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미 더글러스의 우화(寓話) 『이것이 선거다-토미 더글러스의 마우스랜드 이야기』에는 대통령으로 고양이를 뽑는 쥐들이 등장한다. 선거 때마다 고양이는 쥐들을 대변하는 목소리를 내지만 막상 대통령이 되면 쥐들을 잘 잡아먹을 수 있게끔 쥐구멍을 넓히거나 쥐의 이동 속도를 제한하는 등의 정책을 시행한다. 피폐해진 삶을 바꿔보기 위해 쥐들은 검은 고양이를 뽑는 대신 흰 고양이를, 흰 고양이를 뽑는 대신 얼룩 고양이를 뽑아보지만 삶은 더욱 나빠지기만 한다. “왜 대통령으로 쥐를 안 뽑고 고양이를 뽑느냐”고 질문한 어떤 쥐는 ‘빨갱이’ 취급받고 감옥에 갇힌다.
인지언어학의 창시자 조지 레이코프의 책 『코끼리는 생각하지 마』에도 자신의 무지를 인지하지 못하는 유권자들의 사례가 나온다. 가령, 코미디언 지미 킴멜(Jimmy Kimmel)은 자신의 쇼의 제작진 중 한 명에게 마이크를 들려 로스앤젤레스 길거리로 내보낸 다음 행인들에게 ‘오바마케어’와 ‘저렴한 건강보험법’ 중에 어느 쪽을 더 선호하는지 묻게 한다. 그런데 이때 압도적 다수가 자기는 오바마케어는 싫지만 저렴한 건강보험법은 좋은 아이디어라 생각한다고 답했다. 이들 대부분은 오바마캐어와 저렴한 건강보험법이 같은 법안임을 알지 못했다.
4·15총선이 코앞이다. 선거가 가까워졌음에도 이런 이야기가 그저 우습기만 하다면 자신을 돌아볼 필요가 있다. 전문가들은 대다수 유권자가 이 이야기 속 유권자들처럼 그다지 현명하지 않다고 입을 모으기 때문이다.
역사학자 리처드 솅크먼은 책 『우리는 왜 어리석은 투표를 하는가』에서 유권자들이 무지하다고 역설한다. 그는 유권자들의 ▲정보를 수동적으로 입수하는 경향 ▲사안에 관한 확실한 정보보다는 후보자에 관한 개인적인 정보를 더 잘 기억하는 경향 ▲애매한 것을 싫어하고 복잡한 것은 질색하는 경향 ▲원인과 결과의 관련성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는 경향을 지적했다.
가령 유권자는 만약 국가 경제가 어느 대통령의 임기 동안 나아진다면, 그 대통령이 그런 좋은 상황을 가져오기 위해서 무엇을 했으며, 혹은 무엇을 하지 않았는지는 모른 채, 무작정 그 공을 대통령과 당시 집권 여당에 돌리는 경향이 있다. 또한, 정치인이 주는 인상이나 느낌은 선거의 승패를 좌우할 정도로 유권자에게 큰 영향을 미친다. 때문에 상대 후보보다 호감형이 아닌 정치인의 경우 노골적으로 유권자의 감정에 호소하거나 상대 후보에 대한 유권자의 불안감을 자극해 자신의 약점을 보완하려 한다. 솅크먼은 특히 경제 정책에 있어서는 유권자가 가진 비합리적인 편향성이 두드러진다고 설명했다.
솅크먼은 대다수 유권자가 어느 정당이 의회를 장악하고 있는지조차 모르며, 의회 활동에 대해서도 알고 있는 것이 그다지 없는 등 투표할 준비가 되지 않은 채로 선거에 임한다고 주장하며 “국민들로 하여금 자신의 무지를 직시하게 하는 일도 반드시 필요하다”라고 말한다.
선거에서 이기는 방법을 다루는 책들도 대중이 기본적으로 무지하다는 것을 전제로 한다. 가령 데이터 평론가 최광웅은 책 『이기는 선거』에서 “유권자는 이성적으로 판단하며 전략 투표를 한다”는 말을 빅데이터를 통해 정면으로 부정하며, “유권자들은 마음 내키는 대로 찍는다”고 설명한다. 그에 따르면, 선거에서 이기기 위해서는 우선 후보자는 세금을 올리는 정책을 말하면 안 되고, 이성이 아닌 감성을 자극해야 한다.
한편, 현대 유권자의 무지함은 과거 유권자와 비교해도 그다지 달라진 게 없어 보인다. 로마 공화정 말기의 정치가 마르쿠스 툴리우스 키케로의 동생 퀸투스 툴리우스 키케로가 형의 승리를 위한 선거 전략을 정리한 책 『선거에서 이기는 법』에도 선거에 이기기 위해서 정책의 개발보다는 유권자에게 빚을 지게 하거나, 아첨을 하는 등 유권자의 감성에 호소해야 한다는 내용이 나온다.
독일의 철학자 괴테는 “우리들은 별로 알지 못한다고 할 때만 정확하게 안다”고 말했다. 소크라테스 역시 “무지를 아는 것이 곧 앎의 시작”이라고 했다. 다가오는 총선에는 자신의 무지를 직시해 현명한 유권자가 돼보는 것은 어떨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