐나오듯 '허어'하는 숨소리를 내며 눈이 떠지기도 했다. 누군가 쫓아오거나, 흉측한 벌레들이 우글거리는 꿈을 자주 꾸곤 했다. 그렇게 깨면 무의식이 의식으로 전환되는 수 초가량 심장이 쿵쾅쿵쾅 뛰다 가라앉았다. 업무 중 하나였던 화학사고 대응 때문에 무의식에 불안이 내재된 듯했다. 언제 어떤 사고가 일어날지 모르기에 119 구급대원처럼 24시간 긴장 상태였다.


사무실에서도 이유 없이 갑자기 심장이 뛰고 불안감이 밀려오는 날이 잦았다. 몸속 장기들도 긴장한 탓인지 먹은 것을 제대로 소화해내지 못했다. 막힌 변기처럼 음식물이 늘 고여있는 것 같았다. 자연히 입맛도 사라져 말할 기운도 없고, 목소리는 작아져갔다. 영혼도 함께 잠식되어 가는 듯했다. 아니, 더 이상 참을 수 없었던 영혼이 발버둥 치면서 건강에 적신호가 켜진 것이 맞는 순서일 것이다.


그럼에도 당장 퇴사할 수 없었다. 돈 걱정 없이 원하는 일을 하며 건강하게 살고 싶었지만 지금은 타이밍이 아니라는 판단이었다. 사이드 프로젝트에서 어느 정도 수익이 나야지만 그만둘 수 있다며 나를 몰아붙였다. 사실 '어느 정도'가 얼마큼의 액수인지 정하지 못했기에 자꾸 '조금만, 조금만 더'하며 버텼던 것 같다. 정신적, 육체적 건강 상태를 보아서는 당장 그만두어야 했지만 회사밖 수입을 만들어 놓지 못했기에 진퇴양난이었다.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경제적 자유를 이룬 날, 내 몸이 성치 않으면? 돈과 시간을 쓸 수 있는 에너지가 없다면 지난날의 내가 미련하고 후회될 것 같았다.


요즘 너도나도 젊을 때 바짝 벌고 빨리 은퇴해서 놀고먹겠다는 사람들이 많다. 하지만 진정한 파이어족이란 '생계를 위한 일'과 결별하고, '하고 싶은 일'로 제2의 인생을 시작하는 사람이라고 한다. 책 <대한민국 파이어족 시나리오>를 통해 개념이 새롭게 잡혔다조기에 은퇴해야 하는 이유는 건강, 시간, 열정, 감수성을 모두 빼앗긴 노년에는 모든 것을 제대로 누리기가 어렵기 때문이라고 한다. 금전적인 측면에서는 내가 행복하기 위해 필요한 것을 충족시킬 수 있는 액수면 충분하다고 했다. "부자는 더 큰 부자가 되기를 갈망하지만, 파이어족은 자신에게 맞는 수준의 부에 만족할 줄 아는 사람들이다."라는 문장이 퇴사 시점을 정할 수 있도록 해주었다. 고정비와 여가비를 따져보면 나는 월 60만 원의 현금흐름만 있어도 충분히 퇴사를 해도 되었다. 더 이상 퇴사를 망설일 이유가 없었다. 몸과 마음의 건강을 고루 갖춘 나이에 제2의 인생을 시작하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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