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흔에 생긴 일 2
함께 읽고 쓰는 친구의 소개로 자치구 평생학습관에서 1년 반 동안 글을 썼다. 4개월마다 1편, 총 3편의 매거진을 만들었다. 2025년 마지막 호가 마무리될 때쯤, 담당자에게 2026 매거진 사업이 종료되었다는 연락을 받았다. 지난가을 취재를 나갈 때마다 달라진 평생학습관의 분위기를 보고 어느 정도 예상은 했던 바였다. 프로그램 홍보나 활동 소개, 기타 행사나 포럼 등의 일을 기록하고 공유하는 건 리포터라 지정된 사람만 할 수 있는 일이 아니었다. 기관 인력 내에서 충분히 대체 가능한 것이니 예산 대폭 축소라는 비보 앞에서 매거진 폐지 수순은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나랏돈으로 집행하는 모든 일들이 그렇게 흘러가는 건 나도 잘 알고 있었다.
책상 위에 앉아서 머리로 쓰는 글과 다르게 현장에서 길어 올린 이야기를 쓰는 일은 또 다른 글의 생동감을 자아냈다. 내 이야기가 아니라 타인의 이야기를 쓴다는 것이 내 능력 밖의 일이라 생각했지만 기사 한 편을 완성할 때마다 글 위에 선명하게 남은 타인과 나의 교집합이 참 좋았다. 이런 소식지를 몇 명이나 읽을까 싶기도 하지만 나 또한 지역 소식지를 매번 챙겨보는 사람이므로 누군가에겐 도움이 될 것이란 믿음이 있었다. 지금 내가 살고 있는 구에서 명예 기자라는 이름으로 구청 소식지에 글을 싣는 일을 하고 있긴 하지만 첫 도전이었던 매거진 폐간의 아쉬움이 생각보다 진하게 남았다.
뭐 어쩔 수 없지! 아쉬운 마음은 꼬깃하게 접어두고 즐거웠던 기억만 떠올리며 비슷한 일을 할 수 있는 곳을 찾기 위해 이곳저곳 들락날락하며 정보를 모았다. 주변 자치구들의 구청, 평생학습관, 문화재단 사이트 등을 파고들며 글을 쓸 수 있는 곳을 찾았다. 대략 몇 월쯤 구인 공고가 뜨는지, 어떤 활동들을 하는지도 유심히 살펴보았다.
그러던 중 집에서 조금 떨어진 구의 문화재단 소식을 알게 되었다. 이곳에서도 매 달 소식지를 발간하고 있었다. 이곳은 다른 곳과 다르게 프로젝트 매니저라는 이름으로 소식지 전체 기획/뉴스 레터/기고문 등 전반적인 부분들을 총괄하는 일과 한 달에 1번 기사를 올리는 일반 기자 총 두 가지의 업무 중 하나를 선택해 지원해야 했다. 내 그릇은 일반 기자도 과분할 것 같았지만 손은 자연스레 프로젝트 매니저 지원 서류 쪽으로 마우스를 옮겼다.
'지역 주민 우대', '지난 활동자 우대'라는 진한 글씨는 흐린 눈으로 모른 척하고 지원서를 적었다. 평생학습관과 구청 소식지 작업을 하며 생각했던 부분들, 그리고 지역 주민이 아니라서 볼 수 있는 시선들에 대해 적고 또 적었다. AI가 쓴 글이 난무하는 시대에 사람과 사람이 만나 쓰는 글이 얼마나 귀한지, 왜 이 일을 하고 싶은지 빼곡하고 간절하게 지원서를 채웠다. 모집 공고의 조회수는 5800, 기존 다른 글들이 100~300 사이의 조회수를 기록하는 것에 비해 월등히 차이 나는 것을 보니 경쟁률이 꽤 높을 것 같았다. 하지만 상관없었다. 나도 지금 하고 싶은 일에 도전하는 것이었으니까.
아무 기대도 하지 않았다고 하면 거짓말이다. 면접 예정일이 아이의 졸업식과 같은 날이라 속으론 내심 졸업식 후 바로 넘어가면 괜찮을 거라 시간 계산까지 해두었다.
하지만 어제 나온 결과는 서류전형부터 탈. 락.
오전 내내 홈페이지를 수시로 들어갔기 때문에 합격 공고가 올라오자마자 결과를 확인할 수 있었다. 문화재단에서 보낸 합격 확인 안내 문자를 본 건 그 후였다. 잠깐 사이 여러 마음이 오가긴 했지만 핸드폰은 툭 내려놓고 생각을 가다듬었다. 불과 몇 년 전의 나를 떠올렸다. 그리고 지금의 나를 떠올렸다.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았던 내가 무엇이든 하고 싶어 일을 찾아다닌다. 이것만으로 충분하다. 이제 또 다른 문을 두드리러 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