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 스코틀랜드 태생의 화가이자 판화작가 엘리자베스 키스(Elizabeth Keith, 1887년 ~ 1956년)는 언니와 형부를 따라 일본에 왔다가 1919년 3월 한국을 처음으로 여행하게 됩니다. 이후 한국의 풍경과 한국인의 모습을 그림으로 남깁니다.
〈정월 초하루 나들이〉는 키스가 1921년에 그린, 설날광화문 앞 풍경을 담아 목판화로 제작한 작품입니다. 키스는 자신의 저서 〈동양의 창〉에서 이 작품을 두고 “정월 초하루인 설은 한국 최대의 명절이다. 이 날은 남녀노소를 막론하고 누구나 제일 좋은 옷으로 갈아입고 나들이를 한다”라고 적었습니다.
그림 한가운데에는 정갈하면서도 화려한 색감의 설빔을 차려입은 한 여인과 때때옷을 입은 두 아이가 서 있습니다. 그들의 뒤편으로는 해태상이 광화문을 지키듯 자리하고, 주변에는 장사를 하는 이들과 물건을 사거나 구경하는 사람들이 어른거립니다. 더 멀리 시선을 보내면 배경으로 북악산이 보입니다. 풍경은 차분하지만 동시에 명절 특유의 들뜬 기운을 머금고 있습니다.
이 장면은 오늘의 눈으로 보아도 크게 어색하지 않습니다. 흔하다고 말할 수는 없지만 그렇다고 낯설지도 않습니다. 해태상의 얼굴이 다소 우스꽝스럽게 보이긴 하지만 그렇다고 이 그림을 불편하게 만들지는 않습니다. 사실 엘리자베스 키스는 화가로서 본격적인 활동을 시작하기 전 일본에 머물던 시절 외국인을 대상으로 캐리커처를 그리기도 했습니다. 그런 이력을 떠올리면 해태를 약간 유머러스하게 묘사한 시선 또한 충분히 이해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이 그림에는 무심히 지나치기 어려운 작은 의문 하나가 숨어 있습니다. 잘 차려입은 두 아이 중 여자아이가 들고 있는 막대기 끝에 매달린 풍선 때문입니다. 그 풍선은 마치 헬륨이 주입된 것처럼 공중에 떠 있습니다. 해태상 주변에 보이는 몇 개의 풍선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그림이 그려진 시기는 1921년입니다. 그렇다면 이 무렵의 한국에 이미 헬륨 풍선이 존재했던 것일까요. 그림을 보고도 왠지 미덥지가 않습니다. 그러나 풍선의 역사를 조금만 거슬러 올라가면 이 장면이 반드시 허구라고 말할 수만은 없다는 사실을 알게 됩니다.
알려진 바에 따르면 세계 최초로 수소를 주입한 고무풍선은 1824년에 이미 만들어졌습니다. 사실 인간이나 사물을 공중에 띄우고자 하는 욕망은 그리스 신화 속 이카루스의 이야기에서도 보이듯 인류의 오래된 꿈이었습니다. 중력을 거스르고자 하는 이 욕망은 비행기의 발명으로 어느 정도 실현되었지만 그 이전에도 사람들은 끊임없이 다른 방식을 모색해 왔습니다. 공기보다 가벼운 기체를 이용해 하늘로 떠오르려는 시도, 그 결과물이 바로 기구와 풍선입니다.
먼저 등장한 것은 기구였습니다. 1783년, 프랑스의 몽골피에 형제는 짚을 태워 데운 공기를 이용해 약 300미터 상공까지 올라가는 데 성공합니다. 이는 역사상 최초의 열기구로 기록됩니다. 이후 1852년, 앙리 자크 지파르가 기구에 증기기관을 달아 프로펠러로 전진하는 비행선을 발명하기에 이릅니다.
풍선의 역사는 조금 다른 방향에서 이어집니다. 유럽 중세 시대에는 동물의 창자 같은 재질로 만들어진 풍선이 이미 사용되고 있었습니다. 오늘날 우리가 떠올리는 ‘하늘로 뜨는 풍선’에 가까운 형태는 1824년 영국의 물리학자 마이클 패러데이에 의해 처음 만들어졌습니다. 그는 얇은 고무를 주머니 모양으로 만든 뒤 수소를 주입했습니다. 그러니 그로부터 약 100년이 지난 1921년 한국에 수소나 혹은 보다 안전한 헬륨 가스를 넣은 풍선이 존재했을 가능성은 결코 비현실적이라고만 할 수는 없습니다.
풍선은 무엇보다 아이들의 놀이와 깊이 닿아 있습니다. 가볍고, 손에 쥐고 흔들기 쉽고, 색채는 눈을 즐겁게 합니다. 작품 속 아이들은 당시로서는 무척이나 귀했을 풍선을 손에 쥐고 설날 나들이에 나섰던 겁니다. 아마 풍선처럼 한껏 들떠 있었다는 걸 충분히 짐작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안타까운 사실은 간토 대지진 당시 목판이 파손되는 바람에 극히 한정된 수량의 작품만 남아 있다는 겁니다. 민속학적 자료로서 당시의 복식과 생활상을 보여주는 중요한 가치를 지녔기에 더욱 소중하게 느껴집니다. 완벽에 가깝게 설빔을 차려입은 가족의 모습을 이토록 온전히 담아낸 장면을 다시 마주하기란 이제는 거의 기대하기 어려운 일이 되었기 때문입니다.
그렇다 하더라고 이 작품은 여전히, 한 시대의 명절 풍경을 기록한 이미지이자 사소한 의문 하나로 우리를 과거와 과학, 상상과 현실 사이로 천천히 데려가는 조용한 통로로 남아있습니다. 설날의 들뜬 기운 속에서 아이의 손에 매달린 풍선은 단순한 물건이 아니라 마치 미래를 향한 희미한 기대인양 한껏 부풀어 올라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