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화. 서른, 은퇴를 결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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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립기념일
: 부모님 댁에서의 출가가 아닌, 회사를 나가도 끄떡없는 자동 수익 시스템이 완성된 날.
그런 날이 오면 안전하게 퇴사하기로 결심했다. 회사와 나의 가치관이 다르고, 일이 도저히 적성에 맞지 않고, 건강에 적신호가 켜져도 버틸 수밖에 없다. 온갖 악조건 속에서도 기댈 돈을 비축해 두어야 했기 때문이다.
"하고 싶은 일만 해도 매달 월급 이상 들어오면 어떡할 거야?" 나에게 물었다.
"오늘 당장 사직서 내지." 0.1초 만에 대답이 튀어나왔다.
무슨 일이든 5년은 해봐야 내 길인지 아닌지 보인다고 믿는다. 그래서 퇴사 결정도 5년 차에 내렸다. 앞으로는 글로 먹고사는 사람이 되고자 하지만 5년간 단 한 푼도 못 번다면 계속해나갈 수 있을지 의심스러웠다. 어떤 형태로든 투입한 시간과 노력 대비 보상이 없으면 무기력 해질 테니까. 조바심도 한 세트다. 나약한 심리 상태로는 좋은 작품을 내기 어렵다. 수익이 창출될 가능성도 줄어드니 악순환이다.
그렇게 사이드 프로젝트가 시작되었다. 당장 할 수 있는 쉽고 간단한 일을 물색했다. 직장인에게 허용된 시간과 체력은 넉넉하지 못하니까. 그렇게 첫 목표는 애드포스트와 체험단이 되었다. 네이버가 정한 기준을 충족하면 내 블로그에 광고를 달수 있어 노출 및 클릭수에 따라 수익이 발생된다. 물론 글 쓰는데 시간과 품이 들어가지만 그래도 한 번만 해두면 자는 동안에도 돈이 벌리는 자동 수익이 만들어지는 셈이다. 체험단은 후기를 쓰는 대가로 업체에게 무료 이용권을 받는 구조다.
애드포스트 승인을 위한 조건은 3가지였다. 첫째, 블로그 개설 후 90일이 지날 것, 둘째, 포스팅 50개 이상, 셋째, 신청 전월 평균 방문자수 100명 이상. 현재 내 위치는? 어쩐지 2013년에 개설해둔 블로그가 있었다. 게시글은 최근 2년 동안 올린 7개. 나머지는 마음만 먹으면 한 달 안에 써낼 수 있다고 생각했다. 세 번째 조건이 넘기 힘든 난관이었다. 가족과 친구를 총동원해도 매일 100명은 무리다. 일단 게시글 수부터 채우기로 했다. 나만 열심히 굴리면 되니까.
아뿔싸. 첫날부터 회식이 잡혀버렸다. 예상치 못한 장애물이다. 백화점 7층으로 에스컬레이터를 타고 가는데 근사한 외관이 서서히 모습을 드러내는 것이 아닌가. 거의 본능적으로 스마트폰을 꺼내 들었다. 찰칵. 위기를 기회로 만들자고 다짐하는 순간이었다. 서버를 따라 맨 안 쪽 룸으로 들어갔다. 노란 조명이 드문드문 켜져 아늑하고 고급스러운 분위기를 자아내는 홀도 놓치지 않고 찍었다. 안내받은 자리는 통유리 바깥으로 반짝이는 야경이 내려다보이는 곳에 있었다. 차례로 나오는 음식이 식거나 말거나 초점을 맞추고 밝기를 조정하고 각도를 바꿔가며 촬영했다.
"선배님, 평소에 음식 사진 안 찍으시잖아요. 오늘은 엄청 열심이시네요?" 맞은편에 앉은 후배가 신기하다는 눈빛으로 말을 꺼냈다.
"나 블로그 시작했잖아. 포스팅하려고." 믿고 의지하는 후배만 들리도록 속삭였다.
회식과 출장지 숙소는 공짜로 양질의 콘텐츠를 만들 수 있는 재료가 돼주었다. 게다가 맛집과 여행은 많은 사람들이 검색하는 키워드이자 인기 있는 주제여서 방문자수도 서서히 늘어났다. 그러나 최대 일 방문자수가 80명에서 그치기 일쑤였다. 나머지는 지인 찬스로 어떻게든 채워보려 해도 우리 가족 넷과 초, 중, 고 동창 셋, 연인 하나로는 부족했다. 사회생활을 하며 자연스레 연락이 끊겨 선뜻 부탁할 친구가 떠오르지 않았다. 일회성이면 몰라도 매일 잊지 않고 블로그에 방문해 준다는 게 쉬운 일도 아니고 말이다. 동료에게는 당연히 안된다고 생각했다. 부수입이 월급을 넘어설지 나도 확신하기 어려운데 섣불리 퇴사 결심을 밝혔다가 팀 분위기를 흐려버릴지도 모를 일이었다.
이대로 첫 도전이 무산되려던 찰나 2가지 묘안이 떠올랐다. 일명 다단계 작전과 이웃 찬스! 먼저 친구의 친구도 있지 않은가. 고맙게도 나 대신 영업사원이 되기를 자처해 준 사람들이 있었다. 다음으로 직접 온라인 친구를 만들기로 했다. '서로 이웃'이 되면 내가 포스팅했을 때 상대방의 스마트폰에 알림이 뜬다. 그들의 관심사에 관해 클릭하고 싶어지는 제목으로 글을 발행하면 한 사람이라도 눌러볼 테다. 전략적 사고를 이때 하게 될 줄이야. 맛집 전문 블로거나 해당 포스팅에 댓글 단 사람들만 선별해 이웃 신청을 했다. 요청글도 영혼을 갈아 넣어 작성하여 수락률을 높였다.
서로 이웃 신청은 일 150명까지로 제한된다. 하루에 주어진 시간은 단 20분. 아침에 현관을 나서 통근버스에 타고 정문에 내릴 때까지 엄지 손가락이 쉬지 않고 움직인다. 인원수를 채우지 못하면 죽는 서바이벌 게임이라 생각했다. 마침내 일 방문자수가 100명이 되었다. 자정이 되기 5분 전, 겨우 찍은 날도 있었지만. 오히려 50개의 글을 채우는 것이 체력적으로 더 힘들었다. 하루종일 모니터를 보다 집으로 돌아오면 이미 눈에 빨간 핏대가 서있다. 높아진 안압으로 눈알이 곧 터져버릴 것만 같았다. 디지털 디톡스가 필요했다. 되도록 의자에 앉는 일도 피하고 싶었다. 내일의 체력을 당겨 써서 회사업무를 감당할 수 없을지도 몰랐다.
그런 날은 후기 대신 일기를 올렸다. 나를 움직이는 동력은 분노 에너지라 부당한 일, 단체 생활의 피로, 불편했던 말, 자기반성 등으로 생각이 많아지는 날에는 글을 쓰고 싶어졌다. 사실 어지러운 생각과 감정을 글로 쏟아내지 않고선 배길 수 없었는지도 모른다. 잠깐 뜨거운 물에 몸을 담그면 마음도 이완되는 건지 내면의 소리가 터져 나왔다. 세심히 끌어모아 모니터 앞에 앉는다. 시간이 얼마나 흘렀을까. 고개를 들어보니 새벽 1시였다. 글쓰기는 진통제다. 현실의 고통을 잊게 하고, 마음의 정화와 치유, 몰입의 즐거움까지 선사해 주기 때문이다.
글 근육이 약해 초반엔 한 포스팅당 4~5시간이 걸렸다. 평일로는 모자란 시간을 주말로 보충해야 했다. 데이트하러 가는 기차 안에서도 핫스팟을 켜고 퇴고를 했다. 지난 두 달은 네이버에서 '보류' 메일이 왔다. 사유는 방문자 수 또는 페이지 뷰 수 부족. 해가 바뀌면서 애드포스트 승인을 새해 목표 1순위로 잡고 자나 깨나 몰두했다. 2월 2일. 드디어 승인! 수입은 당장 사직서를 던지기엔 턱없이 부족했지만 온전히 내 힘으로 만든 첫 수익이라 큰 의미로 다가왔다. 채널이 커지면서 체험단에도 줄줄이 선정되면서 지출이 줄어들어 돈을 버는 셈이었다. 미용실, 네일샵, 공방 등 다양하게 무료로 누렸다. 덕분에 효도도 하고 이색 데이트도 즐겼다. 무엇보다도 체험을 하러 가기 전 날 밤, 내일에 대한 기대감으로 설렜다. '빨리 내일이 왔으면 좋겠다'는 마음으로 잠자리에 든 것은 초등학생 때 이후로 처음이었던 것 같다. 내가 쓴 리뷰를 보고 실제로 방문했다는 사람도 있어서 가끔이나마 영향력을 실감했다.
이웃수가 5,000명이 되면서 경쟁이 치열한 체험단 사이트에서도 종종 선정이 되었다. 기업에서 직접 블로그를 검수하여 뽑는 방식이어서 멋모를 자신감이 붙었다. 개인적으로 인정할 만한 성과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내 돈 주고는 절대로 하지 않을 20만 원 상당의 헤어클리닉과 수 십만 원짜리 피부 관리를 여러 샵에서 받아볼 수 있었다. 그 과정에서 자연스레 '진짜 좋은 것'을 가려내는 안목이 생겨났다. 체험단을 통해 돈을 모으는 능력과 제대로 쓸 줄 아는 능력을 동시에 터득한 것이다.
조금 색다른 것이 없나 둘러보다 '사주 체험단'이 눈에 띄었다. 그렇게 우연히 백단사라는 점집을 찾아가게 되었다. 물어볼 것도 정해두지 않고 단순히 재미 삼아 간 것이다. 가정집 방 한 칸에 차린 자그마한 공간이었다. 무시무시한 표정의 금색 조각상과 오색찬란한 깃발과 모형에 둘러싸인 채 바닥에 앉았다. 블로거로서 사진 촬영을 마치고, 이름과 생년월일, 태어난 시간만 묻고 답했다. 그런데 보살님이 갑자기 매서운 눈빛으로 쏘아보시더니 불호령을 치기 시작했다.
"너는 사업해야 할 팔자야. 하기도 싫은 걸 왜 억지로 붙잡고 있어? 월 500만 원 1,000만 원 버는 것도 아닌데 그럴 필요 뭐 있어. 끊어낼 땐 과감하게 끊어내고, 붙잡을 땐 끈질기게 붙잡고 해야 되는 거야! 알겠어? 억지로 회사 다니다가 어영부영 결혼하고, 애 낳고, 나이 들면 아무것도 못하는 거야. 머리 잘 굴러가잖아~ 너는 네가 하고 싶고 잘하는 거 하면 잘 돼. 무조건 성공해."
퇴사에 대한 두려움과 결단이 엎치락뒤치락하던 중이었기에 동그랗게 뜬 눈을 껌뻑거리며 속으로 연신 맞장구를 쳤다. '그래, 내 말이 그 말이야. 내 생각이 맞아. 해보자!' 사주팔자를 맹신한다는 의미가 아니다. 할까 말까 고민될 때, 누군가의 입을 통해 확신에 찬 말을 들으면 어쩐지 용기가 생기지 않는가. 긍정 확언이랄까. 저명한 상담사에게 카운슬링을 받은 것 같은 기분으로 돌아갔다. 그 외 건강, 자식운에 대한 이야기는 들리지도 않았다. 보살님의 호통 소리는 연신 내 귀에 맴돌았다.
몇 주 뒤 퇴사 결심을 내리게 한 트리거가 된 사건이 두 차례 연거푸 일어났다. 동시에 아슬아슬하던 내 건강도 무너져 내렸다. 사이드 프로젝트로 아직 월급을 넘기기 전이었다. 하지만 도전하기 전과 후의 나는 달랐다. 가능성과 믿음을 엿보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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