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자 먹는 사람들 (빈센트 반 고흐) 그리고 커피

by 리디언스


감자 먹는 사람들, 그리고 커피


1885년, 고향 누에넨으로 돌아온 고흐는 어느 날 이웃 농부의 집에서 화려함과는 거리가 먼 한 가족의 얼굴들을 모습을 보게 된다. 들판의 흙을 닮은 얼굴, 하루의 노동이 고스란히 새겨진 손. 이후 각각의 얼굴을 수십 번씩 스케치를 하며 준비했을 정도로 공을 들였지만 그는 그들의 삶을 미화하지도, 연민으로 덧칠하지도 않으려 했다. 다만 그들이 어떻게 하루를 견뎌내고 무엇으로 저녁을 맞이하는지를 있는 그대로 그려내고자 했다. 그렇게 태어난 그림이 바로〈감자 먹는 사람들>이다.​


어둑한 램프 하나에 의지한 방 안, 다섯 식구는 낡은 식탁에 둘러앉아 감자를 먹고 있다. 빛은 넉넉하지 않지만, 그 어둠은 불안보다 안식을 닮았다. 거친 노동으로 다듬어진 얼굴들 사이로 흐르는 것은 말없는 연대와 하루를 무사히 끝냈다는 안도감이다. 땅을 파던 손이 같은 리듬으로 음식을 집어 올리는 순간, 노동과 삶은 분리되지 않는다.




고흐는 동생 테오에게 보내는 편지에서 이렇게 썼다.(1885년 4월 30일)


“작은 등불 아래서 접시에 담긴 감자를 손으로 먹는 이 사람들을 그리며 나는 그들이 마치 땅을 파는 사람들처럼 보이도록, 그런 분위기를 만들어내려고 애썼단다. 이 사람들이 먹고 있는 건 자신들이 노동을 통해 정직하게 번 것임을 말하고 싶었지.


우리 같은 교양인들의 생활 방식과는 완전히 다른 삶을 사람들에게 일깨워주고 싶었어. 우리의 생활 방식을 아무 생각 없이 그저 좋거나 아름답다고 여기지 않기를 진정으로 바란단다.” (Vincent van Gogh-그림과 편지로 읽는 고독한 예술가의 초상, 생각의 나무 p186)


고흐는 이 장면을 두고, 그들이 먹고 있는 감자가 정직한 노동으로 번 것임을 말하고 싶었다고, 또 우리 같은 교양인들의 생활 방식과는 완전히 다른 삶을 사람들에게 일깨워주고 싶었다고 썼던 것이다. 작품에는 나이가 지긋한 부부, 그들보다 젊은 또 한쌍의 부부, 그리고 젊은 그들의 딸로 보이는 여자의 뒷모습이 보인다. 여자들은 모두 수건을, 남자들은 낡은 모자를 썼다. 하루 종일 들판에서 일하던 그대로의 옷차림이다. 식탁 위에는 김이 모락모락 나는 감자 몇 덩이만 있을 뿐 저녁 식탁 치고는 지나치게 소박한 모습이다.


그러나 그림 속에서 유독 시선을 붙드는 것이 하나 있다. 투박한 여인의 손에 들려있는 어두운 갈색의 주전자다. 김이 막 피어오르는 그 안에는 뜨거운 커피가 담겨 있을 것이다.



이 작품이 세상에 나온 19세기 후반, 네덜란드에서 커피는 이미 일상의 일부였다. 가난한 농민들조차 하루의 고된 노동을 마친 뒤 커피 한 잔으로 몸을 녹였을 것이다. 하지만 그 커피가 어디에서 왔는지를 떠올리면, 그림을 감상하는 감정은 조금 다른 방향으로 흐를 수 있다.


네덜란드는 커피의 역사에서 반드시 언급되는 중요한 나라다. 커피의 운송과 수출입에 일찍부터 관계해 왔다. 그러므로 여타 국가들보다 커피의 전파 속도가 빨랐고 대중적인 수요가 많았기에 질 좋은 커피를 저렴한 비용으로 수입하는 일이 관심사였다. 그런 상황에서 시작된 식민지 인도네시아 자바 섬의 커피 대량 생산은 이후 네덜란드에 막대한 부를 선사한다.


그렇다면 작품 속의 커피는 혹, 식민지 인도네시아 원주민들의 고된 노동을 통하여 수확된 커피가 아니었을까? 그들의 거친 손으로 수확된 커피와 가난한 네덜란드의 시골 농부가 일구어 캐낸 감자라니 그 만남은 아이러니에 가깝다. 어쩐지 씁쓸하다. 그러나 조금 억지를 부려 본다면, 그건 동시에 묘한 조화이기도하다. 인도네시아 커피 특유의 흙 내음, 이른바 ‘어시(Earthy)’라 불리는 향은 방금 캐어 올린 감자의 냄새와 닮아 있다. 서로 다른 대륙의 흙이 같은 하루의 피로를 위로하는 방식으로 이어지는 것이다. 고흐가 커피를 좋아했다는 사실을 떠올리면, 커피를 등장시킨 것은 우연이 아니라 의도에 가깝다. 고흐가 농부들의 감자와 먼 남쪽의 원주민들이 수확한 커피를 화면 하나에 담았다는 건, 이 모두가 각각 삶의 무게를 견디는 숭고한 방식이라는 걸 말하고 싶었던 게 아닐까.


화면의 가장 오른쪽, 나이 지긋한 여인은 아마도 이 식사를 준비한 사람일 것이다. 다른 가족들이 감자를 집어 들 때, 그녀는 묵묵히 커피를 갈아 주전자에 넣고 펄펄 끓였을 것이다. 모두의 잔에 커피를 따르고 난 뒤에야 비로소 자신의 감자를 먹었을 그 시간. 그림은 그 순간을 직접 보여주지 않지만 나는 충분히 짐작할 수 있다. 보이지 않는 노동은 늘 그렇게 주변에 머문다.


장식 하나 없는 방, 드러난 서까래와 작은 등불, 주름진 얼굴과 손. 그리고 감자와 커피. 이 모든 것은 가난의 징표이면서 동시에 삶의 증거다. 그러면서도 가족들을 위해 해야만 했던 거칠고 힘겨운 노동의 결정체이다. 보잘것없어 보이는 것들로만 채워진 이 장면이 고흐의 어떤 작품보다 따뜻하게 느껴지는 이유는 아마도 가족이 함께 있는 풍경이라서 더 그럴 것이다.


일상을 마치고 가족과 함께하는 소박한 저녁 식사, 거기에 곁들여지는 뜨겁고 진한 커피. 고흐뿐만 아니라 평범한 우리 모두가 꿈꾸는 풍경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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