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마스 베른하르트의 단편 〈야우레크〉 (단편집 ’모자‘에 수록, 문학과지성사)에는 주인공 남자가 외삼촌이 운영하는 시골 채석장의 회계과에서 일합니다. 남자의 어머니는 자살했고, 그는 그 죽음에 외삼촌이 깊이 연루되어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그는 채석장에서 일하라는 제의를 망설임 없이 받아들입니다. 그곳에서 일종의 복수를 꾀하지만 소심함과 무력감으로 인해 적절한 순간을 좀처럼 찾지 못합니다.
대신 그는 비참해지지 않기 위해 스스로를 붙들어 줄 수 있는 ‘어떤 일’들을 만들어냅니다. 예컨대 금요일에는 책을 한 권 사고, 화요일에는 맛있는 음식을 사 먹거나 자연과학을 공부를 하며 혼잣말을 이어가거나 몇 시간 동안 바깥 건물의 창문을 관찰하는 일 따위입니다. 그것도 모자라 급기야는 채석장 사람들을 웃기기 위해 온갖 궁리를 하기에 이릅니다. 이야기는 결국 남자가 점점 어설픈 코미디언이 되어가는 자신을 자조하는 장면으로 끝납니다.
돌이켜보면 저에게는 재즈 음반 컬렉트가 남자가 꾀하던 그 ‘어떤 일’이었던 것 같습니다. 컬렉트라기보다는 그저 음반 사재기라 부르는 게 나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아무튼 학창 시절부터 간간이 모아 오던 음반들이 직장인이 되고부터는 걷잡을 수 없을 정도로 불어났습니다. 매달 들어오던 급여는 대부분 음반 가게에서 탕진(?)되었습니다. 회사에서 몇 걸음만 옮기면 닿을 수 있던 타워레코드(이제는 사라진)의 존재는 그 집착에 불을 끼얹은 셈이었습니다. 음반을 사 모으는 일은 끔찍했던 회사 생활에서 잠시나마 탈출할 수 있었던 유일한 ‘어떤 일’이었습니다. 아침 미팅이 끝나면 온갖 핑계를 대고 나와 타워레코드에서 죽치기 일쑤였고, 상사가 찾는다며 같은 팀 여직원이 찾아오는 일도 심심치 않았습니다.(휴대폰이 없던 시절이었기에)
저는 집요할 정도로 음반을 샀고 틈만 나면 들었습니다. 오디오 교체에 열을 올렸고 재즈를 언급하는 책과 잡지는 어떻게든 구입해 읽었습니다. 이런 생활은 결혼 후 아이들이 생긴 뒤에야 겨우 조절되기 시작했습니다. 경제적 압박이라는 현실 덕분이었지만 다행이라면 다행이지요.
어쨌든 모두 지난 일입니다. 제 생애에 지금 가지고 있는 음반의 모든 트랙을 듣는 건 불가능합니다. 물리적 시간 자체가 허락되지 않습니다. 놀라운 건 그럼에도 음반에 대한 소유욕이 스멀스멀 고개를 들 때가 있다는 사실입니다. 그때마다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곤 하지만 관성이라는 것이 이렇게 무섭습니다. 매번, 절실히 느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