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마른 여자들 (베르나르 키리니, 문학동네)

by 리디언스

<목마른 여자들>(베르나르 키리니, 문학동네)


기묘한 상상으로 단편 세계를 구축해 온 베르나르 키리니의 작품을 건드린 김에, 그의 첫 장편 <목마른 여자들>을 다시 읽기로 했습니다. 막 책장을 덮었습니다.


오래전 처음 읽을 때는 뻔한 결말과 익숙한 도식일 것이라 짐작하며 좀처럼 집중하지 못했던 작품입니다. 다시 펼치니 이야기는 전혀 다른 얼굴로 다가옵니다. 그때 제가 읽은 것은 어쩌면 겨우 이야기의 뼈대뿐이었는지도 모릅니다.


키리니의 기발한 상상은 이 작품에서도 여지없이 발휘됩니다. 1970년 극단적 페미니즘 혁명이 일어나 현재까지 외부에 철저히 가려진 가상의 여성 해방 혁명 제국. 벨기에를 비롯한 베네룩스 3국이 그 무대입니다. 제국에서는 ‘목자’라 불리는 여성 독재자가 대를 이어 신격화되고 체제의 모든 장치는 그 숭배를 위해 작동합니다. 거리와 공공장소, 가정에는 목자의 신상과 초상화가 걸려 있고 신민들은 반드시 그 앞에 머리를 숙여야 합니다.


권력과 권리는 여성에게만 허락됩니다. 남성들은 폭력성을 제거한다는 명목 아래 수용소에 격리되거나 노동에 동원되고 심지어 거세를 당합니다. 이성애는 금지되고 여성 간 동성애만 허용됩니다. 정자은행과 성별 선택 기술을 통해 여성 아이만 출산하도록 계획되며 궁극적으로는 정자가 필요 없는 무성 생식을 통해 남성의 완전한 소멸을 꿈꿉니다.


이 낯선 풍경은 그러나 어딘가 익숙합니다. 거대한 초상, 변형된 언어, 날조된 역사. 그리고 무엇보다 스스로 생각하기를 멈춘 사람들. 이 장면들 위로 자연스레 겹쳐지는 것은 조지 오웰의 <1984>입니다.


여성 해방을 표방한 혁명이 유토피아가 아닌 디스토피아로 굳어지는 과정은 숭고한 이념이 어떻게 맹신의 얼굴로 변하는지를 차분하게 보여줍니다. 그리고 내부에서 살아가는 충실한 신민 간호사 아스트리트의 일기와 제국을 방문한 프랑스 지식인 여섯 명의 시선이 교차되며 그 균열은 서서히 드러납니다.


그렇다고 이 작품이 음울함만으로 밀어붙이는 것은 아닙니다. 키리니 특유의 익살과 패러디가 장면마다 스며 있습니다. 그러나 이 웃음은 가벼운 해방감이라기보다 묘한 불안을 남깁니다. 웃고 있는 사이 체제는 이미 완성되어 있고 사람들은 그 안에서 너무도 자연스럽게 살아갑니다.


그래서 뒤표지에 박힌 ‘남성 중심 사회를 통쾌하게 전복시킨 여성 제국으로의 기상천외한 여행’이라는 출판사의 문구는 어딘가 어긋납니다. 이 문장을 그대로 받아들인다면 키리니의 유머를 오독한 셈이 됩니다. 이 소설에서 페미니즘은 단순한 찬반의 대상이 아닙니다. 그것은 이데올로기화된 모든 맹신과 차별, 분리주의에 사로잡힌 인간상을 드러내기 위한 하나의 장치일 뿐입니다. 키리니가 겨누는 것은 특정 이념이 아니라 이념이 절대화되는 순간의 광신입니다.


패러디와 유머 뒤에 감춰진 악몽을 보지 못한다면 이 작품은 기괴한 잔혹동화로 남을 것입니다. 하지만 조금만 더 시선을 기울이면 그 풍경은 낯선 나라의 이야기가 아니라 우리 시대의 우화처럼 보이기 시작합니다.


지금 세계는 극우 세력이 득세하고 힘의 통치가 혐오를 부추기고 있습니다. 트럼프는 관세를 무기 삼아 교역 상대를 적으로 상정하고 있고 베네수엘라에 이어 이란을 공격하여 자원 통제를 노리는 것과 동시에 자신의 정치적 위기를 극복하려 하고 있습니다. 타국의 주권이 관리 대상으로 격하되는 풍경도 이제는 낯설지 않습니다.


안보를 위한다는 명목으로 적과 존재하지 않은 위험을 만들어내고 보호라는 이름으로 자유가 줄어들고 정의를 말하면서 폭력을 정당화하는 목소리도 점점 커집니다. 그리고 그 모든 장면을 우리는 너무도 익숙한 얼굴로 바라봅니다.


출판사 해석을 빌려 말하면, 키리니는 스탕달의 말을 인용해 이렇게 경고합니다. “경계를 잊지 마라.”


그 말은 소설 속 제국을 향한 것이 아니라 이 책을 읽고 있는 우리에게 향해 있습니다. 그래서 이 이야기는 기묘하게도 현재의 이야기처럼 읽힙니다. 여기에 더해 종교에 대한 맹신을 포함한 모든 열광에 대한 경고로 들립니다.


<목마른 여자들>의 독서는 우화처럼 시작해 예언처럼 끝납니다. 정신없이 빠져들게 하는 상상력 뒤에 몇 개의 질문이 남습니다.


나는 지금 무엇을 신격화하고 있는가. 그리고 이 거대한 구조 속에서 스스로 생각하는 일을 어느새 포기하고 있지는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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