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 이럴 때 시큰한 감정을 느낀다.

by 리디언스


한창 필름으로 작업하던 시기에 찍은 아끼는 사진들. 셔터 소리와 현상액의 냄새까지 남아 있는 듯하다.


동그랗게 보이는 것들은 이미 주거공간의 기능이 상실된 회현동 시민아파트의 공터에 파묻혀 있던 김칫독들이다.


각기 다른 시간에 찍혔지만 사진 속에는 자잘한 변화들이 스며 있다. 항아리의 위치가 조금씩 달라지고 새로 생긴 것과 없어진 것들, 주변의 흙이 다져지거나 흩어지고, 계절의 기색도 다르다. 김칫독의 주인들 역시 다른 시간을 살았을 것이고 그들의 삶도 그만큼 변화가 있었을 것이다.


사라질 것이 예정된 풍경과 그 안에 잠시 보관되었던 삶의 시간. 난 이럴 때 시큰한 감정을 느낀다.

회현동. Rollei 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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