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처럼 사소한 것들 (클레어 키건)

by 리디언스

이처럼 사소한 것들 (클레어 키건, 다산책방)


사람의 도덕은 언제 가장 선명해질까. 어쩌면 아무도 보지 않는 순간, 아무도 선뜻 나서지 않는 ‘사소한 일들’ 앞에서야 비로소 그 윤곽이 드러나지 않을까. 클레어 키건의 <이처럼 사소한 것들>은 인간이 타자와 세계를 마주하는 근원적 관계를 조용히 해부한다. 이 작품에서 선과 악은 거대한 이념의 대립이 아니라, 눈밭 위 한 줌 재처럼 희미하게 뒤섞인 채 스며든다.


몰락한 아일랜드 소도시 뉴로스의 한겨울, 석탄 냄새와 청회색 안개속에서 펄롱은 묵묵히 하루를 보낸다. 아내와 다섯 자녀를 둔 석탄 상인으로, 그는 가난한 집안에서 고아가 되었으나 누군가의 도움으로 안정된 삶을 꾸려간다.


소설은 아일랜드 모자보호소와 막달레나 세탁소의 어두운 역사를 배경으로, 착취당한 여성들과 아이들의 이야기를 그린다. 펄롱이 석탄 배달 중 수녀원에서 여자아이를 발견하면서 불법적 사건이 드러난다. 수녀원의 절대 권력과 아내를 포함한 공동체의 침묵 속에서 펄롱은 깊은 고민에 빠진다. 절대 권력을 가진 수도원을 향한 대항은 자칫 지금까지 이룬 안락한 삶의 모든 것을 잃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펄롱은 다수의 침묵에 자신만의 방식으로 맞선다. 그건 바로 착취당하는 소녀를 조용히 집으로 데려오는 일이다. 클레어 키건은 그를 결코 영웅으로 미화하지 않는다. 펄롱에게서는 오히려 인간의 양심이 가진 나약함 마저 느껴진다. 펄롱의 대응은 겉으로는 소극적 침묵처럼 보이지만, 클레어 키건은 이 침묵의 무게를 결코 가볍게 그리지 않는다. 그 아래엔 전혀 다른 층위가 있기 때문이다. 결국 사건 초기에 고뇌했던 침묵은 단순한 무관심이 아니라 복잡한 윤리적 선택의 처절한 과정이었음을 보여준다.


사르트르를 빌려 말하자면, 펄롱이 보여준 행동하는 침묵은 실존의 가장 고결한 형태라고 할 수 있다. 인간은 생각으로 존재하지 않고, 행동으로 존재한다. 소녀를 조용히 품에 안는 순간은 한 인간의 각성이자 공동체의 무감각을 흔드는 미세한 진동이다.


<아우스터리츠>의 작가 W. G. 제발트는 청년 시절 자신의 조국 독일을 떠나 영국에 정착한다. 그가 독일을 떠난 것은 2차대전 당시 독일 국방군 장교였던 아버지와 자신이 다녔던 대학의 교수들이 나치당원 출신이었음에도 철저히 침묵으로 일관한 것에 대한 반감 때문이었다. 침묵했던 세대의 후손으로서, 진실을 알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침묵하는 공동체 다수에게 ‘무엇을 보았는가’보다도 ‘무엇을 외면했는가’를 물었던 것이다.


한편 단테는 <신곡>의 지옥 편에서 침묵하는 선량한 자들에게 엄중히 경고한 바 있다. 뜨거운 지옥불에서 영원히 고통받을, 가혹한 형벌을 내린 것이다.


이 소설은 거대한 변혁이 아닌 작은 배려와 감응을 통해 인간다움이 회복될 수 있음을 보여준다. 펄롱의 행위는 세상을 구하지 않지만, 한 사람의 삶을 바꾼다. 그 변화가 세계를 아주 조금, 그러나 분명히 달라지게 한다. 여기에서 클레어 키건이 말하는 희망은 펄롱의 행동과 같이 ‘작고 느리며 조용한 것들’의 형태를 띤다.


안락한 울타리 밖의 부당함에 관심을 기울이면서 결코 침묵하지 않는 것. 설령 그것이 ‘사소한 것들’이라 해도 인간성 회복의 희망으로는 결코 사소하지 않다.


작품은 펄롱에게 닥쳐올 이후의 상황을 독자에게 맡긴 채 끝난다. 명확한 결말 없는 종결은 인간의 도덕이 아직 다 완성되지 않은 것임을 암시한다. 아울러 지금과 같은 도덕의 미완성 시대에서는 윤리적 결함을 인식하는 그 자체로 그 의미가 있음을 말한다. 그 인식이야말로 타자와 세계를 향한 인간성 발현의 귀중한 씨앗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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