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라카스 수업의 장면들> (서정, 난다)
서정 작가의 책 <카라카스 수업의 장면들>(난다)을 읽었다. 우리에게는 별로 익숙하지 않은 세계의 곳곳을 다니며(살며) 그곳의 사람과 삶을 책에 담았던 작가가 이번에 이야기하는 곳은 베네수엘라의 도시 카라카스다.
베네수엘라는 나한테 무슨 의미가 있겠나 싶을 정도로 관심 없던 나라다. 하물며 카라카스라니. 솔직히 말하면 어떤 영화에서나 한 번쯤 들어봤을 법한 어감의 이 도시가 베네수엘라의 수도라는 것도 이 책을 통해 비로소 알게 되었다.
제일 먼저 떠오르는 베네수엘라의 연상어는 단연 차베스다. 차베스 말고 다른 것이 또 있었던가? 아! 베네수엘라에서는 바나나를 구워 먹는다는 소리를 얼핏 들은 것 같기는 하다. 커피가 생산되는 곳이긴 하나 명색이 커피 로스터인 내가 베네수엘라 커피를 로스팅한 건 아주 오래전 일이다. 딱 한 번의 배치로 1~2킬로 남짓 볶아본 게 전부다. 커피 맛도 그때 본 게 전부란 얘기다. 석유 매장량 세계 1위 국가임에도 미국의 경제제재와 그로 인한 극도의 경제 혼란, 극심한 빈부격차 등이 생각나는 나라 베네수엘라다.
베네수엘라를 포함한 남미로 확장시킨다 해도 별반 다를 게 없을 것이다. 70년대 남미의 사회참여 음악 운동이었던 누에바 칸시온, 억압받는 민중을 위해 노래했던 아르헨티나의 메르세데스 소사, 혁명, 체 게바라, 사령관이여 영원하라(Hasta Siempre, Comandante), 카스트로, 해방신학, 마르케스와 보르헤스, 파블로 네루다… 그러고 보니 대체적으로 어두운 이미지들 뿐이다.
책은 1부와 2부로 구성되어 있다. 1부는 낯선 도시 카라카스가 점차 친밀해지는, 그러면서 그곳에 대해 설레게 되는 과정을, 2부에서는 카라카스의 다양한 모습을 문화와 예술을 통해 만나게 되면서 그곳과 사람들을 이해하게 되는 과정을 그렸다.
특별히 한 가지를 덧붙이자면, 글의 분위기와 문체에서 내가 좋아하는 W.G 제발트가 느껴진다 했을 때, 작가는 거짓말처럼 제발트의 <현기증. 감정들>의 어떤 장면을 묘사하며 언급한다. 사소한 것 같으나 나로서는 반갑기도 하거니와 무척 신기한 경험이다.
책 표지 역시 흥미롭다. 가끔 책을 보호하는 목적 등으로 겉종이가 싸여 있는 경우가 있는데, 이 책의 경우 허투루 생각하고 겉종이를 대했다가는 자칫 책 표지를 잃어버릴지도 모른다. 트레이싱지라고 부르는 반투명 종이 자체가 책 표지이기 때문이다. 보일 듯 말듯하지만 종이 안쪽면을 완벽하게 보여주지는 않는, 마치 내가 생각하는 베네수엘라의 이미지처럼 미지의 세계라는 걸 책표지부터 일깨워 주는 것 같다. 그러나 그럴수록, 드러내지만 결코 완전히 드러내지 않는 그 무엇을 들여다보고 싶은 욕망이 생긴다. 때문에 단 한순간의 지루함을 느낄 틈도 없이 읽었다. 다만 작가 서정의 다른 책들을 읽을 때 그랬던 것처럼 조금씩 아껴가며 읽느라 조금 시간이 걸렸을 뿐이다.
작가가 책에서 얘기하는 것은 아무리 생경한 낯섦이라 할지라도 지금 내가 있는 이 땅의 익숙함과 전혀 무관한 것만은 아니라는 것, 세상 어느 곳에서 울리는 미세한 진동이라 할지라도 결국 우리에게 전달된다는 것. 존 던의 시 ‘누구를 위해 종은 울리나’를 빌어 말하면 우리는 결코 ‘섬’이 아니라 ‘하나의 커다란 대륙’으로 이어진 존재들이라는 것. 바로 그것이 아닐까.
2026년 새해 벽두부터 경악할 만한 뉴스가 터졌다. 카라카스가 트럼프의 미군에 의해 침공당했다. 명색이 하나의 주권국가 대통령인 마두로가 생포당했다는 소식에 모두가 경악했다. 우리와는 아무런 관계가 없을 것 같은 사건이 이토록 나를 전율시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