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유의 귀향, 조선의 상속』
상속 분쟁은 예나 지금이나 호사가들의 단골 이야기거리 중의 하나다. 16세기 양반가에서 종법(宗法, 한 가문의 혈통 계승을 관장하는 법)이 제대로 정착되지 않았던 때였다. 당시 관행은 장남이 자식 없이 사망했을 때 부인이 제사를 관리하고 가계 계승자를 선택할 수 있었지만, 제도는 남동생이 권리를 넘겨받도록 돼 있었다. 아버지가 세상을 떠나면서 남겨진 상황에서 형수와 시동생이 상속 갈등을 벌였다.
권내현 고려대 교수의 『유유의 귀향, 조선의 상속』은 1556년 대구의 한 양반가의 가출 사건에 주목해 조선시대 상속의 역사를 설명하는 책이다. 저자는 조선왕조실록에 실려 있는 여러 문건과 이항복의 「유연전」, 권득기의 「이생송원록」 등을 분석했다. 권 교수는 2014년 노비 가계 2백년의 기록을 분석해 『노비에서 양반으로, 그 머나먼 여정』이란 책으로 묶어낸 바 있다.
얘기는 양반 가문의 장남 ‘유유’가 가출하면서 비롯된다. 집안에는 유유의 아내 백씨, 아버지 유예원, 남동생 유연이 남겨졌다. 그리고 몇 년 뒤 부친이 사망했다. 가장이 된 유연과 백씨가 남게 됐고 전쟁은 시작됐다. 8년 뒤 집을 나간 유유가 홀연히 첩 춘수와 그의 아들을 데리고 돌아왔다. 유유의 자형(매형)이자 왕족인 이지가 해주에서 찾아냈다며 데려온 것이다. 그런데 모습이 이상했다. 아내와의 첫날밤 기억은 꽤나 정확해 보였지만, 외양과 목소리가 유연이 기억하는 형의 모습과 많이 달랐다. 작았던 키는 커졌고, 가늘었던 목소리는 굵어졌다. 결정적인 단서를 제공해야할 형수는 웬일인지 첩의 아들만 돌봤다.
고심 끝에 유연은 ‘그는 가짜’라고 결론내렸다. 수령에게 고발했고 진위 논란이 시작됐다. 와중에 보석으로 재판을 받던 유유라는 인물이 사라졌다. 첩 춘수는 유연을 고발했다. 백씨도 ‘유연이 형을 죽였다’고 동조했다. 결국 유연은 판결 끝에 ‘적통을 빼앗으려 했다’는 혐의를 받아 형장의 이슬로 사라졌다.
하지만 훗날 유유는 채응규라는 전혀 다른 인물임이 밝혀졌고, 의금부로 압송 도중 자결한다. 진짜 유유는 평안도에서 서당 훈장을 하면서 지내고 있었음이 밝혀지면서 이야기가 마무리된다.
저자는 백씨 부인의 침묵에 주목하면서 상속제도가 이 사건의 핵심 배경이라고 말한다. 당시 조선 사회는 가장 유고시 재산을 아들과 딸들에게 고루 나눠주는 균분 상속 풍습이 있었다. 하지만 점차 가문의 재산과 제사권을 장자에게 몰아주는 장자 우대 상속이 자리잡기 시작했다. 당대 풍습상 시동생을 고발해 넘길 경우 가계 계승권에 유리한 위치를 차지할 가능성이 높은 백씨. 저자가 보기에 그녀는 진위를 적극적으로 가리지 않았으며 시동생을 죽음에 이르게 한 것은 한 가정에서 자신을 지키기 위한 전략적 선택이었다.
자형 이지의 행동도 한몫했다. 그는 처가의 재산 상속에 관심이 많았다. 균분 상속의 관행에 따라 죽은 부인의 몫이 처가로부터 올 것이지만 그 이상을 탐냈다. 결국 상속제도의 과도기에서 만들어진 풍경이 한 가문의 멸문 스토리를 만들어낸 것이다.
윤 교수는 “지금 한국 사회는 조선시대처럼 가문의 영속을 염원하지도, 아들 특히 장남을 통해 그것이 이루어지기를 기대하지도 않는다”며 “하지만 부와 권력, 그리고 문화 자본까지 자녀들에게 상속하려는 욕망은 달라지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고 전한다.
[독서신문 안지섭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