루이 알튀세르는 저서 <철학적 맑스주의>에서 세계는 목적이나 필연이 아니라 서로를 예비하지 않은 것들의 조우로 형성된다고 하면서 ‘마주침의 유물론이라는 은밀한 흐름’이라 불리는 엄청난 명문을 남긴다.
비가 온다.
그러니 우선 이 책이 그저 비에 관한 책이 되기를. 말브랑쉬는 “왜 바다에, 큰길에, 사구에 비가 오는지” 자문했다. 다른 곳에서는 농토를 적셔주는 이 하늘의 물이, 바닷물에는 더해주는 것이 없으며 도로와 해변에선 사라져 버렸기에. 하늘이 도운 다행한 비든 반대로 불행한 비든 이러한 비가 문제인 것이 아니리라. (철학적 맑스주의, 루이 알튀세르)
빗방울이 툭툭 떨어지던 어느 해 겨울. 내가 서있던 다리와는 또 다른 층위에 있던 다리 위에서 두 대의 자동차가 속도 표시선 위로 엇갈려 지나가는 순간을 보았다. 아무런 사전 인식도 없이 셔터를 눌렀고, 이 사진은 나중에 내가 아끼는 사진 중에 하나가 되었다.
알튀세르가 말하는 루크레티우스의 사유를 빌리자면, 필연성은 언제나 우연에서 시작된다. 수직으로 낙하하던 원자들 가운데 단 하나가 미세하게 빗나가며 떨어질 때 그 일탈(클리나멘) 이 새로운 질서를 만들어낸다.
그러니까 그날의 비, 나의 위치, 두 대의 자동차, 그리고 셔터를 누른 손끝은 모두 그러한 우발적 일탈의 연쇄였다. 그렇게 우연히 성립된 장면들의 집합이 바로 삶 자체일런지도 모른다.
그건 또 누구에게나 공평한 것일지도 모르니 허무하게 흐르는 듯한 삶을 돌아볼 때 그나마 다행일까.
광장동. Rollei 3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