뜻밖의 인문학
이 단어가 뜻하는 의미는 두꺼운 가죽으로 만든 덧입는 옷을 뜻하는 단어에서 시작했다. 버펄로 가죽 코트(Buff leather coat)라고 불렸던 이 옷은 얇고 부드러운 표면에 윤기가 흐르며 고운 색상으로 염색된 그런 가죽 옷이 아니라, 두껍고 거칠게 만들어진 옷으로 주로 다른 옷 위에 입고 특별한 기능을 위해 입는 그런 옷이었다. 덧입는 옷이라고 표현하는 것이 가장 적당해 보이는데, 근세 유럽의 기사들이 판금 갑옷을 입기 전에 입는 옷이었기 때문이다.
원래 용도는 금속으로 된 갑옷이 옷을 상하게 하거나 피부에 닿아서 쓸리는 것을 막기 위한 용도도 있었으며, 점차 경량화되어가던 근세 이후의 갑옷에 보조적인 위험으로부터 몸을 보호하기 위함이었다. 무기와 전쟁의 양상이 바뀌면서 머리부터 발끝까지 보호하던 중세시대 유럽의 갑옷이 점차 가볍고 움직이기 쉬운 방향으로 개선이 되었고, 그러다 보니 경량화된 갑옷 사이를 파고들어 찌를 수 있는 무기들로부터 몸을 보호하기 위해 이러한 옷을 입기 시작했다. 심지어 ‘플린트 록(부싯돌 점화 형식의 소총)’ 방식의 초기 소총에서 사용된 구슬형 탄환의 피해를 어느 정도는 줄여주는 효과까지 있었다고 한다. 하지만 이 마저도 칼과 방패가 상징하는 기사의 이미지는 무기의 현대화에 따라 왕실의 의식에 필요한 형태로만 존재하게 되어 판금 형태의 갑옷은 사라지고 버프 코트만 남아 흔히 알고 있는 “삼총사(The Musketeer)”나 근위대가 입었던 옷의 형태로 변화되었다.
하지만 정작 이 코트가 우리가 요즘 이야기하는 버프의 뜻을 지니게 된 것은 이러한 모습을 지나 의외의 다른 곳에서 나타나게 되는데 의용소방대에서 이 복장을 착용하면서 시작되었다. 지금이야 국가 시스템으로 존재하는 소방대 조직이 나라마다 있지만 예전에는 우리가 생각하는 상시적인 수준의 소방대가 조직되어 있지는 않았다. 각자 자기 일을 하고 있다가 동네에 불이 나면 각자 하던 일을 멈추고 삼삼오오 모여 현장으로 달려가 화재를 진압하고 다시 각자의 일로 돌아가는 식이었다. 그러다 보니 이러한 일들이 그러하듯 동네에서 힘 좀 쓰는 청년들이 힘을 보태려고 모였을 것은 당연한 것이었다. 하지만 화제라는 것이 힘만 좋다고 되는 것은 아닌지라 고온의 화제에 대비를 해야 했는데, 지금이야 불에 견딜 수 있는 소재로 만든 방화복을 입고 들어가지만 그 당시엔 옷에 물을 부어 적시고 들어가는 정도였을 것이다. 화제 현장에서 경황없이 빠져나온 부모가 화마에 휩싸인 자식을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있을 때, 건장한 청년이 나타나 양동로 물로 몸을 적신 후 불속으로 뛰어들어 아이를 구출해 오는 장면, 아마 부모의 입장에선 슈퍼히어로가 따로 없을 것이다.
그러다가 이용하게 된 것이 바로 이 버프 코트(buff leather coat)였다. 이 버프 코트를 물에 담가 축축할 정도로 불려서 방화복을 대신했던 것이다. 지금처럼 내화성 소재를 사용한 방화복이 있을 수 없었기 때문이다. 화제 현장에서 발만 동동 구르며 지켜볼 수밖에 없는 사람들의 입장에서 보면 이들은 정말 강인하고 튼튼한 영웅과도 같았으며, 이들이 입고 있던 젖은 가죽 코트는 불을 견디는 갑옷과 같은 마법의 옷이 었을 것이다. 천으로 만든 소재에 비해 불에 쉽게 타지도 않고 물을 잔뜩 먹고 있으니 한동안은 버틸만했다고 한다. 그러다 보니 소방의용대로 뽑힐만큼 동네에서 제법 "건장하고 튼튼해 보이는" 이라는 뜻으로 남게 되었고, '버프 코트'처럼 '버프를 더하면(버프 코트를 입으면)' 더욱 강해진다는 의미까지 갖게 되었다.
그 이후로도 이 ‘버프 코트’는 그 형태를 유지하며 겉에 입는 코트로도 사용이 되기도 했고, 바람을 막아줄 수 있는 소재 고유의 특성으로 인해 말을 탈 경우에도 긴요하게 쓰였고, 고유의 형태는 유지하고 소재(린넨 소재를 이용한)만을 달리 한 외투 형태의 옷으로도 자리 잡아 18세기까지도 꾸준하게 제작이 되었다.
요즘도 이 코트의 형태와 의미는 남아 있어서 '버프 재킷(buff jacket)'을 구글에서 검색해 보면 현대식으로 멋지게 변한 다양한 소재의 버프 코트들을 볼 수 있다. 현대식 복장에서 버프는 물론 추위를 조금 더 막아주는 형태의 버프를 의미하겠지만...
이러한 의미로 그 옛날 갑옷 안쪽에 보호를 위해 덧입던 물소가죽으로 만든 '버프 코트'는 사용 용도와 의미에 따라 여러 방향으로 그 쓰임새와 느낌이 변하여 나에게 이로운 효과를 주는 마법이나 효과를 나타내는 말로 쓰이게 되었고, 내가 도움을 받는 일들도 “버프 받았다”라고 종종 표현하게 되었다.
이제는 더 이상 가죽과 갑옷을 입고 전쟁에 나갈 일이 없어지게 된 시대에 갑옷 아이템을 챙겨 입고 전장에 나서는 게임을 통해 버프의 의미가 되살아난 것도 참 아이러니한 일이기도 하다.
이미지 출처
Cover : Regimental Band. Japp Darsie. Imperial War Museums. London
Leather buff Coat : The Metropolitan Museum of Art. New York
Boy’s suit Linen buff coat : The Victoria and Albert Museum. Londo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