낯선 돌봄의 시작

마흔에 생긴 일 1

by 보통의 글

너는 어쩜 전화 한 통이 없냐는 엄마의 목소리가 새삼스럽다. 안부 전화라니. 걸어서 10분 거리에 산다는 이유로 부모님의 안부를 생각해 본 적이 있기는 했나. 게다가 틈틈이 인터넷 주문 등의 잔심부름을 도맡아 하고 있으니 따로 연락할 일이 없다. 무소식이 희소식이지 뭐.


'아빠가 아프대', 무슨 일인가 사정을 물으니 침도 삼키지 못할 정도로 턱 아래가 부어올라 이틀째 이비인후과와 치과를 이곳저곳 옮겨 다녔고 다들 이유를 찾지 못해 근처 대학병원으로 소견서를 써줬단다. 진단명은 이름도 낯선 타석증. 간단히 말하면 침샘에 돌이 생긴 것이다. 아빠는 병원을 이리저리 옮기는 동안 염증이 심하게 퍼졌고 붓기 때문에 침도 못 삼키는 상황이 되니 종일 가래와 침을 뱉어내느라 고생이 꽤 컸다고 한다.


당장 입원하여 수술을 해야 한다고 했으나 똥고집+겁쟁이인 아빠는 수술이 무서워 약물 치료로 어찌 안 되겠냐고 사정을 했다. 환자가 입원을 거부하니 의사도 딱히 방법은 없었나 보다. 처방전만 내려주고 집으로 돌려보냈다는데 밤새 통증 때문에 잠도 못 잔 아빠를 보고 다음날 엄마는 나에게 도움을 요청했다. 아빠와 병원에 가 입원 수속을 할 것.


어렸을 땐 꽤 아빠를 좋아했다. 매일 팔베개는 물론이고 노래방 18번 듀엣곡도 있었을 정도. 정확히 고등학생이 되던 지점부터 아빠와 소원해지기 시작했는데 그 기간이 길어지다 보니 지금은 둘이 있긴 약간 어색한 상태다. 사이가 나쁜 건 아니지만 서로 살갑지도 않은. 술 1,2병은 나눠 마셔야 그제야 조금씩 편하게 대화하는 그런 사이. 아, 둘만 있긴 어색한데..


하지만 별 수 있나. 내가 가야지. 부모님이 아프실 때 집집마다 시간 많은 자식 한 명씩은 있으면 좋지. 그런데 그게 왜 우리 집에선 나여야 했을까 우스갯소리를 하며 아빠를 픽업하기 위해 아침 일찍 집을 나섰다.


이런저런 검사를 위해 그 넓은 병원을 서로 말도 없이 말벌 아저씨처럼 빠르게 걸어 다녔다. 길을 찾는 건 환자인 아빠의 몫이었다. 39도가 넘는 고열 증상이 오자 간호사는 나에게 아빠 몸을 물수건으로 닦아야 한다고 했으나 그마저도 아빠는 온전히 맡기지 못하고 연신 수건에 물만 적셔달라 부탁하였다. 아빠는 나에게 주렁주렁 링거를 단 몸을 조금도 기대지 못했다


하루 종일 아빠만 돌볼 상황은 아니라 잠시 틈을 내어 아이들이 있는 나의 집으로 돌아가 점심을 챙기고 다시 병원으로 돌아왔다. 오후에 수술이 잡힌 덕에 아빠를 혼자 둘 수 없어 종일 보호자 역할을 해야 했다. 별 대화는 없는 12시간 여의 시간이 묘하게 흘러갔다.


늦은 밤 퇴근한 엄마와 바톤터치를 하고 집으로 돌아갔다. 입원 기간 내내 수시로 병원을 오가고 여행 일정까지 당겨가며 퇴원까지 책임졌더니 아빠는 이제야 딸 낳은 보람을 느낀단다. 아빠의 퇴원 후 며칠이 지난 내 생일. 난생처음으로 생일 축하한다는 아빠의 메시지를 받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