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번방 사건’을 한 문장으로 요약하면, 여성 대상의 디지털 성범죄 사건이다. 하지만 이렇게 단순화해서 부르기엔 그 범죄의 질이 매우 극악하다. ‘n번방 사건’에 연루된 범죄자들이 특히나 역겨운 이유는 우리 사회에서 범죄 노출 위험이 가장 큰 아동‧청소년 등을 포함, 생활고에 시달리는 여성들을 대상으로 삼았다는 점이다.
알려진 것처럼 ‘n번방 사건’은 지난해 2월부터 모바일 메신저 탤레그램을 통해 수십여 명의 여성을 협박한 뒤 성 착취 동영상을 찍게 하고, 이를 다시 불특정 다수에게 판매한 디지털 성범죄 사건이다. ‘n번방 사건’이 세간에 크게 알려지게 된 계기는 입장 금액에 따라 채팅방 등급을 나눈 ‘박사방’의 운영자 조모씨(닉네임 ‘박사’)가 지난 16일 경찰에 검거되면서다.
범죄자의 수에서 알 수 있듯이 ‘n번방 사건’은 여러 범죄자가 개별적으로 저지른 유사한 범죄가 포함된 사건이다. 가장 널리 알려진 것은 조모씨가 주도한 ‘박사방’과 성 착취 영상을 1번부터 8번방까지 8개의 채팅방에서 판매한 닉네임 ‘갓갓’이 운영한 ‘n번방’이다. 경찰은 아직 붙잡히지 않은 ‘갓갓’의 검거를 위해 수사를 집중하고 있다.
‘n번방 사건’이 촉발된 근본적인 원인은 무엇일까? 첫 번째는 여성을 성적 쾌락의 도구로 인식하는 일부 남성들의 잘못된 성 인식과 성별 고정관념으로부터 기인한다. 나아가 아무런 죄책감 없이 불법촬영물을 공유하고 여성의 신체와 정신을 모독하는 한국 남성들의 비정상적 놀이문화가 ‘성 산업’과 결합하며 고약한 방식으로 체계화되고 있다는 데 있다.
책 『모두를 위한 성평등 공부』의 공동 저자 김수아는 「디지털 성폭력은 어떻게 남성들의 놀이이자 거대한 산업이 되었나」라는 글에서 “최근 들어 나타나는 디지털 성폭력의 양상은 그것이 단지 성적 쾌락의 문제가 아니며, 타인에 대한 폭력이 어떻게 재미로 구성되는지 질문해야 할 문제라는 사실을 보다 확실하게 보여준다”고 설명한다.
저자는 “(개인용 컴퓨터와 인터넷 네트워크가 보급되면서) 남성들은 이미지와 동영상을 업로드하고, 게시물을 추천하거나 이미지 속 여성을 품평하는 댓글을 남기면서 실시간으로 소통했다. 분리된 공간에서 따로, 그리고 홀로 있는 듯하지만 익명적 관계에 있는 수많은 남성과 함께 디지털 성폭력에 참여하는 모습이 나타난 것”이라고 지적한다.
이어 “익명성에 기댄 남성들 간의 불법촬영물 공유는 디지털 성폭력 피해자의 수와 규모를 급속도로 확대하는 결과로 나타났다”며 “불법촬영과 그것의 공유, 이미지와 영상의 변형, 이를 놀이문화로 즐기는 거대한 남성 네트워크와 함께 많은 이들이 여성이라는 이유만으로 디지털 성폭력에 노출되게 됐다”고 말한다.
여성의 일상을 관음하고 포르노로 만드는 일부 변태적인 남성들. 그들의 잘못된 성 인식과 성별 고정관념을 타파하는 게 무엇보다 중요하다. 남성들의 강간문화를 혐오하고 동시에 그들이 스스로 젠더감수성을 체득할 수 있도록 모두가 노력해야 한다. 저자 역시 “디지털 성폭력에 대한 적절한 규제를 찾는 한편, 스스로 자율적 규제가 가능한 사회적 변화를 이끌어 내는 것이 시급하다”고 설명한다.
여성을 성적 쾌락의 도구로 인식하는 남성 권력의 비정상성을 끊임없이 지적하자. 이 모든 것을 해결할 수 있는 열쇠는 결국 여성들과 남성들의 연대에 있다. 저자의 말처럼 “남성 모두가 문제라고 이야기하기보다 남성들 내부에도 생각의 차이가 있다는 점을 보여줌으로써, 디지털 성폭력에 남성들이 보다 쉽게 이의를 제기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드는 것”이 중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