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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포 김 사장 Nov 14. 2019

창작자가 절대 건드려선 안 되는 것


지난주에 케이분샤 서점을 둘러보고 반나절가량 시간을 내서 다카라즈카 시에 있는 테츠카 오사무 기념관에 다녀왔다. 그가 어린 시절부터 20여 년을 보냈던 고장에 자리한 이곳은 예전부터 꼭 한번 가보고 싶었는데 과연 기대한 대로였다. 오리지널 애니메이션을 상영하는 아톰 비전 영상 홀에서 <우주 소년 아톰>의 주제곡(경음악이지만)을 듣는 것만으로도 입장료가 아깝지 않았다. 오사무가 평생에 걸쳐 그렸지만 결국 미완으로 남은 걸작 SF만화 <불새>의 생명유지장치를 형상화한 캡슐 안에는 만화가로서 오사무의 일생이 소개되어 있어 눈길을 끌었다.   


테츠카 오사무는 다섯 살 무렵부터 만화를 즐겨보기 시작했다고 한다. 어머니가 늘 만화책을 구입하는 데 쓸 수 있는 용돈을 챙겨준 덕분이다. 뿐만 아니라 동화를 구연하듯 “악당의 대사는 음험하게, 주인공의 대사는 밝은 목소리로” 만화를 읽어주었단다. 시민권을 얻지 못해 서점에서도 팔지 않고 걸핏하면 유해매체로 분류되기 일쑤였던 당시의 분위기를 감안하면 실로 파격적인 어머님이 아닌가. 그때 “눈물을 흘리기도 하고 흥분으로 몸을 떨기도 했던” 경험 덕분에 아톰이라는 걸출한 캐릭터가 만들어졌다고 생각하니 오사무의 어머님 무덤을 찾아뵙고 꽃이라도 바치고 싶은 기분이 들 정도다. 


아톰의 인기를 발판으로 오사무는 애니메이션 회사를 설립한다. 사원만 500명이 넘는 규모였다. 그러나 사업가로서의 재능은 낙제에 가까워서 금세 부도를 맞은 모양이다. 가깝다고 여겼던 동료들과 잘나가는 동안 사귀었던 친구들은 “테츠카의 시대가 끝났다”며 모두 등을 돌렸다. 실의에 빠진 테츠카의 손을 잡아 준 이는 카츠사이 켄조라는 남자였다. 그는 대만으로 도망치려 한 오사무를 설득하고 채권자들 앞에서 머리를 조아리며 작품의 판권을 보호한 끝에 2년이 채 지나지 않아 회사를 정상으로 돌려놓는다. 


그렇다면 카츠사이는 왜 자신의 재산을 내놓으면서까지 이토록 헌신했을까. 오사무의 사후에 발간된 에세이 <어머니는 나에게 하고 싶은 일을 하라고 하셨다>에서 카츠사이가 밝힌 사연은 이러하다. <철완 아톰>이 TV로 방영되어 인기를 얻을 당시, 카츠사이의 아버지가 운영하던 가구 회사는 자금 사정이 악화되어 망하기 직전이었다. 고심 끝에 오사무를 찾아간 그는 아버지의 회사에서 만드는 아동용 책상에 아톰 캐릭터를 ‘무상으로’ 사용하게 해달라고 부탁한다. 사정을 들은 오사무는 흔쾌히 허락했고 아톰의 얼굴이 인쇄된 책상은 소비자들로부터 폭발적인 반응을 얻는다. 아버지의 회사가 다시 일어서고 나서는 인연이 끊겨 한 번도 만나지 못했지만 “오사무가 절체절명의 위기에 빠졌다는 소식”을 들은 카츠사이는 “자신이 보답할 차례”라는 생각으로 곧장 달려간 것이다. 


뛰어난 만화실력 못지않은 그의 성품을 엿볼 수 있는 사례라 하겠다. 이에 더하여 데츠카 오사무가 얼마나 훌륭한 창작자였는지는 <데즈카 오사무의 만화창작법>을 읽으면 실감할 수 있다. 딱 한 문장만 예로 들어볼까. 아마추어든 프로든 상관없이 창작자라면 귀담아 듣기를 바란다며 그는 이렇게 적었다. “아무리 통렬하고 강렬한 문제를 만화로 그리더라도 절대로 건드려서는 안 되는 것이 있다. (1) 전쟁이나 재해의 희생자를 놀리는 것. (2) 특정 직업을 깔보는 것. (3) 민족이나 국민, 그리고 대중을 바보로 만드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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