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전은 시대를 초월한 우수한 문학성을 지닌 문학 작품을 뜻한다. 어느 시대에 사는 누구든, 무릇 사람이라면 ‘공감’할만한 ‘인간 본성’에 관한 내용을 다뤄 ‘인간에 대한 이해력’을 높이는 문학 작품인 것. 다만 유명세만큼 관심도가 높지 않아 그간 고전은 ‘누구나 그 내용을 안다고 생각하지만 아무도 끝까지 읽지 않는 책’으로 여겨져 온 것이 사실이다. 다만 최근 코로나 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가 지속되면서 고전 『페스트』가, 정확히 말하자면 작품의 의미가 주목받고 있다.
현재 시중에 유통 중인 『페스트』는 20여 종으로, 코로나19가 확산하기 시작한 지난 2월 1일부터 최근까지 4,000부 이상 팔리면서, 지난해 동기 대비 약 20배 높은 판매고를 기록했다. 그중 민음사의 『페스트』는 3월 넷째 주 베스트셀러(교보문고) 4위에 오르는 기염을 토하며 주목받고 있다. ‘아무도 끝까지 읽지 않는 책’인 『페스트』가 다시 주목받는 이유는 무엇일까?
가장 큰 이유는 코로나19, 정확히는 코로나19에 대한 불안감에 기인한 것으로 보인다. 코로나19로 전 세계적으로 사상자가 속출하는 가운데, 비슷한 사례인 1347년~1352년 유럽 전역에서 인구 절반의 목숨을 앗아간 위협적 페스트 전염병의 극복사(史)가 궁금해졌기 때문. 병마에 맞서는 의료기술은 발전했지만, 그럼에도 죽음의 공포는 여전하고, 그 공포에 따라 각기 다르게 표출되는 인간 본성을 고전에서 찾는 사람이 늘어나는 모습이다.
소설은 1947년 출간됐지만, 전염병을 대하는 사람들의 자세는 세기가 바뀐 지금과 별반 다르지 않다. 무더운 4월, 쥐로부터 시작된 페스트는 코로나19의 숙주인 박쥐를 떠올리게 하고, 페스트 발병 사실을 인정하지 않았다가 피해를 키운 방역 당국의 모습은 코로나19 발병을 축소/은폐하는 데 급급했던 중국 우한의 모습과 겹쳐 보인다. 도시 봉쇄도 마찬가지. 폐쇄된 오랑시에 고립돼 고통받았던 소설 『페스트』 속 주민들처럼, 현재 전 세계 곳곳에서 많은 사람들이 고립된 상태로 고통받고 있다. 또 그에 따른 경제난도 판박이처럼 재현되고 있다. 가게마다 긴 줄이 늘어서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매진’ 딱지가 붙고, 생필품 가격이 치솟고, “페스트가 관광산업의 패인”이라는 호텔 지배인의 푸념도 낯설지 않다. 신규 영화 공급이 끊겨 영화관마다 필름을 주고받는 모습도 재개봉으로 버티고 있는 지금의 영화계를 떠올린다.
언론이 제 역할을 하지 못한다는 비판도 여전한 모습이다. ‘올바른 정보 전달’을 사명으로 내세운 소설 속 언론은 올바른 정보 전달보다 신약품 광고에 치중하고, 그 때문인지 잘못된 정보로 인해 시중에선 술(순수한 알코올이 소독효과를 낳는다고 알려짐)과 박하정제 사재기가 끊이지 않는다. 또 “(인간의 죄로) 하느님의 광명을 잃고 우리는 이제 오랫동안 페스트의 암흑 속에 빠지고야 말았다. 여러분이 불행을 겪는 건 당연하다”는 파늘루 신부의 설교는 “신의 노함으로 우한과 대구 등지에 재앙이 내렸다”는 일부 종교인들의 주장과도 맞닿아 있다. 도시가 봉쇄된 틈을 타 밀수로 사익을 채우는 코타르는 오늘날 방역용품 사재기꾼들과 별반 다르지 않은 모습이다.
그렇다고 소설 『페스트』에 분노 거리만 있느냐. 그건 아니다. 봉쇄된 도시에서 아내와 생이별한 채로 환자 돌보기에 힘쓰는 의사 리유, 마찬가지로 취재를 위해 오랑을 방문했다 고립된 후 사랑하는 아내에게 가기 위해 탈출을 꾀하지만 끝내 탈출을 포기하고 보건대에서 활동하는 기자 랑베르, 행정착오로 수용소에 감금되지만 풀려난 후 수용소로 돌아가 봉사활동을 하는 예심판사 오통, 보건대로 활동하다 끝내 목숨을 잃는 타루, 혈청 제조에 몰두하는 의사 카스텔, 시청 말단 직원으로 자질구레한 업무를 묵묵히 소화해내는 그랑까지. 저자는 절망 속에서 피어나는 희망이란 꽃을 화려하지 않게, 덤덤하게 그려낸다. 그렇다고 등장인물을 영웅으로 그려내지도 않는다. 오히려 그랑처럼 사상자 통계를 내고, 잡무를 처리하는 등 자신에게 주어진 일에 최선을 다하는 행동을 과장되지 않게 그려낸다.
소설 속 페스트는 끝내 종식되지만 화자인 의사 리유는 자신의 글이 완전한 승리의 기록이 될 수 없다는 것을 시인한다. 소설 말미에서 그는 “그들이(페스트에 희생당한 사람들) 감내해야 했던 불의와 폭력에 대한 기억 하나만이라도 남겨 두기 위해서, 그리고 사람들이 재앙 한가운데서 배우는 것, 즉 인간에게는 경멸보다 감동할 점이 더 많다는 사실만이라도 말하기 위해서 이 글을 쓰기로 결심했다”면서 “(페스트균은) 수십 년 동안 잠든 채 지내거나 침실, 지하 창고, 트렁크, 손수건 심지어 쓸데없는 서류들 나부랭이 속에서 인내심을 가지고 때를 기다리다가, 인간들에게 불행도 주고 교훈도 주려고 저 쥐들을 잠에서 깨워 어느 행복한 도시 안에다 내몰고 죽게 하는 날이 언제가 다시 오리라는 사실을 알고 있다”고 말한다.
70여 년 전 페스트에 이어 다시 찾아온 전염병 코로나19가 이 시대에 건네는 교훈은 무엇일까? 소설 『페스트』는 이렇게 말하는 듯하다. “비단 영웅이 아니어도 맡은 일을 묵묵히 해내는 그랑이 값지다”고 말이다. 『페스트』가 다시 주목받는 건 그런 답을 찾을 수 있다는 기대 때문은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