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스로에게 다정했으면 한다
최은영(37)은 요즘 유행하는 말로 가장 뜨거운 작가이다. 첫 소설집 『쇼코의 미소』(2013년)를 시작으로 두 번째 소설집 『내게 무해한 사람』(2018년)이 10만부 넘게 팔렸다. 그리고 최근 세 번째 소설이자 첫 장편 『밝은 밤』을 펴냈다.
『밝은 밤』은 남편과 이혼한 ‘지연’을 맨 아래에 두고 증조할머니-할머니-엄마-딸로 이어지는 여성 4대의 이야기이다. 소설 속에서 여성들은 늘 동네북 신세를 면하지 못한다. 일본의 강제 징용으로부터 구해준 지아비에게 감사하지 않아서(삼천), 전처가 있던 남편을 다시 전처에게 빼앗겨서(영옥), 남편을 제대로 관리 안 해 바람이 났다고 해서(지연)….
최은영 작가는 독자들에게 어떤 메시지를 전달하고 싶냐고 묻자 “사람들이 자신을 좀 더 다정하게 대했으면 좋겠다”고 했다. 삶은 힘들지만 자책하지 말자는 얘기였다.
최 작가와의 인터뷰는 지난 11일 화상회의 프로그램 ‘줌’으로 진행했다.
- 『쇼코의 미소』 『내게 무해한 사람』 등 단편 소설 위주로 쓰다가 3년 만에 처음 쓴 장편 소설이다. 소감이 어떤가.
“책을 정말 오랜만에 내서 실감이 잘 안 났다. ‘이게 진짜 일어난 일인가’ 이런 생각도 들었다. 시간이 조금 흐르니 적응이 되는 것 같다. 책이 나와 뿌듯하고 기쁘다”
출간 행사 다니느라 바쁠 것 같다. 독자들과는 소통하고 있나.
“(코로나 유행) 전에는 독자들을 만나는 행사들이 많아서 좋았다. 지금은 출간된 지가 몇 주 됐음에도 불구하고 대면으로 독자를 만난 적이 없다. 작은 규모의 출간 기념 행사가 있으면 같은 테이블에 앉아서 이야기 나눌 수 있어서 좋았는데 말이다. 요즘은 그런 걸 못하니까 아쉽다. 하지만 안전이 중요하기 때문에 어쩔 수 없는 것 같다.
첫 책이 나왔을 때에는 내 책을 읽어주는 독자들이 있다는 것 자체가 신기했는데 실제로 독자들을 만나는 건 더 큰 신기한 경험이었다. 두 번째 책을 냈을 때는 그런 부분에서 어느 정도 적응이 됐다. 도서 행사에 계속 오시는 분들도 있어서 얼굴만 보면 알아볼 수 있다.”
소설가의 하루가 궁금하다. 소설 쓸 때 하루를 어떻게 보냈는지. 단편 쓸 때와는 호흡 면에서 느낌이 확실히 달랐을 것 같다.
“사실 단편 쓸 때와 크게 다르지 않았다. 기본적인 생활 방식은 이랬다. 아침에 일어나서 집안일도 하고 이메일도 쓰는 등 잡일을 하다가 점심을 먹는다. 그 다음에는 독서실에 나와 소설을 썼다. ‘오늘은 적어도 두 쪽은 써야지’라는 마음으로. 저녁은 먹을 때도 있고, 먹지 않을 때도 있었다. (생활 방식이) 직장인과 비슷하다고 생각하면 될 것 같다. 또 이번 소설에는 마감이 4번 정도 있었다(『밝은 밤』은 2020년 계간 문학동네에 연재된 소설을 다듬어 펴낸 소설이다). 연재 소설을 묶어서 냈기 때문에 이번 책이 나올 수 있었다.”
- 책 제목이 ‘밝은 밤’이다. 역설적이라는 생각이 드는데.
“어두운 시대에 사는 힘든 시간을 보내고 있는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 어둡다는 느낌이 들어서 ‘밤’이라고 지었다. 앞에 ‘밝은’을 붙인 이유는 힘들게 사는 삶, ‘인생 참 비굴하다’라고 쉽게 재단해버리고 마는 삶을 나는 긍정해주고 싶었기 때문이다. 사람들마다 사랑을 받았었거나 자기 존재를 인정받았던 기억이 있잖나. 그런 의미로 책 제목을 ‘밝은 밤’이라고 지었다. 그리고 책 제목을 길게 짓지 않는 걸 좋아해서, 최대한 짧고 단순하게 짓는 걸 좋아해서 이렇게 붙였다”
- 4대에 걸친 이야기를 구상하게 된 계기는 무엇인가.
“처음부터 이 이야기를 구상해서 쓰지는 않았다. 어느 날 ‘삼천’이라는 증조할머니 이야기가 내게 오더라. 백정의 딸이었던 증조모 이야기가 상상 속으로 내게 온 것이다. 2017년 쿠바에 잠시 머물렀었는데 그때 당시 이 이야기를 가지고 중편소설을 쓰려고 했었다. 하지만 쓰다보니 이 이야기가 너무 큰 이야기라는 생각이 들었다. 잠시 이메일에 스케치 원고 상태로 저장해 놓은 것을 잊어버리고 있다가 2019년 11월 미국에서 다시 그 인물을 끄집어냈다. 그랬더니 그 인물이 활동하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삼천 이야기로 시작해서 ‘내가 지금 뭘 쓰려고 하지’ 고민하다 보니까 이 시대에 살고 있는 ‘지연’이라는 인물도 나오고, 이런 식으로 살을 붙여서 이야기를 하는 방식으로 하다보니까 4대 이야기가 된 것 같다.”
‘삼천’이와 주변 인물들이 구사하는 북한 사투리는 어떻게 구현된 건가. 4대의 서사를 그리려면 근현대사에 대한 공부를 많이 했을 것 같은데.
“돌아가신 할머니가 황해도 분이셨다. 한국전쟁 때 남쪽으로 내려오신 분이다. 할머니가 쓰시던 특유의 말이 있어서 그걸 기억해서 썼다. 역사적 사실에 대해서는 책도 보고, 여러 논문을 참고했다. 한국전쟁 당시 여성과 아동들이 어떻게 살았는지, 일제 강점기 때 일본으로 가셨던 분들 그리고 원폭 피해자들이 한국으로 돌아와서 어떻게 살았는지 등은 논문을 많이 참고했다. 또 박경리 선생님이나 박완서 선생님의 책에 한국전쟁을 묘사한 부분에서 디테일을 많이 배웠다.”
- 여성들의 4대를 그리면서 ‘외’라는 앞글자를 쓰지 않았다.
“나는 내 할머니를 외할머니라고 부르지 않는다. 할머니가 나를 키워주셨는데 할머니는 언제나 내게 그냥 할머니였다. 그건 너무 자연스럽게 쓴 것 같다. ‘외’ 자가 ‘바깥 외(外)’자잖나. 왜 외할머니는 바깥에 있어야하나. 친할머니와 외할머니를 구분하는 건 너무 이상한 것 같다.”
-‘지연’을 천문 연구원으로, ‘희자’를 암호학자 캐릭터로 등장시켰다.
“지연이 천문 연구원이 된 데에는 별다른 이유가 없다. 그런데 나중에 실제로 천문학 하시는 분들이 말하기를 서울에서 연구하는 사람들이 지방 가서 일하지는 않는다고, 그래서 사실적이지 않다고 하더라. 지연이 희령으로 내려왔다는 설정은 천문대가 어둡고 외진 느낌이 드는 곳, 항상 꼭대기 같은 곳에 있을 듯한 느낌이 들어서 그렇게 설정했다.
‘희자’는 왠지 수학을 잘 할거 같았다. 암호라는 것도 어떤 언어지만 뭔가 어려운 언어라고 생각해서 희자라는 캐릭터가 그에 잘 맞을 것 같았다”
- 삼천이와 새비, 할머니와 희자, 미선이, 지연이 등 소설 속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문제가 발생하면 자신의 책임이 아님에도 이들의 탓이라고 비난받는다. 이러한 구도는 현재 우리 사회에도 벌어지고 있는 일이다.
“‘이것이 정상이고 평범한 것’이라고 생각되는 경우가 가부장적인 관습에서 나오는 경우가 굉장히 많다. 나도 가부장적인 가정에서 자라면서 그러한 관습들을 내면화하면서 자랐다. 대학에 진학해 여성주의를 공부하면서 내가 정상이며 평범하다고 했던 것들이 가부장적인 생각과 관습이었다는 걸 머리로 알게 됐다. 하지만 이런 깨달음들이 오히려 나한테 큰 고통을 줬다. 과거의 나의 행동을 용서하기도 어렵고, 가까운 사람들의 행동을 애써서 이해해야 한다는 것도 힘들고, 이런 것들이 눈에 자꾸 보였기 때문이다.
가장 끝까지 변하지 않는 건 나에 대한 부정적인 생각들이었다. 가부장적인 시스템하에서 ‘무엇을 해도 다 여자 탓’이라는 얘기가 잘못됐다는 걸 머리로는 알겠는데 막상 삶으로 들어왔을 때에는 내면화된 부분을 잘 극복하지 못한 것들이 많이 있었다. 여자들이 자기 탓을 하는 현실이 아픔이 되고 있다는 걸 쓰고 싶었다. 독자들도 자기 안에서 그런 부분을 발견했으면 좋겠다. 10대, 20대 여성들과 내 경험은 조금 다를 수 있다. 다만 30대 여성으로서 ‘나는 이런 식의 생각을 갖고 있었다’고 이야기를 나눌 수 있을 것 같다.”
-소설 속 인물들은 자주 상실의 아픔을 겪는다. 아픈 생모와 생이별을 하기도 하고(삼천), 원자폭탄 후유증을 앓던 남편을 잃고(새비), 마당에서 데려온 강아지가 병에 걸려 죽기도 한다(지연). 등장인물들이 이렇게 상실을 겪게 한 건 의도가 있어서였나.
“인간은 계속 상실을 경험하는 존재라고 생각한다. 100년 가까이 되는 이야기이기 때문에 그 안에서 상실이 존재할 수밖에 없고, 죽음으로 인해 어떤 존재와 헤어지게 되는 사건은 인간의 삶 속에서 당연히 존재해야 한다. 우리가 평소 죽음은 멀리 있는 것이고 분리된 것이라고 생각을 하잖나. 나는 항상 죽음을 생각하는 편이었다. ‘할머니 할아버지랑 살다보니 나중에 돌아가시면 어떡하지’라는 생각도 많이 했다. 사람은 ‘산다’는 걸 너무 당연하게 생각하는데 가까운 사람이 죽으면 그것이 당연한 게 아니었다고 순간적으로 깨닫는다. 죽음만큼 자신의 삶에서 깨어나는 게 없다. 죽음이 자신의 삶을 성찰하는 일이 아닐까라는 생각이 자연스럽게 글에 묻어났던 것 같다.”
- 미선(지연의 엄마)처럼 가부장제 속에서의 폭력을 “하나하나 맞서서면서” 살지 않고, “그냥 피하는 게 자신을 보호하는 길”이라고 믿으면서 사는 삶도 있다.
“살아남기 위해서 어쩔 수 없이 터득한 방법이라고 생각한다. 나 또한 ‘분란일으키지 마라’ ‘ 목소리 낮춰라’ 등의 이야기들을 들으면서 자랐다. 여자가 말 많고 드센 게 좋지 않다고 교육 받았다. 나도 갈등을 회피하는 성격으로 자랐는데 ‘남들 눈치좀 보면서 살아라’하는 마음이 내 안에도 있다. 이게 너무 싫었다. 그런데 그런 말을 내게 해준 윗세대 여성들은 그렇게 해야 살 수 있었던 것 같다. 안 그러면 맞거나, 이혼을 당하거나, 아이를 뺏기거나, 경제적인 토대를 잃거나. 결국 생존을 위해서였는데 이걸 단순히 개인의 바보같은 면으로 보기보다 그렇게 만든 사회의 책임이 있다고 생각한다.”
-이번 소설과 관련해 독자들에게 전하고 싶은 메시지를 정리하자면.
“마침내 지연은 엄마를 이해하려 한다. ‘엄마, 왜 비굴하게 지고 살라고 그랬어’라고 하며 엄마의 삶에 반기를 들었던 지연이었다. 역사를 거슬러보면 엄마가 그렇게 행동할 수밖에 없었던 사정을 알게 되고, 그런 이야기를 할머니로부터 들으면서 자신을 이해할 수 있는 기회를 갖는다. 나는 이 책의 마지막에서도 나왔듯이 ‘자신에 대해서 너무 쉽게 판단하고 단죄하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한다. 흔히 사람들은 ‘인생 망했어’ ‘나는 왜 이럴까’ ‘나는 왜 태어났을까’하고 자책한다. 그럴 때마다 나는 이렇게 대답하고 싶어진다.
‘너는 지금의 너만이 아니고 네 안에는 정말 많은 이야기가 있어. 지금의 네가 있기까지, 열 살의 너, 스무 살의 너, 서른 살의 너… 그들이 지금의 너가 되기 위해서 얼마나 열심히 살고, 자기 나름대로 최선을 다하며 살았는데 어떻게 그렇게 쉽게 말하냐’
사람들은 자기를 이해하지 않으려고 한다. 쉽게 판단하고 채찍질하고 못되게 하는 게 오히려 편하니까. 자기 자신을 좀 다정하게 바라봐주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이 들었다. 지연이도 결국은 자기 과거를 돌아보게 된다. 자신의 이야기를 생각하고, 기억하고 그것을 통해서 또 자기를 이해했으면 좋겠다.”
- 작가 본인의 독서 인생에 대해서 물어보고 싶다. 책을 자주 읽는 편인가.
“다독가로 살기는 했다. 전공이 문학이고 박사과정까지 다녔으니. 최근에는 책 내고 다른 것들 하면서 책을 안 보고 있긴 하다(웃음)”
- 어떤 책을 주로 읽나.
“어릴 때부터 소설을 굉장히 좋아했고, 시집 읽는 것도 좋아했다.”
- 시집 출간 계획도 있나.
“전혀 없다. 시는 써본 적도 없고 불가능하다고 여기고 있다. 소설은 누구나 노력하면 쓸 수 있다고 생각한다. 소설에는 나름의 규칙도 있고, 노력할수록 연습해서 쓸 수 있을 거라고 본다. 소설가에게 재능은 중요하지 않다고 믿고 있다.
반면 시는 노력해서 쓰는 게 아닌 거 같다. 물론 노력해서 쓰는 분들도 있겠지만. 진짜 시를 잘 쓰는 사람들은 태어날 때부터 그런 재능을 가지고 태어난 사람들이라는 생각이다. 나도 소설을 배워서 썼다”
- 소설은 어떤 소설을 많이 읽었나.
“어릴 때 남들 하던 문학동아리 활동도, 독서 지도도 못 받아봤다. 혼자서 책을 읽어서 학습한 경우다. 그 시절에는 이것저것 잡다한 거 많이 읽었다. 당시에는 출판사라는 개념도 몰랐다.
고등학생 때까지 이 책 읽다 저 책 읽다 대학 오니까 친구들이 A 출판사에서 나온 한국 소설집을 많이 봤고 또 작가 한 사람 알게 되면 그 작품을 두루 읽게 되는데 그걸 찾아서 읽었던 것 같다. 배수아 작가, 전경린 작가, 은희경 작가의 책을 많이 읽었다. B 출판사의 세계문학전집, C 출판사의 빨간색의 양장본으로 나온 도스토예프스키 『열린 재판』 같은 책도 많이 봤다.”
- 차기 작에 대한 구상은. 요즘 관심 갖는 주제는.
”지금 머리 속에는 아무런 생각이 없다. 거짓말로 뭘 쓴다고 말할 수도 있겠지만 책 나오고 계속 여기저기 다니기 때문에 다시 고독의 시간이 다가오면 글을 시작하지 않을까. 지금으로서는 아무런 계획이 없다.“
[독서신문 안지섭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