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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독서신문 Feb 06. 2020

혐오와 불안으로 가득한 사회, “모두가 건강해지는 방법


[독서신문 송석주 기자] 중국에서 시작한 ‘신종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과 맞물려 제노포비아(xenophobia : 이방인에 대한 혐오 현상을 뜻하는 말)까지 확산하고 있는 형국이다. 누군가를 미워하는 마음을 가지는 것만큼 인간에게 해로운 것은 없다. 타인에 대한 ‘혐오’와 함께 우리의 삶에 수시로 틈입하는 ‘불안의 강도’가 갈수록 심화하고 있는 이유는 무엇일까?


책 『불안사회』의 저자 에른스트 디터 란터만은 언론을 포함한 미디어의 보도 행태를 비판한다. 그는 “(특정 언론이) 모든 것을 단순한 덩어리, 흑백의 정치, 첨예하고 거친 친구와 적의 구도로 치환시키며, 사람들을 정치적 계급과 외국인, 내국인이라는 양립할 수 없는 구도로 대립시킨다”며 “이들의 목표는 점점 더 많은 플랫폼을 제공하는 미디어를 통해 지속적인 정치적, 사회적 흥분과 격앙 상태를 조장하고, 증오로 가득 찬 외국인혐오 프로그램의 팬을 모으는 것”이라고 지적한다.


이에 더해 누군가에 대한 혐오는 상대방뿐만 아니라 자신의 정신 건강까지 무너뜨리는 결과를 초래한다. 책 『혐오사회』의 저자 카롤린 엠케는 증오의 대처법에 관해 “자신과 똑같아지라는 증오의 유혹을 뿌리치는 수밖에 없다. 증오로써 증오에 맞서는 사람은 이미 자기도 따라 변하도록 허용한 셈이며, 증오하는 자가 원하는 모습에 가까워진 것”이라며 “증오에는 증오하는 자에게 부족한 것, 그러니까 정확한 관찰과 엄밀한 구별과 자기회의로써 대응해야 한다”고 말한다.


그는 “증오가 걷잡을 수 없이 폭발하기 전에 ‘미리 관찰’한다면 그것에 대처할 수 있는 또 다른 가능성이 생긴다. 어쩌면 증오에 대항하는 가장 중요한 태도는 고립되지 않는 것인지도 모른다”며 “증오의 큰물이 계속 부풀어 오르는 것을 방치해서는 안 된다. 모든 이가 딛고 설 수 있는 튼튼한 지반을 닦아놓는 것, 그것이 가장 중요한 일”이라고 말한다.


그렇다면 사회 도처에 공기처럼 깔린 혐오의 시선을 거두고, 불안으로부터 탈피하기 위해 할 수 있는 일은 무엇일까? 책 『그건 혐오예요』의 저자 홍재희는 제노포비아를 포함해 ‘여성 혐오’ ‘장애인 혐오’ ‘성소수자 혐오’ 등을 차례로 고찰하며 ‘타자에 대한 공감’을 강조한다.


그는 “공감이란 내 주변에 항상 있지만 보이지 않았던 사람들에게 주의를 기울이는 것이다. 내가 혐오하는 사람들이 낯선 타자나 이방인이 아니라 실은 나의 ‘다른 얼굴’이라는 사실을 단지 아는 것이 아니라 ‘깨우치는’ 것”이라며 “공감하면 소통할 수 있다. 소통하면 이해하게 된다. 이해하면 더는 혐오할 수 없다. 그런데 공감 없는 이해는 오만한 해석이 되기 쉽고, 이해 없는 공감은 극단으로 치우치기 쉽다. 그러므로 공감하려면 알려는 의지가, 즉 상대방을 이해하려는 노력이 선행돼야 한다”고 말한다.


상대방의 어려움에 공감하기 위해서는 먼저 스스로에 대한 절절한 자각이 선행돼야 한다. 이에 대해 책 『힐링 소사이어티』의 저자 이승헌은 혐오를 거두고 모두가 행복해지는 방법으로 ‘깨달음의 실천’을 강조한다. 그는 “지금까지 인류는 우리 모두가 마음 깊이 동의하는 비전을 만들어내지 못함으로써 전 지구적 차원의 조정 능력을 잃어버렸다. 갈등을 통합하는 중심가치의 부재로 각종 국제기구는 이익단체화됐다”며 “필요한 것은 깨닫겠다는 우리들의 의지이며 선택”이라고 강조한다.


우리는 누군가에 대한 혐오를 거두는 것만으로도 건강해질 수 있다. 이는 한 개인에 국한된 정신 건강의 회복만을 의미하는 게 아니다. 혐오는 늘 타자를 동반하기 때문에 혐오를 극복한다는 것은 결국 나와 너를 구원하는 동시에 우리가 딛고 있는 사회에 건강한 울타리를 세우는 일과 연결된다. 나와 우리 가족의 건강, 타자와의 공존과 상생을 위해서 서로의 마음에 있는 미움을 덜어내고 사랑을 쌓아올려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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