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화된 언어 그 너머의 순간

by 리디언스


한겨울 동물원의 계절은 콘크리트가 대신한다. 기온은 침입하지 못하고 대신 낮과 밤이 형식으로만 반복된다.


거대한 몸들은 벽에 의해 나뉘고 시선은 꺾인다. 세상은 단지 몇 개의 면으로 접힌다. 그러나 어느 순간, 가로막힌 벽은 한순간 통로가 되고 분리된 공간은 오히려 하나의 호흡이 된다. 분리된 것은 인위적인 약간의 거리뿐, 존재는 끝내 고립되지 않는다.


발화된 언어 그 너머의 순간이다. 코끝과 코끝이 맞닿는 그 짧은 찰나, 의미가 도착하기 전 존재가 먼저 손을 내미는 장면이다. 언어 없이 서로를 불러낸다.


이때 동물원이라는 명사는 잠시 힘을 잃는다. 탄성도, 탄식도 필요 없는 순간이다. 의미 이전의 온기. 나중에는 발화 이전의 떨림만이 공기를 채운다.


오랜 이동의 기억, 잃어버린 초원과 사라진 길들이 단번에 되살아난다. 닫힌 세계 안에서 그들은 가장 넓은 세계를 열고 있다. 자유는 어떤 경우 서로를 인식하는 방식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스쳤다. 자유의 부재를 고발하기보다 관계의 지속을 증명한다.


필름 로더가 끝까지 돌아가는 동안 나는 개입하지 못했다. 다만 셔터만 눌렀을 뿐. 기록한다기보다 증언에 가까운 행위였다. 이런 장면은 붙잡는 것이 아니라 통과시키는 것이 옳다고 느꼈다. 그 바람에 남은 건 고작 조악한 필름 사진 몇 컷이다.

과천. Rollei 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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