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은 우주들 (클라우디오 마그리스)

by 리디언스


작은 우주들 (클라우디오 마그리스, 문학동네)


한창 젊었을 땐 <장자> ‘소요유’ 편에 나오는 거대한 새 대붕(大鵬)처럼 작은 것에 연연하지 않는 유유자적한 삶을 지향했고 긍정했다. 그런 삶을 살아야지 하면서 커다란 세계를 동경했다. 세상은 넓어야 했고

시선은 멀리 갈수록 옳다고 믿었다. 유유자적함이란 곧 크기에 대한 신뢰였고 거대한 세계를 긍정하는 태도였다


그러나 어느 순간부터 다른 목소리들이 귀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W.G. 제발트와 브루스 채트윈 그리고 클라우디오 마그리스와 같이 세상을 미시적인 눈으로 탐구하는 사람들의 이야기들이다. 이들은 눈에 띄지 않는 것들, 결핍이라 불리던 존재들, 주류의 빛에서 밀려난 이야기들, 아예 망각되었던 것들, 경계의 틈바구니에서 아무도 돌봐주지 않는 것들을 찾아간다. 이들의 문장은 늘 작고 낮았지만 쉽게 잊히지 않았다. 그런 것들은 획득의 기쁨 따위보다는 상실이나 퇴색의 가치에 더 의미를 두는 일이다. 그래서 오히려 더 마음이 간다.


그 가운데 오늘은 여러 차례 노벨문학상 후보로 거론되었던 이탈리아 작가 클라우디오 마그리스의 <작은 우주들>를 떠올린다.


<작은 우주들>은 하나의 거대한 이야기가 아니라 여러 개의 작은 이야기가 모여 있는 듯한 느낌을 준다. 찬찬히 들여다보지 않으면 읽던 자리로 되돌아오게 되고 그럼에도 이상하게 다시 첫 페이지로 돌아가게 되는 책. 아끼는 책일수록 늘 처음부터 다시 시작하게 되는 그 묘한 습성을 알게 해 준 책이다.


마그리스가 책에서 선택한 장소들은 특히 인상 깊다. 이탈리아 국경 도시 트리에스테, 그리고 그곳에서 시작된 그의 여정. 그가 만나는 인물들 또한 역사라는 무대의 중심에 서지 못한 평범한 사람들이거나 자연의 작은 일부처럼 스쳐 지나갈 존재들이다.


단순히 지리를 설명하는 데서 멈추지 않고 그 장소에 스며든 역사와 문화, 개인의 기억을 모자이크처럼 엮어낸다. 각각은 조각에 불과하지만 함께 놓일 때 비로소 하나의 풍경을 이룬다.



트리에스테는 그가 태어난 곳이지만 그가 성장한 도시는 토리노다. 두 도시는 각각 그에게 꿈과 향수를 불러일으키는 공간, 그리고 현실과 계획의 공간으로 작용한다. 마그리스는 이러한 두 도시를 단순한 배경으로 그리지 않는다. 그에게 트리에스테와 토리노는 한 사람의 인생과 문화, 역사가 얽힌 상징적인 공간들이다. 마치 현미경을 들이대는 듯 한 치의 허투름도 없이 기록해 내는 그의 문장은 가볍게 지나치기 어려운 힘을 지닌다. 그래서 읽는 이는 종종걸음을 늦추게 되고 문장 사이에서 오래 머뭇거리게 되는 것이다.


책을 읽다 보면 어느새 내가 여행자가 된다. 그러나 그것은 물리적 이동이라기보다 내면을 향한 느린 이동에 가깝다. 마그리스가 말하는 장소들은 관광지가 아니라 사유의 장이다. 이런 장소를 두고 그는 ‘작은 우주들’이라 부른다. 각자의 고유한 세계들이 모여 하나의 은하를 이루듯 이 작은 우주들은 우리가 잃어버렸다고 생각했던 것들을 다시 발견하게 만드는 기점이 된다.


<작은 우주들>은 세상을 찬찬히 들여다보게 만든다. 세상의 부조리와 갈등을 단숨에 뛰어넘고자 하는 대신 마그리스는 그 틈바구니에 남겨진 사람들과 장소를 포착한다. 떠난 사람들의 발자취와 비주류의 목소리를 조심스레 기록하면서 그 안에서 삶의 본질이 어디에 머무는지를 묻는다. 그의 눈에 비친 세상은 거대한 이상향이 아니라 자그마한 우주들의 조합이다. 이것이 그에게 있어 삶의 의미이며 그가 이 책을 통해 우리에게 보여주고자 한 가치일 것이다.

이런 책은 단숨에 삼켜버리기보다 오래된 벤치에 앉아 숨을 고르며 읽어야 제맛이다. 우리가 일상에서 무심히 지나쳤던 사소한 것들이 실은 얼마나 중요한지 그 안에 깃든 생명력과 의미가 얼마나 풍성한지를 깨닫게 해 준다.


그런데 마그리스의 책을 펼치면 종종 졸음이 찾아온다. 마치 정년을 앞둔 노교수의 마지막 강의 같다고나 할까. 지나치게 성실하고 세세하기 때문이다. 굳이 이렇게까지 알아야 할까 싶은 것들을 현미경으로 들여다보게 만든다. 그러나 그 졸음은 권태가 아니라 집중이 만들어내는 느린 피로에 가깝다. 그런 피로는 차가운 공기 한 모금 마시면 금방 해소될 하찮은 것이다.


아쉬운 점이 있다면, 지금까지 번역된 그의 책이 <작은 우주들>과 <다뉴브> 단 두 권뿐이라는 사실이다. 하지만 좋아하는 작가의 다음 책을 기다리는 초조함은 오히려 작가에 대한 애정을 증폭시킨다. 이 정도의 공백이라면 기꺼이 감내할 수 있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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