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웅본색과 중경삼림, 주윤발과 임청하, 그리고 내 청춘의 시대.
담배 연기 너머로 스쳐가던 눈빛들. 영웅은 총을 들고 침묵했고, 도시는 늘 한 박자 늦게 사랑을 건넸다.
주윤발과 임청하의 얼굴은 스크린을 벗어나 시간 속으로 흩어졌고 그 장면들을 처음 받아 적던 시절의 나는 아직 세계가 너무 넓다고 믿던 쪽에 서 있었다.
과거는 결국 꿈같은 것이다. 분명 존재했으나 손에 쥐는 순간 사라지는 것. 남는 것은 연속되지 않은 편린들,
사소한 장면 하나, 음악의 전주 몇 초, 지나간 밤공기 같은 것들뿐이다.
그 작은 조각들은 어느새 거대한 웜홀을 통과해 현재를 흔든다. 찰나의 상기는 불현듯 영원을 호출하고 우리는 그 안에서 한 시대를 다시 살아낸다.
세계는 끝내 환유로 가득 차 있다.
한 편의 영화는 한 시절을 대신하고 한 얼굴은 수많은 사유를 불러온다.
충무로. Ricoh GRD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