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흔에 생긴 일 3
평생 자영업만 했던 부모님이 갑자기 하던 일을 정리하겠다고 한 것이 재작년 겨울이었다. 원래 하던 일은 옷을 만드는 일이었으나 코로나 이후 부모님도 위기를 맞이했다. 특히 겨울엔 거의 일감이 들어오지 않았다. 부모님 정도 나이에 일을 그만둔다면 쉬엄쉬엄 일을 한다거나 주말에만 누리던 텃밭 가꾸기의 즐거움을 본격적으로 즐기는 것 정도는 어떨까 싶었다. 하지만 부모님의 삶은 나의 예상과 전혀 다르게 흘러갔다.
아빠는 소위 ‘막일’이라고 얘기하는 건설 현장으로 가겠다고 했다. 엄마는 청소 일을 알아보고 있다고 했다. 당황스러운 마음에 눈물이 왈칵 쏟아질 것 같았지만 평생 일만 했는데 쉬는 날들도 필요하지 않겠냐며 천천히 생각해 보시라 말했다. 남편의 외벌이로는 한창 돈 많이 드는 시기를 앞둔 두 아이를 키우는 것만으로도 빠듯했다. 추운 겨울, 해도 뜨지 않는 새벽부터 집 밖을 나서야 하는 일만 찾는 부모님의 모습을 흐린 눈으로 지켜봤다.
지난봄, 결국 아빠는 폐업 신고를 했다. 엄마는 주변인의 소개로 건물 청소를, 아빠는 병원 청소 및 환자 이송 일을 구했다고 했다. 그 후 한동안 부모님의 얼굴을 마주하는 것이 힘들어 집에 잘 찾아가지 않았다. 그러다 나물 반찬을 해뒀으니 들르라는 메시지를 보고 집이 빈 시간을 틈타 친정집에 들렀다. 거실엔 여기저기 파스와 약봉투가 굴러다녔다. 거실 TV보다 더 큰 가족사진 액자를 물끄러미 바라보다 서둘러 집을 나섰다.
부모님이 새 일을 시작하고 6개월 정도 지났을 때쯤 엄마가 청소하던 건물은 전체 리모델링이 결정되었고, 종합 병원에서 청소와 환자 이송을 하던 아빠는 손주 또래의 아이들이 아픈 모습을 보거나 사망 환자를 매일같이 마주하는 것에 매일 고통스러워했다. 부모님은 다시 이직을 결심했다.
부모님의 이력서를 대신 쓰는 경험은 흔치 않다. 기본 인적 사항이야 간단했지만 몇 가지 질문을 앞에 두곤 어떤 글보다 가장 어려운 글쓰기를 했다. ‘평생 한 가지 일만 할 정도로 성실한 삶을 살았다.’ 첫 줄을 쓰곤 더 이상 진도가 나가지 않아 한참을 모니터만 바라보다 겨우 300자를 채웠다.
이직 준비를 하던 중 아빠는 집 근처 아파트 공사 현장 관리직을 소개받았다. 불행인지 다행인지 건물 리모델링이 미뤄진 엄마는 여전히 청소 일을 하면서 코레일, 지하철, 대학교 등 어디선가 환경 미화 직원을 구한다는 소식만 들으면 나에게 메시지를 보냈다. ‘이력서 좀 써줘.’
‘엄마, 이건 내가 절대 할 수 없는 일이라고 생각했어. 하지만 이렇게 할 수 있게 되다니!’
스스로 완벽하게 귤을 깔 수 있게 된 둘째가 어린이집에서 귤청을 만들었던 경험을 이야기하며 뿌듯한 목소리로 말한다. 절대 할 수 없을 거라 여겼던 일, 나에겐 돈을 버는 일이 그런 부류의 것이었다.
지난해 다양한 일을 했다. 어떤 일도 자신 있게 시작한 건 없었다. 자기 확신이 없는 나는 늘 스스로를 의심했고 주변 동료들에게 슬쩍 묻어가고 싶기도 했지만 내 몫의 일은 손에 꼭 쥐고 정말 열심히 발로 뛰었다. 그런 와중에도 나의 시간과 노동력을 돈으로 환산한다는 것은 상상도 하지 않았다. 물론 어떤 일들은 돈이 되는 일도 있었지만 내 주머니 사정만 언뜻 보아도 알 수 있듯 대부분의 일에서 돈은 중요한 조건이 아니었다.
며칠 전, 오랜만에 만난 친구와 이야기를 나눴다. 우리의 가장 큰 화두는 바로 ‘일’에 관한 이야기였다. 하고 싶은 일만 하며 사는 건 아득한 꿈이 되어버렸고 지금은 해야 하는 일을 찾아야 하는 상황이다. ‘일’이라는 단어가 주는 무게감이 어느 때보다 더 묵직하게 와닿았다.
의도한 건 아니지만 입춘을 기점으로 그동안 고민했던 것들에 대해 하나하나 답을 내리고 구체적인 계획을 세우기 시작했다. 밤만 되면 뛰쳐나가 걷는 덕을 본 것 같기도 하다.
나이 든 부모님, 자신의 몸을 갈아가며 일 하는 외벌이 남편 그리고 아이들. 40대의 삶은 내가 좋아하는 것들로만 채울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