앨리스 먼로의 소설 『행복한 그림자의 춤』에는 주인공이 남편에게, 대관절 널찍하고 전망도 좋은 집을 놔두고 작업실을 얻으려는 이유가 뭔지를 설명하는 장면이 나온다. 여자와 남자에게 있어 집은 의미가 다른 공간이니까 자신에게는 집이 아니라 작업실이 필요한 거라고 그녀는 말한다. 한때의 소설가 지망생이었던 나는 이 대목을 읽다가 살짝 무릎을 치며 공감했다. 생각 같아서는 크게 인쇄하여 ‘왜 멀쩡한 집을 놔두고 작업실 따위를 얻으려 하느냐’는 식으로 핍박받는 작가 및 번역가 지망생의 부모님들에게 나눠주고 싶다는 기분이 들었을 정도다. 이 책을 읽고 난 이후로 나는 앨리스 먼로를 좋아하게 되었다. 그녀의 소설도 몽땅 읽었다. 그러다가 우연히 알게 되었다. 먼로가 캐나다에서 서점을 운영했다는 사실을.
먼로 부부가 서점을 차리고 싶다는 생각을 한 것은 존 F. 캐네디가 대통령으로 당선되던 해의 일이다. 당시 남편 먼로는 밴쿠버의 이튼 백화점에서 매니저로 일하고 있었다. 그가 12년 동안이나 몸담았던 직장을 때려 치고 서점을 차리겠다고 했을 때 주위에서는 모두 손사래를 치며 말렸다고 한다. 밴쿠버는 듀디 북스라는 대형 체인 서점이 석권하고 있었기 때문에 독립 서점이 자리 잡을 가능성은 희박하다고 여겼으리라. 먼로는 ‘빅토리아 섬이라면 괜찮지 않을까’ 하고 생각했다. 그리하여 1963년에 먼로스 북스를 열었다. 두 사람은 쉬지 않고 열심히 일했지만 주위에서 예상했던 것처럼 운영은 쉽지 않았다. 그들은 두 번의 이사 끝에 ‘임대가 아니라 자기 건물을 가져야 적자를 보지 않을 수 있겠다’고 생각했다. 그 무렵 먼로는 오래된 건물 하나를 눈여겨보던 중이었다. 아무도 사려고 하지 않은, 피폐해진 은행 건물이었다.
그가 구입한 은행 건물은 듀디 북스가 망해서 문을 닫는 동안에도 굳건히 자리를 지켰고 오늘날에는 캐나다의 유명 관광지가 되었다. 하지만 아내 먼로는 도중에 서점 일을 그만두었다. “언젠가 서점에서 일하고 있는데 아내가 말했어요. 자기가 이 작가들보다 더 잘 쓸 수 있다고. 그 후 앨리스는 서점 일을 그만두고 집에 머물며 글을 썼지요”라고 남편 먼로는 말한다. 결국 두 사람은 이혼했지만 앨리스 먼로가 노벨문학상을 받았을 때 먼로스 북스는 건물 전면 유리를 온통 먼로의 수상을 축하하는 장식들로 아로새겨 놓았다. 아울러 서점에서 가장 좋은 자리에 『디어 라이프』를 진열해 두었으며 카운터에는 사람들이 먼로에게 축하 메시지를 남길 수 있는 방명록을 비치해 두었다. 그리고 앨리스는 기꺼이, 먼로스 북스에서 마련한 작가 사인회에 참석했다.
현재 먼로스 북스는 남편 먼로에게서 가게와 재고 도서들을 그냥 물려받은 것이나 마찬가지인 고참 직원 네 명이 운영하고 있다. 세대교체라고 할까. 내가 몇 권의 책을 구입하며 카운터에서 친절한 표정으로 계산을 도와준 직원에게 슬쩍 물어보니 이 서점에서만 42년간 일했다는 대답이 돌아왔다. 방긋 웃는 웃음에서 ‘뭘 이 정도로’ 하는 자부심이 느껴졌다. 이들은 책을 둘러싼 환경이 빠르게 변하고 있음을 인정하면서도, 세계 곳곳에서 찾아오는 관광객들과 (시간이 나는 대로) 자주 방문하는 일이 지역 서점을 응원하는 길임을 깨달은 동네주민들 덕분에 여전히 먼로스 북스의 전망은 나쁘지 않다고 말한다. 먼로스 북스가 반드시 지켜야 할 소중한 문화유산임을 거론하는 것도 잊지 않았다. 한 군데에서 오십 년 넘게 자리를 지켰다는 점도 그렇거니와, 오래도록 자리를 지키는 동안 고풍스러움이 더해져 이제는 문화유산으로 인식되는 서점이 있다는 것은 꽤 근사한 일인 듯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