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신문 송석주 기자] “가을은 독서의 계절.” 이 말에는 먼지가 가득 쌓였다. 이 먼지를 털어내기 위해선 ‘독서의 현장’으로 가보는 것도 하나의 방법이다. 시인과 소설가들의 숨결이 묻어 있는 곳. 그곳에서 독서를 한다면 글자 하나하나가 다르게 보이고, 다르게 읽히지 않을까? 아니, 글자가 밤하늘의 별처럼 눈에 쏟아질 수도 있다.
■ 기형도문학관(경기도 광명시 오리로 268)
아주 오랜 세월이 흐른 뒤에
힘없는 책갈피는 이 종이를 떨어뜨리리
그때 내 마음은 너무나 많은 공장을 세웠으니
어리석게도 그토록 기록할 것이 많았구나
구름 밑을 천천히 쏘다니는 개처럼
지칠 줄 모르고 공중에서 머뭇거렸구나
나 가진 것 탄식밖에 없어
저녁 거리마다 물끄러미 청춘을 세워두고
살아온 날들을 신기하게 세어보았으니
그 누구도 나를 두려워하지 않았으니
내 희망의 내용은 질투뿐이었구나
그리하여 나는 우선 여기에 짧은 글을 남겨둔다
나의 생은 미친 듯이 사랑을 찾아 헤매었으나
단 한번도 스스로를 사랑하지 않았노라
기형도의 「질투는 나의 힘」이라는 시다. 그는 청춘 시인이었다. 젊음을 노래했고, 사랑을 노래했으며, 젊음과 사랑을 통째로 앓았다. 그리고 서른이 되기 전, 세상을 떠났다. 기형도의 시는 ‘여진(餘震)’과 같다. 본진보다 강하진 않지만 이미 취약해진 구조물을 재차 파괴시킬 수 있는 불안을 가져다주는 지진. 그의 시가 뭇 청춘들의 마음을 흔드는 이유는 ‘폭발’이 아닌 ‘불안’을 담고 있기 때문이다. 기형도의 글자는 지금도, 여전히 흔들리고 있다.
‘기형도문학관’에는 시인과 관련된 다양한 전시 및 소장품, 교육 및 행사 프로그램이 마련돼 있다. 상설전시실에는 ‘기형도 시 필사하기’ ‘시인들, 기형도를 읽다’ ‘더 넓게 더 멀리’ 등 기형도의 시를 직접적으로 체험할 수 있는 프로그램들이 있다. 기획전시실에는 개관 1주년을 맞아 ‘기억 나무’라는 전시가 오는 12월 31일까지 관람객들을 만날 예정이다. 여기에는 노동식의 “구름나무” 작품과 함께 1년간 기형도문학관에 관람객들이 남겨 놓은 흔적들이 어우러져 있다.
■ 박경리 문학공원(강원도 원주시 단구동 1620-5)
작가로 나가겠다는 사람은 도저히 알 수 없는 삶의 모순을 이야기해야 하며 안다고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라 모른다고 이야기해야 합니다. 『문학을 사랑하는 젊은이들에게』 中
『토지(土地)』라는 제목에서 알 수 있듯이 이 책은 우리나라의 땅과 바다 그리고 하늘의 이야기를 품고 있다. 『토지』는 박경리가 무려 25년간의 저술 활동 끝에 총 5부 16권으로 완성한 대하소설이다. 대한 제국의 마지막 시기에서 일제강점기를 아우르는 『토지』는 최씨 일가의 가족사를 통해 인류 보편의 이야기를 묘파해낸 책이다. 특히 이 책은 당시의 시대상을 생생히 형상화해 문학적 가치는 물론 역사 사료로서도 중요한 의미를 지니는 작품이다.
‘박경리 문학공원’은 한국 문단의 거목인 박경리의 문학세계를 탐방할 수 있는 곳이다. 공원 주변에는 『토지』의 배경을 옮겨놓은 3개의 테마공원(평사리마당, 홍이동산, 용두레벌)이 꾸며져 있다. 특히 공원에는 박경리의 옛집이 보존돼 있는데, 그녀는 이곳에서 『토지』 4부와 5부를 집필한 것으로 알려졌다. 또한 공원 내에 북카페가 있어 박경리가 집필한 여러 서적을 읽어볼 수 있다. 북카페 2층에는 『토지』의 시대적 배경을 엿볼 수 있는 특별전시장이 마련돼 있다.
■ 피천득 기념관(서울시 송파구 올림픽로 240 롯데월드 민속박물관)
엄마는 나에게 어린왕자 이야기를 하여 주었다. 나는 왕자를 부러워하지 않았다. 전복을 입고 복건을 쓰고 다니던 내가 왕자 같다고 생각하여서가 아니라 왕자의 엄마인 황후보다 우리 엄마가 더 예쁘다고 믿었기 때문이었다. 그렇게 예쁜 엄마가 나를 두고 달아날까 봐 나는 가끔 걱정스러웠다. 어떤 때는 엄마가 나의 정말 엄마가 아닌가 걱정스러운 때도 있었다. 엄마가 나를 버리고 달아나면 어쩌느냐고 물어보았다. 그때 엄마는 세 번이나 고개를 흔들었다. 그렇게 영영 가버릴 것을 왜 세 번이나 고개를 흔들었는지 지금도 나는 알 수가 없다.
피천득의 수필집 『인연』의 한 대목이다. 어머니를 향한 그의 절절한 그리움이 목 끝에 전해진다. 그는 맑은 글을 쓰는 수필가였다. 그의 글은 우리의 고향과 어린 시절을 하늘에 그려준다. 책장을 덮으면, 마음의 풍경과 하늘의 풍경이 일치한다. 우리는 그때, 잠시나마 세월의 흐름을 거스른다. 나이를 먹으면서 오히려 소년이 되어간 피천득은 마음의 순수를 잃지 않았다. 해가 뜨고, 비가 내리고, 구름이 움직이는 일이 날마다 새로웠던 그는, 볼 때마다 싱그러운 첫눈과 같다. 그의 글은 큰 고마움이다.
롯데월드 민속박물관에 있는 ‘피천득 기념관’에는 그의 맑은 글들이 살랑이고 있다. 기념관에는 피천득의 검소한 삶을 엿볼 수 있는 침대와 책장, 책상 등 관련 유물과 생전에 기거하던 반포동 아파트의 모습이 그대로 재현돼있다. 또한 그의 작품 세계를 음미할 수 있는 영상관과 사진 촬영 공간 등이 마련돼 있고, 피천득의 가족과 그가 평소 가까이하던 문인들에 대한 이야기가 새겨져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