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ne More Kiss Dear(블레이드 러너 OST)
1982년, 리들리 스콧의 블레이드 러너(Blade Runner)는 ‘저주받은 걸작’으로 세상에 나왔다. 개봉 당시의 냉담한 반응과는 달리, 이후에 발표된 수많은 SF 영화의 정전이라고 평가와 함께 인간성에 대한 근원적 질문을 던지는 시각적 철학서로 읽히게 된다. 설령 ‘저주’를 받았을지언정, 확실히 ‘걸작’ 임에는 틀림없다. 저주는 사라지고, 오직 걸작만이 남은 셈이다.
영화는 필립 K. 딕의 소설 <안드로이드는 전기양을 꿈꾸는가?>를 원작으로 하지만, 스콧은 그 텍스트를 단순히 ‘영화화’ 한 것이 아니라, 미래 도시를 철학적 현장으로 바꾸어 놓는다. 극 중 배경인 2019년은 기술의 희망이 가득한 유토피아가 아니라 음울한 스모그와 산성비, 차가운 네온사인으로 가득한 인간 문명의 퇴락한 초상처럼 보인다. 도시의 난무한 간판과 문자는 일본과 중국의 자본이 지배하는 세계 질서를 암시한다.
그 세계 속에서 인간은 자신을 닮은 존재를 만들어낸다. 인조인간 ‘리플리컨트’는 인위적인 기억과 단 4년의 수명을 지녔고, 고도의 지능을 갖게 된 그들은 결국 창조주에게 반란을 일으킨다. 이들을 사냥하는 임무를 맡은 블레이드 러너 데커드는 역설처럼 그들 중 하나인 리플리컨트 레이첼을 사랑하게 된다. 인간과 인조인간의 사랑, 한편으론 낯설고 또 한편으론 너무나 익숙한 이야기다. 한마디로 진부한 주제다. 하지만 엔딩 크레딧이 올라가고 나면, 이 진부한 서사는 ‘인간이란 무엇인가’라는 근원적 질문으로 남는다.
사랑이 인간의 고유한 특징이라면, 왜 리플리컨트는 그 사랑을 더 절절하게 느끼는가.
이 영화의 또 다른 얼굴은 음악이다. 반젤리스가 음악을 맡았지만, 영화와 제작사 간의 불화로 OST는 영화가 개봉한 지 12년 후인 1994년에야 세상에 나왔다. 전편을 관통하는 신시사이저의 음울한 사운드는 도시의 비와 불빛을 흡수하며 인간의 감각을 기계처럼 냉각시키는 듯하다. 그러나 그 흐름 속에서 느닷없이 전혀 다른 스타일의 노래 하나가 툭 하고 튀어나온다. 두왑 스타일의 ‘One More Kiss, Dear’. 거대한 도시의 비와 네온 사이로 흘러나오는 이 멜로디는 영화 속에서 사라진 시간, 혹은 잃어버린 인간의 감성을 소환한다. 덧없지만 사랑의 순간은 얼마나 소중한가. 모호하게 지나가고 있는 감정과 지금의 불안한 현실을 이어주는 듯하다.
이 곡은 오래된 재즈 스탠더드처럼 들리지만, 사실 반젤리스가 영화를 위해 새로 만든 오리지널 곡이다. 그는 한때 아프로디테스 차일드에서 함께 활동했던 데미스 루소스에게 보컬을 맡기기로 하고 매니저 돈 퍼시벌의 목소리로 데모 테이프를 만들었다. 돈 퍼시벌은 데이비드 보위, 엘튼 존, 로드 스튜어트 등 여러 뮤지션의 매니저이면서도, 재즈 밴드에서 보컬과 베이스 연주 경력을 가지고 있는 뮤지션이기도 하다. 하지만 최종적으로는 데미스 루소스 대신 돈 퍼시벌의 버전을 사용하게 되었다. 그의 나직한 음성은 영화의 몽환적인 정조와 기묘할 만큼 잘 어울렸기 때문이다. 덕분에 SF 누아르의 어두운 도시 속에서 덧없지만 아름다운 사랑의 순간을 적절히 붙잡아 주게 되었다.
One More Kiss, Dear는 듣기 전엔 낯선 곡이지만, 들어보면 굉장히 익숙한 곡이다. 한때 유명 광고의 배경음으로 자주 흘러나왔기 때문이다. 이별을 맞이하는 마지막 키스를 노래하는 듯하지만, 그 안에는 애절함보다 나른한 낭만이 더 깊게 깃들어 있다. 시간과 과거, 기억과 인간, 그리고 그 모든 것을 잇는 음악이다. 블레이드 러너는 그 모든 것을 어둠 속에서 은은히 빛나게 한다. 그리고는 끝내 우리에게 묻게 한다.
인간이란 무엇인가, 기억하는 존재인가, 망각하는 존재인가, 아니면 설령 그 기억을 잃어버리더라도 여전히 사랑하는 존재인가.
시간, 과거, 기억, 인간, 사랑, 거기에 얽힌 음악은 언제나 나를 매료시킨다.
https://youtu.be/ZuCYyOCCW4k?si=lxOTXxa5Bz4_DbV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