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기 조심하세요”
[독서신문 서믿음 기자] '찌파구리'(짜파게티+너구리)를 외국인에게 어떻게 설명해야할까? 번역가 달시 파켓은 영화 <기생충>에 등장하는 ‘짜파구리’를 라면과 우동의 합성어인 '람동'(ram-don)으로 시의적절하게 영문 번역했고, 이는 해당 영화가 세계적으로 호평받는 데 일조했다. 한국인만 이해할 수 있는 개념을 외국인의 눈높이에 맞게 재창조해 설명한 것이다. 원작이 아무리 뛰어나도 그 맛을 살리는 번역 없이는 세계 시장을 공략할 수 없는 법. 해외에서 번역은 문학의 한 갈래로까지 인정하는 추세인데, 2016년 소설 『채식주의자』로 한강 작가가 부커상(인터내셔널상)을 수상할 때 번역가 데보라 스미스가 함께 상을 받은 것도 그런 이유에서다. 날로 중시되는 번역의 가치. 국내 번역가들은 그 가치를 제대로 인정받고 있을까?
번역회사를 거쳐 프리랜서 번역가로 활동하는 A씨는 최근 공동 고소를 준비하고 있다. 2년 전 P**에이전시의 번역가 모집 공고를 보고 지원, 두 번의 샘플 테스트를 거쳐 도서의 영한 번역 작업을 배정받아 완료했지만, 대금을 받지 못했기 때문이다. 에이전시 측은 “담당자가 외부에 있다” “출근을 못했다” “출장을 갔다”고 핑계를 대며 지급을 미루다가, 폐업 신고를 했고, 뒤늦게 그 사실을 알게 된 A씨가 따져 묻자 “회사 사정이 어렵다. 그동안 번역료 지급은 ‘돌려막기’를 해서 해결했으나 현재는 사정이 어려워 폐업 신고를 하고 재정비 중이다. 올해(2019년) 5~6월에는 지급하겠다”고 해명한 후, 현재까지 연락이 끊긴 상황이다.
언뜻 경영난으로 피치 못하게 번역료를 지급하지 못한 것처럼 느껴지기도 하지만, 온라인 커뮤니티 ‘번사모’(번역 사기 피해자 모임)에 따르면 P**에이전시의 사기 행각은 10여 년 전부터 이뤄져 왔다. P**에이전시로부터 사기를 당했다는 최초 폭로 글이 오른 것만 해도 2012년. 커뮤니티에는 현재까지 수십여 건의 피해 고발 글이 올라온 상황이다.
여기서 이런 의문이 든다. 꽤 오랜 시간 동안 지속해서 피해자가 발생했는데 왜 처벌을 받지 않았을까? 주된 이유는 거래 금액이 소액이라는 점이다. 일반적으로 프리랜서 번역가의 번역료는 장당 8,000원 정도로, 평균 피해 금액은 수십~수백만원 선이다. 피해 금액이 3,000만원 이하인 경우 경찰 수사가 제대로 이뤄지기 어렵고, 법원으로 넘어가도 소액재판에 해당해 무거운 처벌을 끌어내기 어렵다. 이런 상황으로 인해 경찰을 찾은 피해자들은 “(떼인 돈을) 못 받을 가능성이 크다. 이 정도 금액에 경찰서, 법원 왔다 갔다 할 바에 차라리 신고를 취소하는 편이 낫다”는 대답을 듣는 경우가 많다.
물론 피해자들이 힘을 합쳐 공동소송을 진행하면 승산이 있긴 하지만, 전화번호와 업체명, 대표명을 수시로 바꾸는 에이전시를 상대로 시간/재정적으로 곤궁한 프리랜서 번역가들이 소송을 벌이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간혹 그런 사람이 나오더라도 에이전시 측이 변제를 미끼로, 소송 취하를 유도하는 경우가 많고, 이 경우 대다수 피해자는 ‘이 정도면 됐다’는 생각에 소송을 취하는 경우가 많아 단호한 ‘처벌’이 어려운 상황이다.
지난해 7월 가짜 번역 사이트를 만들어 1년간 프리랜서 번역가 20여명에게 2,200여만원을 편취한 50대 남성이 상습사기 혐의로 검찰에 송치된 사실이 알려졌지만, 번역 사기 피해를 호소하는 피해자들의 글은 지금도 온라인 곳곳에 오르고 있다.
결국 피해를 보지 않으려면 스스로 조심할 수밖에 없는데, 그러기 위해서는 번사모 등의 온라인 커뮤니티에서 정보를 파악하는 것이 중요하다. 해당 커뮤니티는 대표명과 업체명을 바꿔가며 오랜 시간 사기 행각을 벌이는 업체 정보와 그로 인한 피해 사실을 공개해 추가 피해를 막는 데 노력하고 있다. 번역 사기 피해를 본 다수의 피해자는 “번역을 맡기 전에 업체를 제대로 알아보는 노력이 필요하다”며 “사업자등록증과 메일 주소 등을 온라인 커뮤니티 등에 미리 검색해보는 것이 좋다”고 조언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