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장의 온도 (이덕무, 다산초당)
19세기 직전, 조선이 청과 일본, 그리고 서양에 치이며 서서히 균열을 맞이하기 전, 찬란한 ‘위대한 백 년’이 있었다. 바로 18세기, 조선 문화가 가장 유려한 문체와 사상으로 무르익던 시절이다. 그 시대의 한가운데에 문장가 이덕무(李德懋, 1741~1793)가 있다. 그는 박지원, 박제가, 홍대용, 유득공과 더불어 당대 최고의 지성 중 한 명이었다.
<문장의 온도>(다산초당)는 이덕무가 스물네 살에서 스물여섯 살 사이에 쓴 산문집 <이목구심서 耳目口心書>와 그 이전의 <선귤당농소 蟬橘堂濃笑>에서 고른 문장들을 엮은 책이다. 젊은 시절 그가 남긴 기록에는 세상을 바라보는 섬세한 눈과, 인간의 내면을 어루만지는 따뜻한 시선이 공존한다.
이덕무는 양반 가문의 서얼로 태어나 가난 속에서 스스로 공부하고 깨달아야 했던 사람이다. 하지만 그 결핍이야말로 그의 문장이 태어나게 된 필연적 동기였을지도 모른다. 사회적 제약 속에서도 번득이는 지성으로 스스로를 단련한 그는 ‘조선 최고의 시인이자 에세이스트’라는 수식어와 함께 ‘책만 읽는 바보, 즉 간서치(看書癡)’로 알려질 정도로 독서광이었다. 그러나 그 독서광의 열정은 단순히 책을 향한 집착이 아니라 북학파 실학자다운, 세계를 이해하려는 진심 어린 탐구에 가까웠다.
<문장의 온도>를 읽다 보면 이덕무는 웅장한 문체로 세상을 휘두르는 대문장가라기보다, 평범한 사물 속에서 조용한 감동을 길어 올리는 사람, 곧 ‘에세이스트’에 가깝다는 생각이 든다. 그의 글은 늘 소소한 일상으로부터 출발한다. 마른 나뭇잎 하나, 봄비에 젖은 뜰, 책상 위의 먼지조차 그의 문장 속에서는 생을 비추는 은은한 빛이 된다.
아무리 천지가 진동할 큰 일이라도 결코 단독으로 일어나거나 존재할 수는 없다. 좋은 의미든 그렇지 않든 하루하루 마주하게 되는 별 볼 일 없는 일상들이 모여 사건을 이루고 기억으로 남는다. 이덕무의 문장들을 곱씹어 보면 삶이란 거대한 사건의 연속이 아니다. 결국 눈길을 주지 않으면 사라져 버릴 작은 순간들의 모음이라는 것이다.
나는 종종 시끄러운 세상에서 살짝 비켜선다. 그리고는 어젯밤 나눈 카톡 대화에서, 아침에 듣는 새소리에서, 봄꽃들이 아우성대는 모습에서, 신록을 준비하는 나무들의 촉촉한 기운에서, 혹은 커피를 내리려고 준비하는 물 끓는 소리에서 사소한 일상의 아름다움을 느낀다.
소박한 일상이 결국 삶을 가장 깊고 온전히 빛나게 한다는 것. 그리고 스쳐가는 사소한 순간들 또한 나의 체온을 따뜻하게 하는 온도라는 것. 책을 덮었을 때 그의 문장들이 남긴 잔향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