쇠락한다는 것에 대하여 - 울프와 제발트

by 리디언스


버지니아 울프는 그녀의 에세이 <웸블리의 천둥>에서 1924년 영국에서 열린 대영제국박람회를 가차 없이, 냉정하게 바라본다.


그녀의 시선에는 기대도, 환희도 없다. 모든 것은 결국 자연 앞에서 무너질 것이라는, 너무도 명백한 사실만이 남아 있을 뿐이다. 그녀가 그곳에서 포착한 장면은 종말에 가깝다.


’인류는 파멸로 치닫고 있지만 그 운명을 받아들이고 있다. 캐나다관에서 허물어질 것 같은 대피소 천막을 펼친다. 성직자들과 초등학생들이 대피소 입구에 다다른다. 구름 속에서 은빛 번개가 번쩍이는 가운데 야외에서 제국의 군악대가 연주를 시작한다. 백파이프들이 히이잉 말이 우는 소리를 낸다. 성직자들, 초등학생들, 환자들 무리가 버터로 만든 영국 황태자를 둘러싼다. 나무의 하얀 뿌리 같은 균열들이 창공에 펼쳐져 있다. 제국은 멸망하고 있고, 군악대는 연주하고 있으며, 박람회는 폐허가 된다. 하늘을 입장하게 한 결과이다.‘(순간: 여름밤, 꾸리에 p121)


1924년 6월, <네이션 앤드 애드니엄>에 실린 이 글은 울프가 런던 웸블리 스타디움에서 열린 박람회를 다녀온 뒤 쓴 기록이다. 울프는 설명하거나 설득하지 않는다. 개인적 감상을 전면에 내세우는 일반적인 르포나 탐방기와는 다르다. 대영제국의 상징과 같은 박람회의 웅장함 대신 한 시대가 스스로를 전시하는 풍경을, 그리고 그 시대가 낳은 제국이 서서히, 조용히 쇠락하는 모습을 냉정하게 응시할 뿐이다.


웸블리의 하늘 아래에서 울프가 들은 것은 단순한 천둥소리만은 아니었을 것이다. 그것은 제국이 스스로를 기념하기 위해 세운 거대한 무대 위로 엄습하는 자연의 소리다.


울프의 시선은 비난에 머물지 않는다. 분노보다도 차분한 통찰에 가깝다. 인간이 만들어낸 것들이 얼마나 쉽게 자기 확신에 도취되는지, 그리고 그 확신이 얼마나 허약한 토대 위에 세워져 있는지를 알게 해 준다. 군악대의 요란한 음향은 천둥과 뒤섞이고 제국의 권력을 상징하는 황태자의 형상은 여름의 열기 앞에서 서서히 녹아내리는 버터 조각처럼 보인다. 그 장면은 몰락의 연극이라기보다 시간의 흐름이 잠시 모습을 드러낸 순간에 가깝다.


한편 W. G. 제발트는 그의 마지막 소설 <아우스터리츠>에서 이렇게 말한다.


‘우리는 기껏해야 그것에 대해 놀라워하고, 이런 놀라움이란 이미 경악의 전 단계로서, 거대하게 확대된 건축물이 어디엔가 파괴의 그림자를 미리부터 드리우고, 이후의 모습을 바라보며 처음부터 폐허로 계획되었다는 사실을 우리는 자연스럽게 알고 있는 듯하다는 것이다.’ (아우스터리츠, 을유문화사 p24)


제발트의 문장은 울프보다 훨씬 낮은 목소리로 말하지만 향하는 방향은 같다. 거대한 건축물의 그림자 속에는 이미 폐허가 들어있다. 그는 파괴를 예언하지 않는다. 다만, 모든 설계에는 끝이 함께 들어 있다는 사실을 조용히 상기시킨다. 인간의 손으로 세워진 구조물들은 태어나는 순간부터 늙어갈 준비를 하고 있는 듯 길고 무거운 그림자를 드리운다. 비극이 아니라 조건이다.


이 둘의 사유가 만나는 지점은 허무가 아니다. 오히려 수용에 가깝다. 쇠락은 실패가 아니라 지나치게 인위적인 것들이 자연으로 되돌아가는 과정이다. 나이를 먹는다는 것은 무언가를 잃는 일이 아니라 시간의 층위를 몸에 새기는 일이다. 낡아진다는 것은 의미가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새로운 맥락을 얻게 되는 일이다.


벽돌 사이로 스며든 이끼와 금이 간 콘크리트 표면은 완공 당시보다 더 많은 이야기를 품고 있다. 건축물의 퇴화가 아름다울 수 있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자연과 시간이 함께 써 내려간 기록이기 때문이다. 인간의 의지가 완강하게 붙잡고 있던 형태가 서서히 풀리며 바람과 비, 빛을 받아들이는 순간, 사물은 비로소 세계의 일부가 된다. 완전함을 잃는 대신 기억과 관계를 얻는다.


울프와 제발트는 모두 알고 있었다. 지속하려는 집착이야말로 가장 인위적인 태도라는 것을. 시간은 언제나 흐르고 지나간 것은 필연적으로 되돌릴 수 없으며, 소멸해야 할 때 스러지는 것 또한 질서의 일부라는 사실을.


그래서 폐허는 끝이 아니다. 통과점이다. 무너짐은 공백이 아니라 다른 형태의 시작이다. 제국도, 건물도, 한 인간의 젊음도 마찬가지다. 지나치게 붙잡을수록 형태는 왜곡되고 자연스럽게 놓아줄수록 더 오래 기억된다. 낡아짐은 실패의 흔적이 아니라 한때 분명히 살아 있었음을 증명하는 표식이다. 그리고 그 표식 위에서 우리는 비로소 시간과 화해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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