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ood Goodbye

마흔에 생긴 일 4

by 보통의 글

아이의 초등학교 졸업식 전 날, 3월이면 입학할 학교에 방문에 교복을 맞췄다. 한 번도 교복을 입어본 적 없던 아이가 갈색 체크무늬 치마와 흰 블라우스, 붉은색 후드 집업을 입고 내 앞에서 이리저리 옷매무새를 살피며 거울을 본다. 참 낯선 풍경이다.


그날 밤, 늦은 저녁 지인들과의 모임을 마치고 돌아와 어두운 거실에 앉아 약간의 취기가 어린 상태로 세 통의 편지를 썼다. 나와 아이 모두 너무 좋아했던 담임 선생님께는 1년 동안 꾹꾹 참았던 이야기를, 학교 일을 하는 동안 뜻을 함께하며 많은 응원을 보내주신 선생님께는 고마운 마음을, 6년 동안 무탈하게 학교 생활을 마친 내 딸에겐 축하의 마음을 빼곡히 담아 편지지를 채웠다. 그러다 문득 지난 12월 아이의 첫 외부 공연을 앞두고 리허설 대기를 하며 근처 카페에서 썼던 편지가 떠올랐다.


OO에게.

OO와 O이가 마지막 연습을 하는 동안 근처 카페에 앉아 편지를 써. 3개월 동안 연습하느라 정말 고생 많았어. 쉽지 않은 과정이었음에도 창작의 즐거움을 느끼며 매 순간 최선의 노력을 보여준 OO가 정말 대단하더라! 이번 공연을 계기로 진짜 OO가 하고 싶은 것이 무엇인지 이것저것 도전하는 즐거움을 찾길 바라. 엄마도 늘 응원할게.(셔틀..? 당연해주지)

OO야, 엄마는 무대 위의 설렘은 잘 모르는 사람이야. 엄마가 모르는 세계로 씩씩하게 걸어 나가는 너의 모습이 정말 아름답다. 우리 결과보다는 과정에서 의미를 찾으며 살자. 2026년 중학생이 되는 OO! 우리 가족 모두에게 정말 특별한 해가 되겠구나. 우리 내년엔 더 잘 살자.


'난 엄마처럼은 살지 않을 거야'

언제쯤이었을까. 기억을 더듬어보면 아마도 엄마의 최종학력을 넘어설 쯤부터 그런 마음을 먹었던 것 같다. 부모님이 일찍 돌아가시고 중학교 졸업을 하자마자 서울로 올라와 봉제공장에 취직했던 엄마의 10대 이야기를 어려서부터 들었던 나는 중학생이 되자 엄마보다 아는 것이 많을 거라는 건방진 태도로 엄마를 대했다. 마음속으론 절대 엄마처럼 살지 않겠다고 주문을 외우며 엄마가 사는 세계와 내가 살아갈 세계가 다를 것이라고 장담하며 엄마와는 다른 삶을 살기 위해 부단히 애썼다.


내 딸이야 나의 뒷모습을 보며 엄마처럼 살지 않겠다고 주문까지 외우진 않겠지만 그럼에도 막상 내가 모르는 세계를 살아가는 딸을 바라보는 기분이 참 묘하다. 날마다 새롭다는 건 유년기 때나 느꼈던 기쁨이고 지금은 도통 갈피를 못 잡겠다. 어제와 오늘이 매일같이 다르다. 호기심 가득한 눈으로 세상을 바라보고 몸을 과 마음을 던지는 그 모습이 기특하고 기대에 차면서도 어느 순간엔 눈앞이 캄캄하고 걱정이 앞선다.


단순히 사춘기에 접어들었다는 이유로 눈이 세모눈으로 변한다거나 집에선 이어폰 꽂고 등만 보여주는 것과는 다른 차원의 문제다. 말로 하기도 글로 쓰기도 어렵다. 더 이상 내가 해줄 수 있는 일이 없는 것 같은 막연한 두려움과 아쉬움? 글쎄. 이 단어들도 역시 역부족이다.


졸업하자마자 중학생 학부모 신고식을 혹독하게 치르며 (초등학교 3, 4학년 때부터 사춘기 온 것 같다고 엄살 부렸던 나.. 그건 사춘기가 아니었음을..) 이젠 정말 아이와 내가 다른 세계에서 살아갈 때가 왔음을 실감한다. 물론 평소와 다름없이 대화를 하고 방학인 덕분에 하루의 대부분의 시간을 함께하곤 하지만 아이와 나의 마음의 거리가 서서히 멀어지고 있음을 매순간 느낀다. 지난 시절에 대한 아쉬움이나 못 해준 것들로부터 비롯된 후회로 불안해하기보단 이만큼 잘 키워낸 나를 칭찬하며 엄마와 딸의 Good Goodbye 시절을 잘 흘러보내고 싶다. 정말로.(이렇게라도 정신승리 하고 싶은 사춘기 엄마의 마음)


OO야. 초등학교 졸업을 진심으로 축하해. 6년 동안 무탈하게 학교 생활을 마친 것만으로도 정말 대단한 일을 해낸 거야.

너의 존재는 태어날 때부터 이미 귀한 사람이었어. 다른 누구와 비교할 필요도 없이 그냥 OO라는 존재 하나면 충분했을 정도로. 이건 지금도 앞으로도 변하지 않을 사실이야.

OO가 가진 무한한 가능성과 능력을 의심하지 마.

OO의 가장 가까운 곳에서. 엄마가.