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구암씨 Apr 08. 2020

모바일은 어쩌다 전화기가 되었나 (1)

뜻밖의 인문학

  언어는 쓰이는 장소나 시대에 따라 의미가 변하다 보면 같은 단어라도 이전에 사용했던 의미가 달라져 조금 다른 의미를 갖거나, 유사하지만 표현할 수 있는 범위가 줄어들어 한정적인 의미로 쓰이는 경우가 있다. 우리가 사용하는 한글도 오늘날의 구성원이 주로 사용하는 단어들과 발음에 따라 새롭게 표준어로 받아들여지기도 하고, 신조어라고 생각했던 말들도 사용 빈도에 따라 새롭게 사전에 등재되기도 한다.  2011년 이전이라면 통용되지 못했을 '짜장면'은 실제 사용에 맞게 복수 표준어로 인정되어 그렇게 읽어는 것도 허용이 되게 되었다. 국립국어원에 따르면 “국민들이 실생활에서 많이 사용하고 있으나 그동안 표준어로 인정되지 않았던 ‘짜장면’, ‘먹거리’ 등 39개를 표준어로 인정하고..(중략)..이에 따라 그동안 규범과 실제 언어 사용의 차이로 인해 생겼던 언어생활의 불편이 상당히 해소될 것으로 기대된다.” 라고 했다. 사실 그동안 억지로 ‘자장면’이라고 발음하는 방송용 언어들을 보면서 몹시 불편하긴 했다.




모바일보다 모빌이라 읽는 것이 더 보편적으로 쓰였지만 요즘엔 왠지 모바일이 더 친숙하다


   저 옛날 해적판 만화책을 보며 행복하던 시절에 ‘어쩌고저쩌고 대백과’ 시리즈를 참 즐겨 봤었다. 적법한 저작권 계약 없이 음성적으로 복제된 책(주로 일본의 망가)이었지만 그 당시엔 너무 당연했고 사실 그것밖에 없었다. 그런 대백과류는 만화영화에 등장하는 로봇이나 세계관에 대한 설정(지나치게 불필요할 만큼)들을 친절하게 설명해 주었고, 난 그런 류의 정보들을 즐겼다. 처음 ‘건담(Gundam)’이라는 애니메이션을 알게 되었는데 ‘기동전사 건담’이라는 이름으로 소개되어 있었고 영문명은 Mobile Suit Gundam이었다. 그 당시엔 그 뜻도 모르고 ‘모빌슈트 간담’라고 읽었었는데 지금 해석해 보면 ‘움직이는 갑옷’ 정도였겠다. 아니, 스스로 움직이는 갑옷이라고 하는 게 옳겠다.


     흔하게 쓰이는 단어가 되어버린 ‘모바일(mobile)’은 그때까지만 해도 누구든 ‘모빌’이라고 했었는데 요즘엔 대부분 모바일이라고 한다. 대체로 이 단어로 끝나면 모빌, 이 단어로 시작되거나 중간에 쓰이면 모바일이라고 읽는 경우가 많다. 휴대폰을 연상하는 게 당연하게 되어버려서 ‘모바일 환경’이나 ‘모바일 기기’처럼 ‘모바일’이 익숙하지만, 휴대폰이 나오기 전까지만 해도 모바일은 그러한 용도로 사용되지 않았다. 여전히 영어권에서는 ‘Cell phone’이라고 더 많이 사용하며, 심지어 십여년 전 까지만 해도 국내 한정으로 ‘Hand Phone’이라는 콩글리쉬를 명함에 적어 놓았던 것도 쉽게 볼 수 있었다. 이 ‘모바일’이 ‘가지고 다닐 수 있는’ 혹은 ‘이동이 자유로운’이라는 의미가 부여되기 전 사용되었던 의미를 생각하려면 ‘오토’ 이야기를 하지 않을 수 없다.


    Auto의 원래 의미는 스스로 하는 것이라는 의미의 그리스어 αὐτo에서 온 말로 흔히 자동(自動)이란 뜻으로 automatic이라고 쓰지만 줄여서 auto라고 많이 쓰고 사용한다. ‘스스로 움직인다’라는 뜻인데 같은 어원에 상응해서 복합적인 움직임을 기계나 구조물로 스스로 제어하며 움직이는 것들을 오토마톤(Automaton) 혹은 오토마타(Automata)라고 하는데 후자를 더 많이 자연스럽게 사용한다.


   이러한 복합적인 기계들의 움직임을 표현하는 ‘오토마타’라는 의미가 주로 17세기부터 사용되던 말이기 때문에 지금 우리가 생각할 수 있는 컴퓨터와 인공지능이 컨트롤하는 자동화된 시스템을 생각할 수는 없다. 쉽게 생각하면 돌돌 말린 길고 얇은 금속판을 꽁꽁 감았다가 풀어지는 힘으로 수많은 톱니바퀴들이 연결되어 움직이는 정교한 시계 같은 것이 ‘오토마타’의 의미에 더 가깝다. 이미지로만 따진다면 ‘스팀펑크(steam punk)’가 차라리 더 잘 어울린다.


    정해진 움직임만을 반복하며 움직이던 ‘오토마톤’들이 당시 유럽의 합리주의적인 철학 시대에 영향을 받아 사람의 노동을 대신해 줄 수 있을지 모른다는 생각으로 ‘오토마타’를 창조하게 되는데 당시의 사람들은 오늘날 생각하는 키네틱스 로봇 같은 기계보다는 사람 형상의 안드로이드나 리플리컨트를 생각했던 것 같다.

The Jaquet-Droz automata. Musée d'Art et d'Histoire of Neuchâtel, in Switzerland

    주로 특정 장소(주로 공원이나 서커스 혹은 카니발이 열리는 곳)에 배치되어 기념 도장(스탬프)을 찍어주면서 눈을 깜박이고 고개를 좌우로 돌리는 정도의 가벼운 제스처를 함께 보여줬다고 한다. 그중엔 사람의 목소리와 비슷한 웃음소리를 내기도 했고 심지어 사람의 생각을 맞추거나 체스를 두는 것도 있었다는데 관심과 이목을 끌 목적으로 무대 뒤나 상자 등에 사람이 숨어서 조작하는 속임수였다.


    이렇게 ‘오토마타’는 ‘스스로 움직이는 기계’라는 의미에서 시작했지만, 사람의 움직임을 반복적 형태로 따라 하는 인형으로 인지되고 있는데 그 생김새는 ‘불편의 골짜기’에서 튀어나온 톱니바퀴로 가득한 영혼 없는 마네킹에 더 가깝다. 얼마 전 콘솔과 PC로도 출시되어 인기(게임도 게임이지만 캐릭터 디자인과 코스프레가 더 인기를 끌었...)를 끌었던 ‘’니어:오토마타(NieR:Automata, 2017 SQUARE ENIX)”오토마타는 이런 기계인형을 뜻하는 말에서 차용된 리플리컨트형 캐릭터를 뜻한다.

NieR:Automata (2017) Square Enix


다음 글 : 모바일은 어쩌다 전화기가 되었나 (2)



Cover : “Red Lily Pad” Solomon R. Guggenheim Museum 2017 Calder Foundation, New York / Photo by David Heald


작가의 이전글 버프의 의미 (2)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