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URN LEFT.
이 문장은 단순한 안내문이라기보다 무슨 암호처럼 느껴집니다. 앞으로 곧장 가라는 지시가 아니라 삶을 조금 비켜 서 보라는 조용한 제안처럼 들리기도 합니다.
돌이켜보니 저는 오랫동안 익숙한 궤도를 따라가는 쪽을 택해왔던 것 같습니다. 반복되는 선택은 수월했고 이미 검증된 방식과 무리 없는 속도는 마음을 편하게 했으니까요. 훤히 보이는 직선은 당연히 효율적이었고 중심으로 들어가야만 제대로 걷는 것이라 믿었습니다. 그래서 생의 대부분을 그 길 위에서 보냈던 것 같습니다.
그런데 이 나이가 되고 보니, 가끔 방향을 틀어볼 때 달라지는 풍경이 새삼스러울 때가 있습니다. 주변의 소음이 조금 잦아드는 대신 보이지 않던 것들이 또렷해집니다. 비껴 선 자리에서만 드러나는 장면이 있다는 것을 이제야 조금 알 것 같습니다.
‘왼쪽’은 오래도록 오해받아온 방향입니다. 서양에서는 라틴어 sinister가 ‘왼쪽’과 ‘불길함’을 함께 뜻했고 오른쪽은 질서와 축복, 권위를 상징했습니다. 우리나라에서도 왼손은 교정해야 할 나쁜 습관처럼 여겼던 때가 있었습니다. 어릴 때 수저 잡는 법이나 처음 글씨를 배울 때도 마찬가지였습니다. ‘바른손’이라는 말속에 이미 ‘옳다’는 뜻이 담겨 있으니 언어는 오래전부터 한쪽으로 기울어 있었는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전통은 그렇게 단선적이지 않습니다. 조선의 관직 체계에서 좌의정은 우의정보다 높은 자리였습니다. 임금이 남쪽을 향해 앉는다고 할 때 왼편은 동쪽입니다. 해가 떠오르는 방향입니다. 시작과 생명의 기운이 스미는 자리였으므로 ‘좌’는 오히려 중심에 가까운 위치이기도 했습니다. 생각해 보면 티비드라마의 사극 속에서도 ‘좌의정’이라는 말을 더 자주 들었고 익숙합니다.
이렇듯 왼편은 단순한 반대편이 아닙니다. 부정과 길함이 겹쳐 있는 자리이며 주변이면서 동시에 중심과 맞닿아 있는 자리입니다. 어쩌면 균형을 위해 필요한 기울기일지도 모릅니다. 오른쪽이 명확함을 말할 때 그 명확함을 다시 묻는 쪽이 왼쪽입니다. 중심이 스포트라이트를 받을 때 가장자리는 조용히 인내하며 사유를 키우는 것입니다.
정치적으로도 ‘왼쪽’은 질문의 자리였습니다. 주어진 질서에 순응하고 그대로 받아들이기보다 그것이 과연 정당한지 묻고 고쳐 나가려는 노선이었고 태도였습니다. 그러니 왼쪽으로 향하는 일은 단순한 반항이 아니라 무너진 균형을 바로 세우려는 움직임에 더 가깝습니다.
그렇게 생각하니 ‘TURN LEFT’는 단순하게 길을 이탈하겠다는 선언이 아닙니다. 길이 하나뿐이라는 믿음을 살짝 의심해 보고 만약 그 의심이 확신이 된다면, 세상이 제시한 길이 오직 하나라는 믿음을 깨버리는 의지일 수도 있습니다.
돌아보면 제 마음만큼은 그래도 늘 왼편에 머물러 있었습니다. 꼭 의식하지는 않았지만 중요한 순간마다 조금은 비껴 선 길을 택해온 이유일 것입니다.
이왕 여기까지 왔으니 이제부터는 아예 더 왼쪽으로 가려고 하는데 어떨지 모르겠군요.
광장동. Pentax me supe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