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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독서신문 Sep 02. 2019

손편지 잘 쓰는 법

악필이어도, 필력 없어도 쓸 수 있다


[독서신문 서믿음 기자] “당신의 편지가 왔다기에/꽃밭 매던 호미를 놓고 떼어보았습니다 (중략) 당신의 편지가 왔다기에 바느질 그릇을 치워놓고 떼어보았습니다.” 한용운 「당신의 편지」 중


시대가 변하고 삶이 변해도 타인과의 ‘연결’을 갈망하는 인간 본성은 쉽게 변하지 않는다. 과거 주요한 통신수단이었던 편지는 설렘과 호기심을 자아내는 ‘기다림의 미학’을 선사하는 선물 같은 존재로 자리한다. 요즘은 통신기술의 발달로 타인과의 ‘연결’이 손 쉬워져 간혹 ‘헤프게’까지 느껴지지만, 정성스럽게 편지를 쓰고, 봉인해 우표를 붙여 우편함에 넣는 일련의 과정은 보내는 이나 받아보는 이 모두에게 정성 어린 ‘의식’처럼 여겨지기 마련이다.


편지, 그중에서도 손편지는 묘한 매력을 지닌다. 컴퓨터로 찍어낸 특색 없는 글자가 아닌, 각양각색의 편지지에 적힌 개성 있는 글자는 ‘여럿 중에 하나’가 아닌 ‘오직 당신을 위한 글’이라는 느낌을 전해 뿌듯함과 설렘, 기대, 궁금증 등 다양한 감정을 불러일으키기 때문이다. 대다수 남성이 군대에서 받은 편지의 기억을 오래 간직하는 것도 이런 이유가 크다.


문자보다 통화가 빠르고, 편지보다 카카오톡 메시지를 선호하는 요즘. 군대 내 휴대폰 반입이 허용되고 교정시설에서까지 온라인 서신 수신이 가능해지면서 손편지가 설 자리가 좁아진 느낌이 없지 않지만, 그런 환경 변화에도 ‘손편지’가 지닌 정성의 가치는 변함없는 모습이다. ‘손편지 잘 쓰는 법’이 포털 추천 검색어에 오르는 것도 그런 이유에서일 것이다. 책을 통해 손편지 잘 쓰는 법을 소개한다.


“우편함에서 누군가의 손편지를 봤을 때 사람 글씨가 주는 짜릿한 설렘, 누군가가 나를 생각한다는 기대감. 누구일까? 이 책이 당신에게도 그런 책이었으면 좋겠다”며 책 『기적의 손편지』를 쓴 윤성희 작가는 손편지 잘 쓰는 방법으로 7대 3 법칙을 소개한다. 편지는 자유로운 수필 중에서도 수신인이 정해져 있는 글이기 때문에 받는 사람 이야기를 70%, 쓰는 사람 이야기를 30% 비율로 맞추라는 것이다. 안부편지라고 해도 내 이야기만 장황하게 늘어놓기보다 받는 사람이 공감할 수 있는 이야기를 하는 것이 좋다. 1968년 통일혁명당(간첩단 사건) 사건으로 20년간 복역한 고(故) 신영복 교수가 감옥에서 가족과 주고받은 서신을 정리한 『감옥으로부터의 사색』에는 신 교수가 수감 중에 느낀 바와 가족을 향한 그리움이 적절한 조화를 이뤄 더욱 공감을 자아낸다.


간혹 글씨체가 예쁘지 않아 손편지를 꺼리는 사람이 있는데, 사실 손편지의 가치는 아름다움보다는 솔직함이 전하는 감동에 있다. 글씨체는 마음을 담아내는 도구란 점에서 본심이 가려지지 않을 정도로만 적으면 문제가 되지 않는다. 악필 속에서도 정성은 드러나는 법이니까.


손편지를 쓸 때는 요점을 미리 정리할 필요가 있다. 손편지는 지우고 다시 쓰기 어렵기 때문에 처음부터 글의 얼개를 잡고 들어가는 것이 좋다. 또 자신이 글솜씨가 떨어진다고 생각된다면 자신이 좋아하는 명언이나 글귀를 편지의 첫머리나 끝에 넣어보자. 그럼 본인이 하는 열 마디 말보다 더 강한 의미가 전달될 수 있다. 군대 간 아들과 주고받는 편지를 묶은 책 『아들이 군대 갔다』에서 저자인 강민영 시인이 편지 서두에 “내 사랑, 내 생명, 달리 무슨 말로 너를 부를 수 있을까, 부디 네 앞에 축복이 있기를”이란 영화 ‘맘마미아2’ 대사를 넣은 것처럼 말이다.


만일 좀 더 인상 깊은 편지를 전하고 싶다면 나를 표현하는 특별한 문장을 집어넣는 것이 좋다. 자동차 판매왕 기네스 기록을 지닌 조 지라드는 매달 고객에게 한 줄 편지를 보낸 것으로 유명한데, 지라드는 편지를 보낼 때마다 사람 이름 앞에 ‘I like you’(전 당신을 좋아합니다)라는 문구를 넣어 보냈다. 해당 문구는 ‘사랑합니다 고객님’ 등의 불특정 다수를 대상으로 하는 식상한 말보다 더 큰 공감을 자아냈고, 지라드를 자동차 판매왕 자리에 올려놓았다. 그는 “고객이 내가 그들을 진심으로 좋아한다고 느끼게 하는 것을 영업 비결”이라고 말했다.


지금도 손편지의 효과는 우리 사회 곳곳에서 드러나고 있다. 故 노무현 전 대통령은 2002년 대통령에 당선된 후 “반미(反美)면 어떠냐”라는 말을 공공연히 해 미국과의 우호관계 설정에 어려움이 예상되는 상황에서 한미 사이에서 다리역할을 해줄 양국 인사 100여명에게 “도와달라”는 친서를 써 보내 난관을 헤쳐나간 것으로 알려졌다. 또 지난 17일 임일순 홈플러스 사장은 업계 전반에 불어닥친 불황으로 유통산업에 대한 위기론이 커지는 상황에서 임직원에게 A4용지 네장 분량의 손편지를 전하며 소통 리더십을 발휘해 긍정적인 평가를 받았다. 지난 19일에는 전교생이 162명에 불과한 울주군 서생초등학교 정인식 교사가 아이들이 정보통신기술(ICT) 교육에 접근성이 떨어지는 것을 안타깝게 여겨 SK텔레콤에 손편지를 보내면서 ‘티움 모바일’(AR·VR체험관) 체험을 성사시켰다. 덕분에 아이들은 AR·VR 기술로 우주비행사, 로봇전문가 등 다양한 직업을 체험해볼 수 있었다.


윤성희 작가는 “나는 모든 사람의 마음이 ‘사람’을 향해 있다고 믿습니다. 그래서 누군가 관계의 다리를 놓으면 망설이지 않고 건너게 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모두가 다리가 생기기만을 기다린다면 관계는 만들어지지 않습니다. 내가 먼저 다리를 놓아야 합니다”라고 말한다.


사람 사이에 다리를 놓고 마음을 열게 하는 손편지. 성큼 다가온 가을을 맞아 사랑하는 이에게, 그리운 이에게, 마음을 얻어야 하는 이에게 손편지를 써보는 건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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