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즈 (토니 모리슨, 문학동네)
토니 모리슨의 <재즈>를 펼치면 활자가 아니라 음악이 먼저 들립니다. 숨 가쁘게 흔들리는 금관의 떨림, 바닥을 두드리는 구두 굽 소리 같은 리듬이 먼저 찾아옵니다. 문장은 곧장 의미로 치닫지 않고 할렘의 밤 골목에서 불쑥 솟아오르는 색소폰 선율처럼 돌아 들어와 가슴에 닿습니다.
토니 모리슨은 1993년 노벨문학상을 받은 최초의 흑인 여성 작가입니다. 그러나 <재즈>를 읽다 보면 그 수식어는 좀 진부합니다. “셰익스피어가 블루스를 부르는 것 같다”는 어느 잡지의 평처럼 그녀의 문장은 비극과 관능, 절망과 유머를 한 작품 안에 묶어냅니다. 작품 속에 만연된 비장함이 재즈의 짙은 울림과 만나 낮고 깊은 문장들을 만들어 냅니다.
재즈는 19세기말 아프리카에서 건너온 이들의 노동요에서 비롯되었습니다. 선창과 후창, 합창의 구조 속에서 고통은 리듬으로 변했고 그들의 블루스는 처지를 비관하는 한숨을 멜로디로 바꾸곤 했습니다. 1920년대에 이르면 그 음악은 하나의 시대를 상징하게 됩니다. 사람들은 그 시절을 ‘재즈의 시대’라 불렀죠. 화려한 파티와 재즈 클럽, 끝없는 소비와 환희가 뒤섞인 시대였습니다. F. 스콧 피츠제럴드의 <위대한 개츠비>가 자본의 꿈을 화려하게 그렸다면, 존 스타인벡의 <분노의 포도>는 그 화려함 아래의 그림자와 균열을 주시했습니다. 같은 시대, 다른 표정, 번영과 파국이 한 몸으로 뒤엉킨 시대였습니다.
이 작품 <재즈>의 배경 역시 1926년 겨울, 할렘입니다. 화장품 외판원인 중년 남자 조 트레이스는 어린 연인 도카스를 총으로 쏴 죽입니다. 조의 아내 바이올렛은 희생자 바이올렛의 장례식장에서 시신의 얼굴에 칼을 휘두릅니다. 이로써 남부를 떠나 북부로 향했던 부부의 꿈은 거대한 자본의 도시에서 부서지고 맙니다.
이 소설의 가장 매혹적인 인물은 ‘나’라는 화자입니다. 이름 없는 화자 ‘나’는 모든 것을 알고 있는 듯 말하지만 이내 스스로를 의심합니다. 이야기를 시작했다가 다시 고쳐 말하고 확신했다가 번복합니다. 마치 재즈의 즉흥연주에 가깝습니다. 하나의 주제로 이야기가 시작되지만 거의 동시에 다른 인물들의 목소리로 그것을 변주합니다. 이를 재즈로 말하면 이들 인물들은 단순한 사이드맨이 아니라 각자의 연주를 해내는 솔리스트들입니다. 말하자면 어머니의 자살, 혼혈아의 방황, 폭동의 불길 속에서 잃어버린 가족의 기억 등 그 단편들이 모여 하나의 앙상블을 이루는 것입니다. 재즈가 그렇듯, 이 소설은 직선으로 나아가지 않습니다. 같은 선율이 다른 조로 반복되고 같은 사건이 다른 감정으로 다시 들립니다. 이를테면 이야기는 완성된 구조물이 아니라 어쩌면 함께 연주해야 할 악보입니다.
작품 말미에 바이올렛 트레이스가 작품 속 화자인 나에게 이렇게 말합니다.
‘원하는 대로 살 수 없다면, 그런 세상이 무슨 소용이지?’
‘원하는 대로요?’
‘그래, 원하는 대로. 지금 사는 삶보다 더 나은 삶을 원하지 않니?’
‘그게 뭐 중요한가요? 어차피 내가 바꿀 수도 없는데.’
‘바로 그게 문제란다. 만일 네가 삶을 바꾸지 못하면 삶이 너를 바꿔놓을 거야. 그리고 그건 전부 네 잘못이 되지. 네가 그런 일이 일어나게 내버려 둔 거니까. 나는 그냥 내버려 두었고, 덕분에 인생을 망쳐버렸어.’ (재즈, 문학동네 p 318)
이 대화의 발화자 바이올렛은 이제 장례식에서 시신의 얼굴을 그었던 예전의 ‘미쳐버린 여자’가 아닙니다. 큰 사건들을 겪고 난 뒤 조금씩 자기 삶을 돌아보고 성찰하고 있는 바이올렛입니다.
바이올렛의 말은 단순한 훈계가 아닙니다. 운명 앞에 선 인간이 스스로에게 던지는 거의 철학적인 질문에 가깝습니다. ‘원하는 대로 살 수 없다면…’이라는 탄식 속에는 이미 체념의 그림자가 드리워져 있습니다. 그러나 곧이어 따라오는 말은 조금 다릅니다. 삶을 바꾸지 못하면 삶이 너를 바꿔놓을 것이라는 경고이기 때문입니다.
이 말에서 저는 자연스레 프리드리히 니체가 떠올립니다. 그는 주어진 운명을 사랑하고 삶을 긍정하라고 말했습니다. 피할 수 없는 조건을 견디는 데서 그치지 않고 그것을 끝내 자신의 것으로 끌어안으라고 요구했습니다. 모리슨은 바이올렛의 입을 빌려 삶을 바꾸려 하지 않으면, 삶이 우리를 바꾸고 그 변화의 책임마저 결국 우리 몫이 된다고 들려줍니다. 이 지점에서 니체와 모리슨이, 긍정과 재즈가, 철학과 소설이, 사유와 서사가 한 자리에서 만납니다.
저는 이 대목을 읽을 때 문학과 철학, 재즈의 리듬이 한데 뒤엉켜 율동하는 디오니소스적 세계 속으로 잠깐 발을 들여놓는 것만 같았습니다. 삶과 문장이 함께 흔들리는 그 순간, 잠시나마 내 삶의 리듬 역시 내가 다시 선택할 수 있을 것 같은 느낌입니다. 저는 이럴 때 말할 수 없는 기쁨을 느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