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나는야 향기로운 수영인
새벽 수영을 다녀와서
열심히 일을 하다 보면요.
어디서 이상한 냄새가 날 때가 있더라고요.
뭐지?
처음에는 잘 몰랐어요.
그러다가 문득 깨달았습니다.
수영장 소독 냄새구나.
수영장 소독 냄새 아시죠?
음..
잘 모르신다면
락스 냄새랑 비슷하다고 생각하시면 될 것 같아요.
사람이 참 신기한 게
전에는 몰랐다가
한 번 의식하기 시작하면
그다음부터는 계속 의식이 되잖아요.
저에게 수영장 냄새가 그랬어요.
락스 냄새가....
계속 나는 것 같았습니다.
처음엔 수영 용품에서 나는 것 같았는데
수영장 소독 냄새가 제 몸에서도 나는 것 같았어요.
깨끗이 안 씻어서 그런가 싶기도 했는데
그런 건 아닌 것 같았어요.
방법을 찾아야만 했습니다.
제 교실에는 향이 좋은 디퓨저가 있었습니다.
발향이 잘 되는 제품이라
문가 쪽에 두어서
교실 전체 아이들이 향을 맡을 수 있게 했어요.
교실에 디퓨저를 놓는 건,
온화하고 우아하신 선배님께 배운 거예요.
회의를 하러 선배님 교실에 가면 늘
향긋한 향이 났거든요.
그 반 아이들은 참 행복하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선배님은 수업 준비 면에서나 아이들 생활지도 면에서도
본받을 점이 정말 많은 분이셨습니다.)
그런데,
발향이 잘 되는 디퓨저의 향보다
수영장 락스 냄새가 더 강했습니다.
고민 끝에
향수를 사야겠다고 다짐을 했습니다.
결혼 전에는 이따금 향수를 사서 뿌리고 다니긴 했거든요.
결혼하고 아이 엄마가 된 분들 중에 공감하실 분들이 계실지 모르겠지만
어느 순간
향수 냄새가 너무 싫은 거예요.
좀... 인위적이고 독하다고 느껴졌어요.
그래서 한 동안 향수를 멀리했었는데
제 몸에서 락스 냄새가 나는 것 같으니
어쩔 수 없이 향수를 사야겠다고 다짐했어요.
문제는
향수를 사러 갈 시간을 내기가 힘들더라고요.
인터넷으로 향수를 알아보고 살까도 싶었지만
향을 글로 추측한다는 게...
너무 어려운 일이었어요.
그러다가 문득 올리브*이 생각이 났습니다.
퇴근 후 지하철 역에 내리면 올리브*이 있었거든요.
'내가 왜 진작 그 생각을 못했을까?'
생각하면서 정말 좋은 아이디어라며
혼자 좋아했어요.
매장에 가서 향을 맡아보는데
사고 싶은 향이 없더군요.
분명 젊은 시절 잘 사용했던 향수들이 있었는데도
마음이 가지 않더라고요.
그래서 안 샀습니다.
적당히 타협할까 싶었지만
향수를 한 번 사면
일 년 이상 쓰는데
타협하고 싶지 않더라고요.
그러던 어느 날이었어요.
아이와 함께 주말에
나들이를 갔다가 집에 오는 길에
예쁜 매장을 발견했습니다.
예쁜 걸 참 좋아하는
둘째 아이가 들어가 보자고 했습니다.
피곤해서 들어가기 싫었지만
아이에게 매장 앞에서 사진만 찍자고 약속을 하고 매장으로 갔어요.
사진을 두어 장 찍었는데
점원이 나오시더군요.
"아이 눈이 엄청 크네요. 들어오셔서 구경하고 가세요.
10분 후에 마감인데 원래 가격보다 30% 넘게 할인하고 있어요."
결국, 매장 안으로 들어갔습니다.
알고 봤더니
향수 팝업 스토어였습니다.
니치향수래요.
니치향수가 뭔가 찾아봤더니
니치는 틈새를 뜻하는 이탈리아어 nicchia에서 파생된 용어로
최고의 조향사들이 최상의 원료로
소수의 취향을 만족시키기 위해 만든 프리미엄 향수를 뜻합니다.
아주 만족스러운 향은 아니지만,
이 정도면 사도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리고 구매를 했습니다.
감사하게도 작은 샘플 몇 개를 챙겨 주셨습니다.
큰 향수는 집에 두고 주말에 사용하고,
샘플 향수 한 개는 수영할 때 가지고 다니는 화장품 파우치에 넣었습니다.
교실 서랍장에도 하나 넣어놨어요.
수영장 냄새가 날 때 한 번씩 칙칙 뿌려볼까 해서요.
그 뒤로,
수영이 끝나고 나올 때마다
칙칙
뿌리면서
락스 냄새를 달랬습니다.
향수 냄새가 아무리 독해도
락스 냄새보단 고울테니까요.
향수 덕분에
향기로운 수영인이 되었답니다.
오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