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ings (Paolo Fresu / Uri Caine, Blue Note)
앨범 Things는 Paolo Fresu와 Uri Caine이라는 이름이 더해졌으니 더 이상의 설명은 필요 없을지도 모릅니다. 두 거장이 처음부터 끝까지 단둘이 빚어내는 사운드는 마치 오래된 친구가 한마디 말없이도 서로를 이해하는 듯한 교감으로 가득합니다. 타이틀인 Things, 즉 ‘사물들’이라는 단어는 얼핏 소박해 보이지만 오히려 그 평범함 속에 이 앨범의 철학이 녹아 있습니다. 재킷 사진에는 테이블 위에 놓인 일상의 물건들이 무심히 포착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그 무심함이 오히려 더 따뜻합니다. 이 앨범은 그렇게 일상 속 미세한 온기와 여백을 음악으로 세공합니다.
첫 트랙이 시작되는 순간부터 마지막 음이 사라질 때까지 그 어느 곡 하나 허투루 지나칠 수 없습니다. 음 하나, 쉼표 하나까지도 정성스럽게 놓여 있습니다. 그러나 그중에서도 단연 돋보이는 순간은 7번 트랙 Si Dolce È Il Tormento입니다. ‘달콤한 고통’ 정도로 번역하면 될 듯합니다. 사랑의 끝에서 피어오르는 그 아이러니한 감정의 조합이 참 아름답습니다. 헤어진 연인을 그리워하는 아픔조차 달콤하다니, 그건 절망의 깊이를 넘어선 감정일 것입니다.
이 곡을 들을 때마다 가슴 깊은 곳이 먹먹해지고 설명할 수 없는 울컥함이 밀려옵니다. 마치 오래된 기억 속 한 장면이 불현듯 떠오르듯 말이죠. 원곡은 바로크 시대의 거장 클라우디오 몬테베르디가 작곡한 연가로 상처받은 남자의 사랑을 노래합니다. 17세기의 선율이 세기를 건너 현재로 되살아난 셈입니다. 프레수와 케인은 이 고전적인 곡을 각자의 언어로 다시 부활시켰습니다. 재해석이라기보다 다시 태어난 듯한 음악입니다.
파올로 프레수가 연주하는 뮤트 트럼펫은 인간의 목소리에 가장 가까운 악기라고들 합니다. 그는 악기 너머로 감정의 결을 섬세하게 전달합니다. 울림보다는 숨결에 가까운 그 음색은 듣는 이를 어느새 고요한 내면으로 데려갑니다. 반면 유리 케인의 피아노(펜더 로즈)는 따뜻한 빛이 비치는 흐릿한 오후의 공기 같습니다. 전자 피아노 특유의 부드러우면서도 약간은 낡은 질감이 트럼펫의 음색과 어우러져 시간의 층위를 하나하나 포개어 놓습니다. 그래서 둘의 연주는 마치 서로 다른 언어로 같은 이야기를 하는 듯합니다. 어떤 순간에는 케인의 피아노가 길을 열고 이어 프레수가 그 위를 천천히 걸어갑니다. 다시 또 어느 순간에는 프레수의 호흡이 케인의 손끝을 이끌어 새로운 멜로디로 나아갑니다. 일방적인 주고받음이 아니라 감정의 흐름에 몸을 맡긴 대화입니다.
이 장면을 풍경으로 바꿔본다면 이렇게 말할 수 있을 겁니다. 케인의 피아노가 잔잔히 흐르는 개울이라면 프레수의 트럼펫은 그 개울가에 피어 있는 이름 모를 꽃송이입니다. 물살에 스치는 꽃잎처럼 두 사람의 소리는 순간마다 스쳐가면서도 결국 하나의 하모니로 합쳐집니다. 그들의 연주를 설명하는 일은 불가능에 가깝습니다. 언어로는 담기지 않는 무언가가 그 안에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니 그저 가만히 귀를 기울이는 수밖에 없습니다. 음악이 말을 대신하니까요.
그런 이유로 제가 평소에 진행해오고 있는 강의 <해설이 있는 재즈> 프로그램에서 가장 많이 소개하고 들려주는 곡이기도 합니다.
앨범 제목 Things가 ‘일상의 사물들’을 뜻하지만 이 곡이 표현하는 건 오히려 인간의 내면에서만 피어나는 ‘특별한 감정’입니다. 그 역설이 이 앨범을 더욱 매력적으로 만듭니다. 평범한 제목, 일상의 소재, 단출한 구성. 하지만 그 안에서 포착되는 감정의 스펙트럼은 특별합니다. 이들이 연주하는 ‘일상’은 무미건조한 현실이 아니라 매 순간 살아 숨 쉬는 감정의 편린들입니다. 흔들리는 마음, 사소한 그리움, 문득 찾아오는 고요 같은 것들이죠. 프레수와 케인은 그 모든 것을 소리로 기록합니다.
결국 Things는 우리 모두의 이야기입니다. 특별하지 않은 하루 속에서 애써 잊고 지내던 감정들, 그 속에 숨은 작은 빛을 떠올리게 만듭니다. 아무 일 없는 오후, 창가에 앉아 커피를 마시며 이 앨범을 들으면 좋겠습니다. 음악은 말없이 흘러가지만 그 여운은 오래 머무니까요.
https://youtu.be/x2qa7E42HJo?si=cVGq78qNJMlI5PGj