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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구암씨 May 08. 2020

광선검의 이름으로...

뜻밖의 인문학

  초등학교 시절 처음 스타워즈라는 영화를 봤을 때 가장 충격적인 부분은 두 가지였다. 그중 한 가지는 소위 말하는 지구인이 나오지 않는다는 것이었고 다른 한 가지는 광선으로 된 칼을 휘두른다는 것이었다. 내가 처음 스타워즈를 봤던 그 시절엔 SF영화에 지구인이 안 나오는 영화는 꽤나 충격적이었다. 지구에 침공한 외계인과 맞서 싸우는 스토리의 중심엔 언제나 지구인이 있었고 대부분 지구인은 착한 편 외계인은 나쁜 편이었다. 하지만 스타워즈에는 어디에도 지구인은 없다. 우주 어딘가 있을 법한 인간형 외계인일 뿐. 더군다나 더욱 놀라웠던 것은 레이저를 이용한 총과 우주선이 날아다니는 영화에 광선으로 된 칼을 든 수도사에 가까운 제다이의 모습은 꽤나 충격적이었다.


    웬만한 SF 관련 창장물에서 레이저를 이용한 총이나 무기는 너무나 당연한 요소가 되어 버렸다. 현실에서도 지금처럼 컴펙트 한 크기는 아니지만 레이저를 이용한 무기는 꾸준하게 개발을 거듭하여 현실적인 배치 등이 논의되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 하지만 레이저 총에 비해 여전히 현실화가 불가능하게 여겨지는 부분이 있는데 광선검이 그중 하나라 할 수 있겠다. 직진성이 있는 빛을 적당한 길이에서 멈춰 칼의 길이를 만들 수 있게 한다는 것이 실현 불가능하다고 여겨진다고 한다. 물론 휴대할 만한 크기의 에너지원에서 막대한 양의 열과 빛 에너지를 만들어 낸다는 것도 지금의 기술에선 불가능한 부분이라 하겠다.
 
    스타워즈는 라이트 세이버(Light Saber)라 불리는 광선검을 사용하는 제다이(Jedi)라는 집단이 나온다. 사실상 이 영화의 주연급 집단이다. 검을 사용하는 검사이지만, 수도사이며 학자고 염력을 사용하기도 하는 일종의 마법사인데 언제나 선한 세력을 이끈다. 불필요한 살상은 지양하고 명예를 중시하다 보니 검술 대결에 있어서도 함부로 상대방을 죽이는 법이 없다. 무기를 들 수 있는 손이나 팔을 잘라 무력화 함으로써 예의와 명예를 존중한다. 심지어 고열을 발생하는 무기인지라 자른 부위의 소독과 지열의 효과도 있는 듯하다. 이런 명예를 중시하는 모습은 유럽의 기사도 정신이나 동양의 무사들의 모습에서 모티브를 가지고 온 것으로 짐작된다.
 
    최초의 스타워즈 영화이자 에피소드 4편에 해당하는 "스타워즈:새로운 희망(Starwars:New Hope 1978)"는 일본의 영화감독 구로사와 아키라(黒澤 明)의 영화 "숨은 요새의 세 악인(隠し砦の三悪人 / The Hidden Fortress 1958)"의 메인 줄거리를 차용한 것으로 유명한데, 알렉 기넥스(Alec Guinness)가 연기한 오비완 캐노비(Obi-Wan Kenobi)루크 스카이워커(Luke Skywalker)와 함께 제국군을 피해서 달아날 우주선을 구하기 위해 방문한 공항 선술집에서 추근거리는 상대의 손목을 광선검으로 자르는 장면이 나오는데 이 장면은 구로사와 아키라의 다른 영화인 요짐보(用心棒 1961)에 대한 오마주로도 알려져 있다.

Obi-Wan Kenobi Lucas Film

 그러나 정작 스타워즈는 서양에서 제작된 영화이다 보니 여러 가지 검술이나 모티브에 기사(knight)나 수도사의 모습, 유럽의 검술이 담겨 있다. 더군다나 광선검의 이름이 세이버인 것을 보면 유럽의 귀족들이 결투에 사용했던 결투를 떠올리지 않을 수 없다. 예의와 명예를 위해 결투를 벌인다는 컨셉도 비슷하기도 하고 최소한의 공격으로 무력화를 원칙으로 삼는 것도 비슷하다.
 
    이들이 사용하는 광선검인 라이트 세이버는 LightSaber를 결합한 단어로, 유럽에서 16세기경부터 사용된 한 손용 외날 검의 일종인 샤베르(혹은 샤브르 sabre)에서 온 단어이다. 프랑스어로 읽을 경우 "샤브르"라 부르고 네덜란드어로 "샤벨"이라고 발음하는 이 단어는 영어로 와서 "세이버(saber)"라는 단어로 정착되었다. 이와 비슷한 형태의 광선검을 사용하는 일본 애니메이션 기동전사 건담(Gundam)에서는 이 광선검의 정식 명칭이 빔 샤벨(Beam Sabar)이다. 유럽 지향적이며 일본 개항시기부터 네덜란드와 친숙했던 일본에선 샤벨이 더욱 익숙했던 모양이다.
 
    샤베르는 외날의 곧은 형태가 많았고 길지만 넓이가 넓지 않은 형태의 칼이었는데 기본 적인 형태는 마상 공격을 위한 외날 형태의 검이었다. 하지만 양쪽에 날이 있는 경우와 칼의 끝 부분에만 양날을 만들어 찌르기 쉽게 제작된 경우도 많았는데, 이 찌르기의 용도를 위해 만들어진 레이피어(Rapier)라는 칼의 모체가 되었다고 알려져 있다. 이 레이피어는 후일 펜싱의 주요 무기로 쓰이는데 펜싱이 귀족들의 스포츠에서 발전한 이유를 생각해 보면 샤베르와 명예를 중시했던 모습이 모티브로 작용한 것을 이해하기 쉽다.  

Military uniform sabre. National Coach Museum Lisboa Portugal

‏    칼을 사용해 명예를 지키기 위해 귀족 간의 결투는 종종 있어 왔는데, 날이 있는 칼로 결투를 벌이다 신체에 큰 상처를 입히거나 목숨을 잃는 경우가 많았고 이로 인해 대대손손 원수로 지내게 되는 경우도 많았다. 이런 피혜를 막으려고 결투를 왕령이나 법으로 금지했지만 귀족 간의 결투는 사라질 줄 몰랐다. 그래서 찌르기만 가능한 칼을 위주로 명예를 지킬 수 있는 선에서 결투를 마무리할 수 있는 방법으로 펜싱이 시작되었으며 이를 위해 적합한 칼이 레이피어였다. First Blood 원칙으로 누구든 먼저 찔려 먼저 피가 나는 쪽이 진 것으로 간주되었다고 한다. 명예는 지키고 불필요한 살생은 피하여 가문 간의 불필요한 대립을 최소화하려는 것이라 풀이된다.

 
 하지만 펜싱 대결에서도 예전의 기억을 잊지 못하고 찌르는 공격 이외에 베는 공격으로 응수하려고 칼의 앞부분이나 한쪽에만 날을 만드는 경우가 있었다고 한다. 이런 샤베르에 대한 향수는 펜싱 종목의 이름으로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는데, 상체의 어디든 찌르기 뿐 아니라 베기도 유효 득점으로 인정하는 종목의 이름이 사브르(Sabre)이다.


 신대륙을 차지한 미국인들은 많은 인구와 풍부한 자원으로 거대한 부국을 이루었지만, 동양이나 유럽에 비해 역사가 짧아 언제나 히스토리에 대한 갈증을 일으키곤 한다. 그래서 서부극과 갱스터 혹은 신대륙 인근 해안의 해적 이야기까지 미디어로 생산하고 신화처럼 만들어 많은 영화로 재생산 하곤 한다. 이러한 갈증은 헐리우드의 자본으로 유럽과 동양의 신비를 혼합하여 스타워즈라는 스페이스 오페라를 만들어 이제는 신화와 같은 존재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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