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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보통의 글 Dec 01. 2023

아무튼 글쓰기

이건 계속 쓰고 싶은 사람의 이야기

일요일 오후 3시. 화면 앞으로 하나, 둘 사람들이 모였다. 일요일 오후 이렇게 시간을 내어 자리에 앉는 과정이 쉽지만은 않았다. 이날은 책구름 출판사의 주제 강의 ‘여성, 진화’ 중 세 번째 시간. <아름다움 수집 일기>, <우리의 영혼은 멈추지 않고>의 이화정 작가님과 <엄마, 히말라야는 왜 가?>의 백운희 작가님의 강의가 있는 날이었다.      

 

강의는 대전의 채움 책방 대표님의 사회로 진행되었다. <나를 사랑하기, 타인을 사랑하기>라는 소주제와 함께 세 사람이 각각 정의한 진화, 그리고 저마다의 ‘히말라야’에 대한 이야기를 나눴다. 이 강의의 가장 좋았던 점은 강의를 듣는 행위에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계속 질문을 던지게 되었다는 점! 내가 넘어야 할 ‘히말라야’는 무엇인지, 내 삶의 ‘진화’란 무엇인지. 단번에 정의 내릴 수 없는 질문을 품게 되었다. 강의 내용을 떠올리며 이리저리 흩어진 메모지들을 정리하는 중 문득 며칠 전의 일이 생각났다.   

 

글방 과제 제출일이 될 때까지 한 줄의 글도 쓰지 못한 날이 있었다. 뭐가 그리 바빴는지 미리 초고 써놓지도 않고 여행을 다녀왔다. 여행 다음 날은 마감 일이자 아이의 태권도 대회, 일정을 마치고 아이들이 모두 잠든 후에 글을 쓰려했지만 지난 며칠의 여독으로 둘째를 재우다 먼저 잠이 들어 버렸다. 새벽 1시, 말 그대로 ‘벌떡’ 일어났다. 눈 위로 무겁게 남은 잠은 쫓아내기 위해 세수를 하고 노트북 앞에 앉았다. 일상의 작은 ‘히말라야’ 들을 넘고 넘어 드디어 글을 쓰기 시작한 것이다.

 

그냥 쓰지 못한 채로 글방에 갈까?, 아님 글을 쓰지 않았으니 이번 모임을 쉰다고 할까.. 잠깐 고민을 하다 고개를 젓고 키보드 위에 열 손가락을 올렸다. 활자화하진 않았으나 그동안 머릿속으로 틈틈이 구상한 이야기들이 있었고, 그날 오전 있었던 아이와의 에피소드가 생생히 남아 있던 덕에 적절히 글감들을 섞어 한 편의 글을 완성할 수 있었다. 휘몰아치듯 글을 쓰고 계속해서 읽고 또다시 읽었다. 그렇게 단어들과 줄다리기를 하다 결국 마침표를 찍었다. 퇴고를 마치고 PDF 파일로 저장하는 것, 이쯤이면 글을 제출하겠다는 의미다. 깊은 밤 모두의 단잠에 방해가 되지 않길 간절하게 바라며 글을 보냈다. 자리에 누워 한참을 뒤척이다 새벽녘에나 잠이 들었지만 다행히 꽤 깊은 잠을 잔 것 같았다. 다음날 아침, 지난밤 내가 글 쓰러 나가는 걸 본 남편이 간밤에 정말 다 쓰고 잤냐고 물었다.

"당연하지!"     


"너 진짜 대단하다."

남편의 입에서 나온 첫 대답이었다. 내가 생각해도 꽤 대단한 일이었다. 학창 시절엔 누군가 시키고, 등을 떠밀고, 충분한 환경이 주어졌음에도 무언가 열심히 했던 기억이 없다. 놀면서는 밤을 새울지언정 시험 기간엔 밤 한 번 새 본 적이 없다. 직장도 간절하게 얻은 건 아니었다. 그저 상황에 맞춰 그냥저냥 살아온 것 같은데... 살림과 돌봄 사이에서 아슬아슬한 줄타기를 하는 이 열악한(?) 환경 속에서 누가 시키지도 않은 일을 이제야 꽤 열심히 하고 있는 것이다. 오, 나 좀 기특한데?     


그 후로 한참이 지난 오늘은  한 달마다 가는 아이의 외래 진료가 있는 날, 아이와 이동을 하는데 라디오에서 ‘스노우맨’이라는 노래가 흘러나왔다. 작년 크리스마스날 아이스크림 케이크를 앞에 두고 각자 먹고 싶은 맛만 골라 푹푹 떠먹으며 함께 봤던 영상이 바로 ‘스노우맨’이었다. 스노우맨이 점점 녹아내리는 마지막 장면을 보고 눈물 뚝뚝 흘리던 아이의 모습이 생각나 킥킥거리며 그때 기억이 나냐 물었더니, 아이는 엄마가 놀린다고 생각했는지 시치미를 뚝 뗀다. 엄마가 이걸 어떻게 바로 떠올렸을까? 하니 아이 입에서 단번에 대답이 나왔다.


"설마 글쓰기? 엄마 또 다 써 놓은 거야?"   


내 글이 그렇다. 나를 뺀 글도 없고, 아이들이 빠진 글도 없다. 나는 일상의 조각들을 모아 한 편의 글을 만든다. 에세이를 쓸 때도 그렇고 서평을 쓸 때도 그렇다. 정확한 나만의 단어를 찾아 쓰면 좋겠지만 아직은 역부족이라 누구나 쓸법한 보통의 글을 쓴다. 이게 나의 글쓰기다. (물론 누가 권유한 적도 없지만) 출간을 목표로 글을 쓴 적은 없다. 그건 지금도 마찬가지고 앞으로도 그럴 거다. 깊이 있는 글, 내 글을 읽는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는 글, 진정성 있는 글, 한 권의 책 보다 더 유의미한 글을 쓰는 사람이 되고 싶을 뿐이다. 2년 동안 이화정 작가님과 함께 미루 글방에서 글을 쓰며 배운 마음이다.      

 

11월의 마지막 날, 책구름 출판사의 <여성, 진화> 마지막 강의가 끝나니 마음이 쉬이 가라앉지 않는다. 강의 내용을 천천히 복기하며 그동안 마주했던 질문에 대한 나만의 정의를 고민했다. 나의 진화는 그럼에도 쓰는 것, 자꾸 멈추고 싶은 마음의 히말라야를 넘어서는 것, 그리고 쓰기 전의 삶으로 돌아가지 않는 것. 2024년에도 나의 목표는 계속 쓰는 사람으로 사는 것. 결국 나에게 글쓰기 그저 당연한 일이 되 꿈꾼다.


12월 1일 새벽 2시 5분. 오늘도 나는 이렇게 마침표를 찍었다.




#이 글은 미루글방 가을, 여섯 번째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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