풍화에 대하여 (모센 모스타파비, 데이빗 레더배로우)

by 리디언스


풍화에 대하여 (모센 모스타파비, 데이빗 레더배로우. 이유출판)


모센 모스타파비와 데이비드 레더배로우의 <풍화에 대하여>는 건축을 말하는 책이지만 읽다 보면 어느새 존재에 대해 생각하게 된다. 건축의 표면에서 출발하여 기억과 시간 소멸과 미학이라는, 보다 근원적인 질문으로 이어진다. 내가 끔찍이도 좋아하는 주제다.


현대 모더니즘 건축은 오랫동안 순수성과 완결성을 미덕으로 삼아왔다. 대체로 흠 없는 표면, 정확한 선, 완벽한 형태를 추구했다. 그러나 풍화(風化)는 완벽함이 아니더라도 건축물이 어떻게 시간의 흐름 속에서 더 깊은 의미와 아름다움을 찾을 수 있는지를 보여준다. 이 책은 바로 그 지점을 사유케 한다. 그렇다면 저자들이 말하는 풍화란 무엇일까.


그들이 말하는 풍화는 단순히 건축물의 표면이 낡아가는 과정만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파괴라기보다 변화에 가깝다. 표면이 닳고 색이 바래는 동안 건축은 하나의 새로운 층위를 얻는다. 이 새로운 표면은 시간의 퇴적물이며 자연과 인간의 공존이 남긴 기록이다. 그래서 풍화는 부식이나 마모가 아닌 일종의 재창조에 가깝다. 건축은 더 이상 처음의 모습에 머무르지 않고 시간을 통과한 존재로 다시 태어난다. 오히려 시간의 흐름 속에서 건축물의 자연적 변형을 통해 그 자체로 예술적 가치를 지니는 과정이다. 균열과 얼룩, 벗겨진 표면은 결함이 아니라 서사의 흔적이다. 풍화된 건축물은 그 자체로 의미를 지니는 동시에 시대의 변화와 사회적 맥락을 전하는 하나의 증빙이다. 낡음은 흔적이 아니라 지속적인 생명력이며 멈추지 않는 생성의 증거다.


결국, 건축물의 풍화 현상을 통해 시간의 흐름과 소멸의 의미를 탐구하고 낡음을 통해 우리가 어떻게 더 깊은 의미를 찾을 수 있는지를 말하는 것 같다. 건축물을 바라보는 방식에 대한 중요한 통찰이다.


별개의 이야기처럼 보일 수도 있겠지만 나는 이 책을 읽으면서 W. G. 제발트와 로베르트 발저를 떠올릴 수밖에 없었다. 폐허와 잔해, 쇠락과 망각을 집요하게 응시했던 제발트. 그리고 그가 사랑했다고 전해지는 로베르트 발저. 언젠가 발저의 작품으로 쇠락과 망각을 찬미한 적이 있다. 그는 작품을 통해 이렇게 말했다.

'한때 빼어나고 섬세하고 찬란했던 것의 잔재는 우리에게 연민과 더불어 존경심도 불러일으킨다. 지나간 것, 쇠락한 것은 얼마나 매혹적인가!' (빌케 부인, 로베르트 발저, 문학판 127~128p)


<풍화에 대하여>가 말하는 논지는 분명히 풍화, 즉 낡음 딱 거기까지였지만 솔직히 나는 그 너머까지 생각하게 된다. 존재의 소멸, 기억의 희미해짐, 망각까지도 함께 찬미하는 편이다. 생물과 사물의 구분을 넘어 스러져야 할 때 스러지며 존재하다가 소멸시효를 넘기지 않고 영원으로 사라지는 것. 얼마나 멋지고 매혹적인 일일까.


풍화는 남아 있음의 방식이지만 동시에 사라짐을 예고하는 과정이기도 하다. 완벽을 포기한 자리에 비로소 시간이 머물고 거칠어진 표면에는 기억이 새겨진다. 건축물은 결국 우리처럼 늙고 변하고 사라진다. 그리고 바로 그 점에서 건축은 우리와 닮아 있다.


나 역시 살아오면서 의도했던 모습과는 다른 방향으로 조금씩 변형되어 왔고 어떤 표면은 닳아 사라졌으며 어떤 기억은 희미해졌다. 그렇다고 해서 그것이 실패나 손실로만 느껴지지는 않는다. 오히려 그 덕분에 비로소 남은 것들이 선명해졌다고 느낀다.


풍화는 견뎌냄이 아니라 받아들임에 가깝다. 시간을 적으로 돌리지 않고 자연과 대립하지 않으며 그저 통과시키는 태도. 그렇게 남은 흔적들이 결국 하나의 얼굴이 된다. 더 이상 완벽하지 않지만 더 이상 공허하지도 않은 얼굴이다.


그래서 나는 쇠락과 망각을 두려워하지 않으려 애쓴다. 모든 것이 보존되어야 할 이유가 없고 모든 존재가 끝까지 기억될 필요도 없다. 스러질 때를 알고 사라지는 것, 지나치게 오래 머물지 않는 것. 그것 역시 하나의 윤리이자 미학일 수 있다고 믿는다.


언젠가 제가 머물던 공간들, 사용하던 사물들, 그리고 나 자신까지도 풍화의 시간을 통과하게 될 것이다. 그때 남는 것이 있다면 그것은 완벽한 형태가 아니라 시간에 의해 빚어진 윤곽일 것이다. 또 그렇게 낡아도, 변해도 충분히 아름답고, 그 흐려진 윤곽을 부끄러워하지 않아도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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