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이토록 작은 존재들을 위하여〉(사샤 세이건, 문학동네)
올해의 첫 책이다. 저자 사샤 세이건의 이름 앞에는 언제나 그림자처럼 따라붙는 수식어가 있다. 우주의 신비와 경이를 대중의 언어로 번역했던 천문학자 칼 세이건의 딸. 나는 여전히 <코스모스>를 경외하고 있다. 그런데 그의 딸이 쓴 책이라니!
그러나 칼 세이건의 딸이라는 저자의 정체성은 외려 코스모스라는 그 거대한 이름에 기대어 나타나지 않는다. 우주적 관점은 배경이다. 종교를 부정하지도 과학을 숭배하지도 않는다. 대신 아주 오랜 세월을 이어져 내려오는 ‘형식’에 대해 말한다. 수십억 년의 시간 앞에서 한 생의 길이는 찰나에 불과하지만 그 찰나에 반복되는 형식, 즉 ‘의식(儀式)‘은 매우 중요한 의미를 갖고 있다는 것이다. 인간과 그 삶은 작기 때문에 무의미한 것이 아니라, 오히려 작기 때문에 어떻게든 서로를 붙잡아야 한다는 역설. 그렇지만 저자는 그 역설을 설득하지 않는다. 스스로 자문하게 하고 느끼고 실천할 수 있도록 조용히 자리를 내어줄 뿐이다.
저자는 우리가 행하는 일상 속 작은 의식들이 종교적 믿음의 상징만이 아니라 삶의 방향을 잃지 않기 위한 표식이라 말한다. 탄생과 죽음, 만남과 이별 앞에서 인간은 설명보다 형식을 필요로 할 때가 있다. 그게 바로 의식이라는 것이다. 그렇다고 우주의 나이와 광대함, 별의 수명같은 과학적 냉정한 사실들을 잊어야 한다는 말은 아니다. 대신 결혼과 생일같은 기념일, 때마다 오는 명절, 계절의 순환이 주는 자연의 리듬 속에서 전통의 이름으로 행하는 의식들이 평범한 일상을 사는 작은 우리에게 얼마나 큰 의미와 아름다움을 주는지 얘기한다.
무언가의 반복은 의미를 더욱 깊게 되새기게 한다. 의식에서 반복되는 행위와 말, 동작은 진부함이 아니라 기억의 중요함을 알려주는 표식이다. 해마다 같은 날에 같은 말과 문장을 건네는 이유는 우리가 매번 다른 사람이 되기 때문이다. 변하는 존재가 변하지 않는 형식을 붙들면서 비로소 그 변화의 의미를 알아챌 수 있게 하는 것이다. 그러니 의식에는 단순히 신과 우주에 대한 경배만이 아니라 인간에 대한 태도가 담겨있는 것은 아닐까.
칼 세이건이 우리에게 “우리는 별의 물질로 이루어졌다”고 말했다면 사샤 세이건은 그렇기에 이토록 작은 존재들인 우리는 서로를 잃지 않기 위해 반복되는 의식들을 놓쳐서는 안된다고 말한다. 책장을 덮으며 고개를 끄덕이게 된다. 나 역시 동의한다. 그 의식들은 광막한 우주와 거친 말, 폭력, 거짓이 난무하는 지금 이 세상의 인간들 관계에서만 필요한 것이 아니다. 앞으로 살아가게 될 미래의 인간들에게도 절실하게 필요한 신호일지도 모른다.
*그런 의미에서 저도 의식처럼 수없이 반복한 새해 인사를 드립니다. 새해 복 많이 받으시고 건강하세요. 늘 행복한 나날 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