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전 버거운 마음으로 읽다 책장 한편에 밀어두었던 책을 다시 들었다.
장 보드리야르의 <아메리카> (산책자).
영화 〈매트릭스〉에서 네오가 금지된 디스크를 숨겨두었던 바로 그 책, <시뮬라시옹>의 저자 장 보드리야르가 미국이라는 풍경을 통과하며 남긴 기록이다. 연일 기괴한 생각이 들 정도로 충격적인 미국발 뉴스 때문인지 지금은 절판되어 한동안 기억에서도 빠져 있던 이 책이 자꾸만 눈에 들어왔다.
책의 첫 장에 적힌 경고문은 날카롭다.
“주의: 이 거울 속에 비치는 사물들은 보이는 것보다 더 가까이 있을 수 있습니다.” (아메리카. p10)
이 문장은 안내가 아니라 선언이다. 안전한 거리에서 세계를 관찰하고 있다고 믿는 우리의 착각을 무너뜨리는 문장이다. 현실은 이미 이미지와 연출의 내부로 깊숙이 포획되어 있다. 우리가 ‘사건’이라 부르는 것들조차 하나의 장면으로 소비되고 있음을 암시한다. <아메리카>가 던지는 질문은 단순하다. 우리가 실재라고 믿어온 이 세계는 과연 얼마나 실재적인가.
이 책은 여행기가 아니다. 고속도로와 네온, 사막과 도시를 가로지르는, 일종의 사유 이동이다. 보드리야르는 미국을 찬미하지도, 고발하지도 않는다. 다만 우러름도 비아냥도 없이 미국의 껍데기를 해석할 뿐이다. 미국은 현대성과 원시성이 아무런 긴장 없이 공존하고 실재와 모사가 서로를 대체하는 사회라고 말한다. 찬란함과 피로, 자유와 폭력이 동시에 작동하는 시스템을 보면 미국은 하나의 국가라기보다 ‘현대성의 원판’으로 모습이라 할 수 있다.
이 책이 말하는 미국은 꿈도 아니고 현실도 아니다. 그것은 하나의 극실재, 하이퍼리얼리티다. 기원도 신화도 없이 오직 현재의 반복 속에서만 존재하는 사회다. 그래서 이곳에는 과거에 대한 책임도 미래에 대한 약속도 없다시피 하다. 모든 것이 가능해진 사회에서 민주주의마저 하나의 이미지로 기능한다. 정치란 공동체의 미래를 설계하고 조정하는 행위가 아니라 즉각적인 반응을 유도하는 스펙터클이 된다.
최근 트럼프의 주도 아래 벌어지고 있는 관세 정책은 이러한 구조를 선명하게 드러낸다. 관세는 더 이상 상호 경제 조정의 수단이 아니다. 상대국에 대해 적대를 기본으로 하는 명확한 무기가 된다., 동맹은 신뢰가 아닌 거래의 대상으로 전락되었다. 상호의존이라는 용어는 이제 사어가 되었다. 연방요원에 의해 시민이 사살되었다는 뉴스는 현재의 사태가 더 이상 트럼프 개인의 예외적인 일탈이 아니라 ‘실현된 유토피아’가 필연적으로 맞닥뜨리는 위기라는 것을 보여준다. 한마디로 갈 때까지 갔다는 뜻이다.
실시간으로 중계되는 사건과 뉴스는 현실의 잔혹함과 불안조차 이미지로 가공되어 유통된다. 이는 저자가 말한 ‘실재계의 파국’이 이미 일상 속에서 실현되고 있음을 보여준다. 보드리야르가 로널드 레이건 시대(1986년 출간)의 미국에서 포착했던 것은 바로 이런 징후들이었다. 오늘날에도 상황은 다르지 않다.
그래서 오늘의 미국은 낯설지 않다. 보드리야르의 말대로라면 오히려 오래전부터 예고된 풍경에 가깝다. 현대성과 자본주의가 극단까지 밀려간 사회에서 사유와 철학 없는 단순하고 직설적인 언어가 다시 힘을 얻는 일은 우연이 아니다. <아메리카>는 이미 오래전에 이런 결과를 ‘충격적인 사건’이 아니라 ‘구조의 문제’로 설명하고 있었던 것이다.
돌이켜보면, 이 책을 처음 읽던 당시의 난해함은 문장의 문제가 아니었다. 미숙한 내가 아직 그 세계를 제대로 인식하는 수준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제 관세 분쟁과 국제적 갈등, 불안에 흔들리는 세계 질서 속에서 보드리야르가 말한 것들은 더 이상 철학적 실험이 아니다.
아무튼 보드리야르의 충고대로 거울 속 사물들은 정말로 보이는 것보다 훨씬 가까이에 있다는 걸 인식했다고 치자. 자 그럼 이제부터 나는 대체 무얼 어떻게 해야 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