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번은 (빔 벤더스, 이봄)

by 리디언스


한번은 (빔 벤더스, 이봄)


어떤 영화는 서두르지 않는다. 장면과 장면 사이에 굳이 말을 채우지 않는 대신 시간과 장소, 공기와 침묵이 제 몫을 하게 내버려 둡니다. 빔 벤더스의 영화가 그렇다.


그의 영화를 좋아한다고 말할 수는 있지만 왜 좋은지 묻는 질문 앞에서는 언제나 멈칫한다. 설명하려는 순간, 그 영화들이 지닌 리듬과 호흡, 머무는 방식이 어딘가에서 조금씩 부서지는 것만 같아서 그렇다. 그건 아마도 처음 접한 그의 영화 〈베를린 천사의 시〉에서 벗겨내지 못한 어떤 감각 때문일 것이다. 무엇이 명확해지기보다는 오히려 더 불확실해지는 경험. 그래서 그의 영화를 말하려 하다가 그만둘 수밖에 없다.


아까 낮에 빔 벤더스의 사진집 〈한번은〉에 대한 어느 브런치 작가님의 글을 읽었다. 순간, 아. 이 책을 잊고 있었구나 하고 탄식했다. 많이 아끼던 사진집이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마지막으로 언제 봤는지 전혀 기억이 없다. 혹 버려진 건 아닐까. 조급함이 생겨 귀가하자마자 서재의 책더미를 헤집어 마침내 찾아내고야 말았다. (이 글을 쓰고 있는 바로 직전에)


2011년 7월 20일 초판. 지금은 절판되어 더 귀해진 책 앞에서 후회가 스친다. 왜 잊고 있었을까. 왜 이렇게 오래 말을 걸지 않았을까.


사진에서 ‘한 번’이란 되돌릴 수 없는 시간이다. 빔 벤더스는 그 단 한 번의 순간을 붙잡기 위해 서두르지 않는다. 그는 결정을 내리기보다 귀를 기울인다. 장소와 사물, 이미 오래 그 자리에 있었던 것들이 자신에게 말을 걸 때까지 기다린다. 그래서 그의 사진은 어떤 장면을 설명하지 않고 다만 거기 있었다는 사실을 남긴다. 마치 영화의 정지 화면처럼. 그러나 영화로는 다시 이어지지 않는 장면들.


〈한번은〉에 실린 사진들은 모두 그렇게 시작한다. 한 번 마주쳤고, 한 번 셔터를 눌렀으며, 다시는 반복되지 않았던 순간들. 하지만 그 ‘한 번’은 곧 ‘한번은’으로 바뀐다. 이야기가 시작되는 방식이다. 사진은 단지 사건이 아니라 서사의 시작점이 될 수 있다는 어떤 힌트다.


하지만 잊고 있었다는 건, 어쩌면 잊었거나 잃어버렸다는 뜻이 아니라 아직 다시 만날 시간을 남겨두었다는 말일지도 모른다. 느린 영화가 그렇듯 이 책 역시 서두르지 않고 다시 읽히기를 기다리고 있었던 건 아닐까.


오늘은 그저 이 책을 다시 꺼내 들었다는 것만으로도 충분하다. 이토록 폭력적이고 난잡하고 소란 가득한 세상의 뻔한 일상을 살지만 ‘한번은’ 이런 일도 있어야 숨이라도 잠깐 쉴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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