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의 각인 (안드레이 타르콥스키)

by 리디언스


시간의 각인 (안드레이 타르콥스키 Андрей Тарковский, 곰출판)

‘봉인된 시간’(분도출판사)이라는 제목으로 나온 이 책을 처음 읽은 지는 이미 십오육 년이 넘었다. 그런데도 저자이며 영화감독인 안드레이 타르콥스키( Андрей Тарковский)가 책에서 말하고자 하는 게 정확히 무엇인지 지금도 안갯속의 희미한 형체 같다. 그의 영화 역시 틈틈이 구해 봤지만 안드레이 타르콥스키, 그의 이름 앞에서 서성대는 건 그때나 지금이나 마찬가지다.

이번에 <시간의 각인>을 다시 손에 든 순간 들었던 생각은 제목과 시간이 달라진 만큼 달리 읽힐까? 였다. 아니, 정확히 말하면 ‘이번에는 제대로 읽을 수 있을까?’가 맞을지도 모르겠다.

또 마지막 페이지를 덮고 나서는 추천사에서 정성일이 말한 대로 타르콥스키의 모든 영화를 본 후에 이 책을 읽는 편이 좋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그렇게 한들 이 책의 독해에 얼마나 도움이 될는지도 의문이다. 책 무게만큼의 이해마저가늠하지 못할 나 같은 독자들이 수두룩할 거라 생각한다.




저자 안드레이 타르콥스키는 러시아(소련 태생)의 영화감독이다. 난해하고 몽환적인 롱테이크 영상으로 종교적, 철학적 감정을 불러일으키는 그의 작품은 그가 부재한 이후의 수많은 영화 예술에 영감을 불어넣었다. 오죽하면 ‘장 뤽 고다르’ 조차 “그의 영화를 본다는 것은 기적으로서의 영화 체험”이라고 했을까? 그가 이런 평가를 받는 이유는 종교와 인간, 철학적 사유, 시간, 예술의 본질과 기원 등 예술이 다가갈 수 있는 한계치 근방에 그의 영상이 머무르고 있기 때문이다.

<시간의 각인>에는 베니스 영화제 황금사자상을 수상한 <이반의 어린 시절〉부터 그의 유작이 된 <희생>까지의 이야기가 담겨 있다. 특히 “시의 논리는 예술 중에서 가장 진실하고 시적인 예술인 영화의 가능성에 더 부합한다”라고 했을 정도로 문학(시)과 영화의 관계성등 예술 전반에 걸친 그의 성찰과 사유가 담겨 있다.

이 책에서 말하는 ‘시간’의 개념은 매우 독특하다. 타르콥스키에 의하면 영화 작업의 본질은 ‘시간을 봉인하는 것’이 아닌 ‘시간을 각인’하는 것이라고 강조한다. 번역자 라승도는 이에 대해 ‘타르콥스키에게는 바로 이런 상태로 조각되고 각인된 시간이 하나의 사실로서 영화 이미지로 변모하며 더 중요하게는 바로 이런 이미지를 통해 진실과 진리의 순간이 포착된다’고 했다. 영화 예술 작업이란 시간의 흐름을 영화라는 작품으로 기록한다는 의미보단 어떤 순간, 시간을 ‘새겨 넣는’ 묵직한 작업이라는데 더 의미가 있다는 의미리라.

아무튼 타르콥스키의 영화를 좋아하는, 그리고 이 책을 읽은 사람들과 몇 마디만이라도 나눌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영화와 문학, 종교, 철학을 사랑하고 그 속에서 삶의 통찰과 성찰을 얻기 위해 애쓰는 분들께 추천한다. 아끼는 책은 될 수 있는 한 느긋하게 아껴 읽는 버릇대로 <시간의 각인> 역시 아주 조금씩 읽고 또 읽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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